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5월 12일 바이오 의약품인 항체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라스(Ras)'를 잡는 결과를 보여주겠다고 김용성 교수로부터 아주대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항체가 세포 속에 들어가 라스 단백질을 잡는다고?' 항체가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게 놀라웠고, 항체가 라스를 잡는다는 것은 요샛말로 2개의 '듣보잡'이었다.
우리 세포 속에서 암 돌연변이를 촉진시키는 라스 암유전자(Oncogene). 나의 원수(怨讐) 라스는 기능에 따라 H라스, K라스, N라스로 구성되는데 항암제 개발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주로 K라스와 N라스다.
라스 돌연변이는 전체 종양의 30%를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췌장암은 무려 95%가 라스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라스가 암유전자로 규명된 이후 30여 년간 나를 포함해 전 세계 연구자들이 라스 정복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셰링 플라우(Schering-Plough)에서 내가 만든 두 번째 에세이(Assay)로 파르네실 전달효소(farnesyl transferase) 스크린을 만들었다. 라스를 잡을 것이라 굳게 믿고 또 좋은 선도물질을 발견했기에 그 이후 13년간 여러 동료들과 FTI 개발을 했지만, K라스와 N라스가 약을 치면 파르네실(farnesyl)보다 5개 체인(chain)이 더 긴 지질을 이용해 교묘히 피해서 '대안적 프레닐화(alternative prenylation)'를 한다고 보고한 것이 나의 마지막 논문이 됐다(JBC, 2004). 그러기에 라스가 나의 평생 '웬수'가 됐다.
어떤 물질로도 세포 속으로 '침투'해 라스를 잡을 수 없고 실패가 오랫동안 계속되자 2014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산하 국립 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NCI)가 라스 항암제 개발을 돕겠다고 이른바 '라스 이니셔티브'를 출범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대 김용성 교수의 기술로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우리나라 바이오벤처인 오름테라퓨틱Orum Therapeutics)을 미국 바이오 매체들이 보도하고 나섰다(FierceBiotech 5-11, BioWorld Today 5-16).
지금까지의 항체 치료제들은 암세포를 찾아가 세포막 단백질에 달라붙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항체는 세포 안으로 침투해 세포질 내부에 존재하는 암 유발 단백질인 라스(Ras)를 잡아내는 것이다. K라스의 특정 돌연변이(예를 들어, G12D)만을 저해하는 저분자 저하제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모든 K라스 돌연변이를 저해할 수 있는 물질 그것도 항체로는 세계 최초다.
이 항체의 기반이 되는 핵심논문 3개는 아주대 김용성 교수 연구실에서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2014년 미래부가 선정하는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오니어사업 및 연구과제로 선정돼 오는 2020년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가장 최근 논문은 5월 10일 저명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 판 최신호에 게재됐다.
김 교수는 "지난 2014년 논문이 '이런 플랫폼이 가능하다'는 소개였다면, 작년 논문은 그 원리를 설명한 것이고 이번에는 '이 기술로 라스를 잡았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바이오 의약품인 항체 개발은 항체의 세포 안에서 역할뿐만 아니라 어떻게 효과적으로 CMC를 생산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개발이 진전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경쟁 약물로 지난해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된 라스 모방(Ras mimetic) 저분자화합물인 '리고세르팁(rigosertib)'이 어떻게 개발이 진행되는지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