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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는 사회의 핵심자산, 사회가 좋은 의사를 원한다면 바람직한 교육방안도 함께 고민하길

[전공의, 양질의 교육을 받는 의사로①]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시대에 맞는 전공의 양성 프로그램과 국고지원의 당위성

기사입력시간 19-06-10 05:51
최종업데이트 19-06-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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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는 더 이상 값싼 진료를 하는 노동자가 아닌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의사로 인식돼야 한다. 올바른 전공의 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전문의사를 양성하고 환자 안전과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의료계와 정부 모두가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계는 전공의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정부는 전공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메디게이트뉴스는 5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의사 양성비용 국가지원 모색 토론회' 후속 기획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전공의 교육과 이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짚어봤다.  

[전공의, 양질의 교육을 받는 의사로]
①좋은 의사는 사회의 핵심자산, 좋은 의사를 원한다면 바람직한 교육방안도 함께 고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의료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불모지와 같은 의료 환경에서도 일찍 뿌리를 내려 건강한 싹을 틔운 ‘전문의제도’의 눈부신 성과에 기인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6.25 전쟁으로 국가의 운명이 생사의 경계에 놓였던 절체절명의 시기에 전문의제도를 위한 법안이 당시에 전격 통과됐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믿기 어려운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미루어 짐작컨대, 의료계의 누구인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운(國運)이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 급급했던 궁핍한 시절 ‘전문의제도’는 부자 나라의 전유물과도 같은 고도의 전문 영역이었다. 이에 당시에 국내외 사정 등을 감안하면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전쟁 종료 후 곧바로 시작된 전공의 교육은 일찍이 1960년부터 ‘전문의자격시험’을 도입해 시행했다. 그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해야 300달러에도 못 미치는 매우 힘들고 곤궁한 시절이었다. 이런 사실은 지금도 종종 개발도상국에서 ‘믿기지 않는 신비로운 한국의 의료제도 발전 사례’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무급제도로 출발한 전공의 교육,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는 의국 

10개 과목으로 시작된 전문의 자격시험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26개 과목으로 분화 확대됐으며, 지금도 다양한 질병 패턴의 변화와 의학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세부전문의 제도로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전쟁 이후에 시작된 전공의 교육은 미국 제도의 영향을 받아 ‘인턴’과 ‘레지던트’라는 외래 용어가 등장해 쓰이다가 ‘전공의’ 또는 ‘수련의’ 등 우리식 표현과 함께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전공의 교육의 단위는 일제 강점기의 용어인 일본식 의국이라는 제도가 근간이 됐으며, 일본식 박사학위 제도와 전공의제도가 병행돼 지금도 연구 학위와 전문 학위 간의 혼선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공의 교육은 초기에 무급제도로 출발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조치라며 전공의들의 강한 반발로 이어지면서 항의와 시위로 해당 현안에 불이 붙자 결국 유급 형태로 전환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전공의 수련 과정에 대해 무급제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무급 형태의 의국원이나 생활비 마련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의국이 지정하는 곳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의국’이라는 단어는 현재 중국이나 타이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일본이 만든 용어로써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기초의학은 교실 단위로, 임상의학은 의국으로 표기되던 일본의 제도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혼재돼 나타나는 것이다.

의국제도의 특징은 주임교수의 지도하에 도제식 교육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일본은 이를 강좌제도라고 하고 강좌의 영문 표기는 ‘Koza system’이다. 과거 독일의 주임교수와 과장직에 대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제도의 모방이었다. 반면, 영국식 교육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Royal College of Physician’과 ‘Royal College of Surgeon’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여 전문의가 내과계열, 외과계열의 개념 속에 기초 필수 공통 영역에 대해 수련과정 후 세부 전공으로 진입하는 전공의교육으로 발전했다. 

미국도 이런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내과 수련 후 내과계열 전문의로, 그리고 외과 수련 후 외과계열의 전문의로 세분화되는 역사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내과 및 외과 계열에 대한 ‘기초 공통’ 수련과정 없이 전공의교육의 전 주기를 한 의국에서 혹은 한 의국내의 여러 병원에서 순환근무를 하며 3~4년의 수련기간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입국과 동시에 전문 과목 내에서 수련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 시스템적으로 기초 공통 과목에 대한 수련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의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일본은 학문적으로 매우 좁고 깊으면서 세분화 된, 그리고 가족적 가치에 의한 교육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현대적이고 교육학적 입장에서의 통합적 교육의 개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결여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냉정하게 고찰해보면, 의국제도에서 교육목표는 불필요해 보인다. 가장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주임교수의 행동과 학문, 그리고 술기 수준을 그대로 본 받아 의국원도 그와 비슷한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의국의 목표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나타나는 전공의 교육에 대한 많은 문제점들은 타이완과도 공유되면서 인식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즉, 3개 지역의 뿌리가 비슷하기 때문이고, 유럽에도 독일 전공의 교육문제와도 유사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라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의를 만들어내야 

