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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와의 전쟁보다 어려운 치매와의 전쟁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기사입력시간 2020-08-28 04:54
    최종업데이트 2020-08-28 04:54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8월 16일 주간 캘랜더가 꽉 차 있었다. 19, 20일은 한국판 JP모건을 꿈꾸며 작년 가을에 이어 한국경제 주관으로 Korea BioIndustry Conference(KBIC)가 이틀 촘촘하게 예정됐다. 그러나 19일 오전 고려대지주회사에서 열리는 과제발표에 참석하기로 먼저 약속이 있었기에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 안암동에서 오후에 KBIC의 용산으로 이동하겠다고 통보했다.

    20일에는 한국화학연구원과 파이낸셜뉴스가 공동주최하는 제12회 서울국제신약포럼이 열렸다. 필자가 한국에 돌아온 후 2009년 제1회 신약포럼 발표자로 첫 공식무대 데뷔 자리였기에 개인적인 애정이 있다. 제10회 때에는 외국인 강연자를 필요로 하기에 동료이자 친구인 듀크대의 Pat Casey 교수를 소개해 같이 참석한 일도 있었다.

    21~23일은 메디게이트뉴스가 주관하는 슬립테크2020(Sleep Tech 2020)에 참석해 강의도 듣고 전시회도 참가하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8월 13일부터 100명을 넘어가자 제일 먼저 KBIC가 열리는 것을 미뤘다고 통보가 왔다. 이틀 후에 슬립테크2020도 같은 상황이 됐다. 꽉 차 있던 주간 스케줄이 코로나 덕분에 널널하게 됐다.

    19일 오전은 약간 여유를 가지고 고대 산학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자주 왔던 곳이다. 바이오폴리메드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이오폴리메드 CEO 박명옥 박사는 뉴저지 Enzon이란 작은 벤처에서 페길레이션으로 바이오의약품을 만든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다. 바로 그 의약품을 필자가 근무하던 쉐링프라우(Schering-Plough)에서 도입해 '페그인트론(Pegintron, 성분명 peginterferon alfa-2b)'으로 판매했기에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지주회사 사장은 회의 전 티타임에서 필자가 처음 산학관을 방문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런 스토리를 나누자 놀라셨다.

    11시에 시작한 회의는 넓은 회의실에서 참석자 8명이 거리두기를 위해 떨어져 앉아 교내 창업인 'ImmunoMax'의 기술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IM Cell'이라고 멋지게 이름 지은 동물 세포주는 코로나와의 전쟁에 필수인 바이러스 백신 생산을 최대한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Vero'나 'MDCK' 세포주보다 바이러스 생산을 더 높이는 이유는 'BST 2'와 'RNase-L'이라는 두 유전자를 동시에 제거한 특별한 세포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화 하는데 단점은 작은 벤처가 좋은 제품을 상용화하더라도 이 기술을 사가지고 갈 회사가 너무 대형이고 한정적인 것이라고 평가위원으로 지적했다. 그래도 시리즈A에 투자한 벤처캐피털들의 면면을 보니 상당히 실력 있는 회사들이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하면서 회의는 계속됐다. 그러나 1시 30분이 돼 필자는 먼저 일어났다. 오후 3시에 판교에서 벤처캐피탈 대표와의 미팅이 새로 잡혔기 때문이다.

    치매와의 전쟁에 몰입하려면 우선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서울-경기 지역의 거리두기 2차 격상이 신약포럼에 영향을 주지 않나요? 인원을 최소화하시는 데 제가 짐이 되면 안 되니 저는 줌(Zoom)으로 들어도 좋습니다." 19일 카톡으로 이런 대화가 오가다가 결국 20일 오전 9시에 현장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방역은 철저했다. 이미 호텔 들어오며 발열검사를 두 번 받았는데 행사장인 오키드룸에 입장하기 전 세 번째 검사와 손에 세정제를 뿌리고 이름이 붙은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앞에는 플라스틱 방패가 놓여있다. 방 안의 인원도 연사들 포함하여 35명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와우! 그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이 영광이었다. 

    개막식에 이어 기조강연은 8월 2일 새로 출범한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 단장인 묵인희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치매에 대한 일반적인 치료제 개발 동향에 이어 마지막에 사업단 방향을 조금 선보였다. 사업단은 2028년까지 총사업비 2000억원을 투자하며 ▲치매 원인 규명과 발병기전 연구 ▲치매 예측·진단기술 개발 ▲치매 예방·치료기술 개발 등 3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집중한다고 한다.

    다음 강연 중에서 아무래도 중점은 지난 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신청서(BLA)를 제출한 에자이/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aducanumab)이다. 바이오젠과 에자이는 8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FDA가 아두카누맙에 대한 BLA를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FDA는 아두카누맙에 대한 우선검토를 적용해 처방의약품사용료법(PDUFA)에 따라 2021년 3월 7일까지 승인 검토를 마쳐야 한다. 이런 따끈따끈한 소식 때문에 강연이 더욱 흥미로웠다.

    아두카누맙은 항체 선별부터 남다르다. 치매증상이 없거나 치매증상진행속도가 느린 노인들의 B-세포에서 발현되는 유전자 풀에서 선별한 단항체(Monoclonal Ab)이다. 이 항체는 베타-아밀로이드의 단일체에는 붙지 않고 뭉쳐 있는 구조를 인지해 붙으며 또한 뭉쳐진 플라크를 녹여낸다. 전임상시험에서 뇌혈관과 뇌신경조직에 있는 모든 아밀로이드에 잘 붙었으며, 13주 동안 치매 모델 쥐에 주사했을 때 플라크가 완전히 제거됐다. 임상시험에서 사람에게 주사했을 때 기존 치매치료제 후보들과 달리 microhemorage를 일으키는 농도가 높았으며 부작용이 적어 매우 촉망받는 약물 후보로 간주됐다. 아두카누맙이 내년 3월 이후 승인될 경우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알츠하이머병의 임상 경과를 개선시키는 첫 번째 치료법이 될 것이다.

    2009년 노벨의학상은 텔로미어를 처음 발견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캐럴 그라이더와 잭 조스탁이 받았다. 이들이 발견한 '텔로미어(telomere)'는 염색체의 끝부분을 일컫는다. 우리 몸의 노화와 죽음의 비밀을 밝히는 하나의 단서가 바로 '죽음의 타이머' 혹은 '생체시계'라고도 불리는 텔로미어(Telomere)다. 모든 염색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끝자락 부위가 복제되지 못하면서 점차 짧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암세포는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분열하는 것인데, 세포가 죽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텔로미어가 잘려져 나가지 않는 이상 현상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노화와 암은 반대 개념이 된다. 대부분의 암세포는 짧은 텔로미어를 가짐과 동시에 높은 레벨의 telomerase reverse transcriptase(TERT)를 분비한다.

    카엘젬백스가 TERT의 16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GV1001'의 권리를 갖고 영국에서 암백신으로 임상을 하는 것을 필자는 미국 쉐링프라우 책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당근 2008년 전부터이다. 2014년 9월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카엘젬백스가 개발한 신약인 췌장암 면역항암제 '리아백스주'(코드명 GV1001)를 췌장암 치료제 신약으로 허가한다고 밝혔다. 놀랐다. 왜냐하면 2014년 'Clinicaltrials.gov'에 의하면 두개의 국제 임상에서 GV1001가 췌장암에서 실패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발 진행에 관심을 끊었는데 이날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 중인 젬백스앤카엘의 GV100' 2상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됐다는 강의를 들었다. 임상에서 도네페질을 단독 투여한 대조군은 중증장애점수(SIB)가 7.23점 감소한 반면, GV1001 1.12mg을 투여한 시험군은 0.12점 감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아직도 GV1001 개발을 계속하는 끈질김에 감탄했다. 중증도 이상의 치매 진행을 억제하는 신약이 전무한 상황에서 임상결과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아두카누맙이 내년에 허가를 받는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대규모 임상 3상을 진행할 동력이 계속 만들어질까? GV1001의 물질특허는 이미 끝났을 것 아닌가? 어떻게 권리를 보장받나? 이 제품이 대한민국 개미들의 돈으로 글로벌 3상을 진행하다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회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회의장을 떠나며 치매와의 전쟁은 코로나와의 전쟁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