현대적 개념의 전공의 교육은 우선 전문직과 사회가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역량을 종합하고 정제해 전공과목에 관계없이 소속된 나라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어떤 전문의를 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대략 한 세대 전부터 영국,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논의와 연구를 발전시켜 전문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구체적인 ‘틀’을 만들어 놓았다. 

캐나다 의학회의 ‘CanMEDS’를 필두로 하여 미국 전공의교육평가원(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의 Six Core Competency 등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전공의교육의 목표가 명료하게 제시된 상태에서 국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의 틀’을 설립하여 그 안에서 전공의 교육이 다시 고안되고 재설계되고 있다. 근자에 캐나다에서 제시하고 있는 ‘Competency by Design’이 세계 의학계로부터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눈여겨 볼만 하다.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현대적 전공의교육은 전문직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반영한 질 높은 전공의 양성 프로그램을 설계하도록 했다. 그 다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실행 프로그램으로 연동하여 애초 의도하고 기획했던 특정 역량들이 발휘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히 비임상적 역량인 의사소통, 관리, 직종 간 교육, 리더십, 의료제도의 이해, 지속적 질 관리, 윤리, 교육학, 연구 등 이른바 ‘사회적 역량’과 의료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촘촘히 배양하고 함양하도록 수련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고 있다. 

이런 교육은 의국이라는 작은 단위의 독립된 교육제공 단위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전공의교육 제공 기관도 사회적 기구의 개념으로 재설계되어 거듭나야지만 가능할 것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전공의 교육과 전문의 역량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 이면에는 의료가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다 명확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의료가 지니고 있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과학적 의료(scientific medicine)에서 사회적 실천(social practice)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강보험 제도에 묶인 우리나라, 의사 양성을 핵심자산으로 인식해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실천의 개념은 바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완성으로 의사는 선택의 여지 없이 건강보험의 급여주체가 단일화된 획일적 구조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생존에 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다중적이면서 모순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의료가 보편적 개념의 의료가 아닌, 사회적 실천의 ‘가치재’로써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해당사자라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 전문가인 의사의 양성이야말로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현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류와 함께 전문성 높은 훌륭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은  다른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핵심 자산’이라는 인식을 점진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의사양성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 결여되고 단순히 사적, 개인투자로 간주될 때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은 사회적 실천의 근간이 되는 일차 진료의 붕괴와 조정 의료수요와 괴리된 조정 불가능한 전문의 양산, 그리고 전공의 교육의 질적 저하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전공의 교육 및 의사 양성에 대한 전근대적인 개념이 바뀌지 않는다면, 단순히 교육의 질적 수준 미달이 아닌 과거 국민소득 500불 시대의 어려운 환경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시대착오적 교육의 구태(舊態)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이나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공공의료기관과 동일한 형태의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간의료기관들은 고질적인 저수가의 틀에서 기관운영에 필요한 생존전략이 우선이다. 이에 전공의 수련에 대한 개념 자체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병원 운영에 활용하려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나마 최근에 법으로 명문화된 전공의법에 따라 근무시간의 준수 이외에는 달라진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의 양성에 대한 수요예측은 전문의 양성에 필요한 전공의 교육기간 등을 감안해 그 이전에 이미 책정돼야 한다. 인간 중심 교육이 아닌, 법인의 양식에 맡겨진 허구의 창조적 의료요구에 맞춰져서도 안 될 것이다. 

적절한 전공의교육에 대한 수요예측과 조정은 사회적 실천에 의한 공적자금의 투입이 가능할 때 그 뚜렷한 명분과 합리적 조정이 가능하다.그렇지 않고 의료 분야에서 국가 최고의 전문 인력이 단순히 생존전략에만 매달리도록 하는 시장경제에 의한 전문의 양성 방식은 결국 허술한 의료제도의 기형적 변형이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긴 세월동안 힘들게 마친 전공과목만으로 의업을 이어갈 수 없는 비효율적인 ‘낭비성 교육’만이 되풀이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흔히들 표현한다. 하물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국가 최고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전공의 교육은 더욱 더 세밀하고 전문성 있게 기획되어 관리 운영돼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지 않고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일부 선진국에서 리드하고 있는 사회적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진일보한 방식의 전공의 교육은 먼 나라의 꿈 얘기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될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의사가 전문의이고 의료접근성이 세계최고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 전문의가 모자라 전공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역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병원은 사람이 아니어서 윤리적 판단이나 사회적 판단이 불가하다는 논리가 아예 의료를 비영리로 만든 것인데, 실제 의료기관은 영리기관의 작동원리를 백분 활용하고 있고 전공의교육은 교육이 아닌 ‘전공의사육’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곧 시대를 역행하는 우리나라 의료의 어두운 민낯과도 같다.

진정 의료가 사회적 실천이라면, 또는 건보공단의 표현대로 사회참여형 의료라면 의학교육도 사회참여형으로 전환돼야 한다. 

당장 1만5000명이 넘는 우리나라 전체 전공의와 인턴의 급여를 공적자금에서 백 퍼센트 충당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소위 원가파괴 의료를 고집하는 정부가 전공의 급여를 국가 공적자금에서 책임지라는 의료계의 논리에 순순히 응할 리 없고, 감당할 만한 역량이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더 늦기 전에 정부는 귀를 열고 전공의에게 필요한 ‘필수 교육’을 제공하는 일부터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전공의 교육에 대한 사회적 실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정부는 의미를 부여해야 하며,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의료 분야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시기 

몇 해 전 교통사고로 골반 골절이 발생한 할머니와 손녀가 권역응급실을 전전하다 서울로 이송 중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초턴’으로 불리는 환자 경험이 적었을, 당시 당직 전공의가 과연 이런 위급하고 감당하기 힘든 환자에 대해 적절한 대처능력을 갖고 있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외상환자의 처지는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외과계열이나 응급의학 관련 전공의는 하루 100만 원 정도 교육비가 소요되는 집체 방식의 집중적인 교육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이 비싼 교육을 병원이나 전공의 개인 부담으로 처리해서는 제대로 진행될 수 가 없는 사안이다. 이런 교육의 혜택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게 전달되고 환원되는 중요한 생태학적 ‘환류 시스템’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필요한 교육과 전문가 양성 과정에 국가적 관심을 보여주기는커녕, 국가 차원의 ‘공적 투자’의 결핍으로 야기된 의사의 무경험과 미숙함, 그리고 갖춰야 될 역량 부재에 따른 자연 발생적이면서 필연적 현상에 대해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관제 언론 통제 방식의 윽박지르기나 공평치 않은 형사법적 해결 방식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좋은 의사양성을 위한 의료윤리, 의사소통, 리더십, 의료제도, 교육, 연구 등의 핵심적 가치를 담은 역량은 절대로 싸구려 의학교육이나 질 낮은 전공의교육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사회가 좋은 의사를 원한다면 좋은 교육의 제공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적정 전문의 숫자에 대한 할당과 책정은 전공의교육 수요에 대한 합리적 결정과 공적자금의 투여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아직도 연차별 수련계획이 전공의 교육과정으로 둔갑된 우리나라의 수준은 법제화된 제도가 보여주는 발달 장애현상을 역설적으로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 

한번 법제화된 제도는 바꾸기도 힘들고 법은 한 단계 상위로 존재해야 한다. 연차별 수련계획이 아닌 현대적 전공의교육 제도와 과정에도 전문 과목 별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 필요한 재원은 과연 어디서 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법제화된 전문의 과목은 오래 전 26개 과목에서 멈춰 정지한 지도 오래됐고, 그와 동일한 수의 세부전문의가 그나마 그 빈틈을 채우고 있다. 

선진국의 전문의 과목은 발전과 분화를 거듭해 현재 50개 이상의 전문과목과 이와 비슷한 수의 세부전문의로 확대 재편됐다. 이제 전문의와 세부전문의에 대한 구별도 명확하지 않고 세부전문의가 다시 전문의로 역변환하는, 그리고 의료 수요와 의료 환경의 변화에 맞춰 역류해 나가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이런 나라는 법으로 전문과목이나 연차별 수련계획을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가난하던 시절 전공의교육의 연차별 수련과 전공과목의 법제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교육 재원의 민간 영역의 사적투입을 통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관, 법 주도의 전문직 발전이 과연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이제는 전문직에서 교육을 주도하고, 공공재원을 통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의료 분야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하는 시기가 충분히 무르익은 것이다.

“의료기술 왕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비영리기관의 ‘소득주도 생존형 의료’에서 ‘사회참여형 의료’의 본모습을 찾기 위한 ‘사회참여형 의학교육’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이것이 바 전공의 교육에 대한 일대 인식 전환이 이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