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유능한 인재가 국외로 빠져나갈 때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다. 작게는 특정 회사나 기관의 전문인력의 이탈을 우려하는 말이기도 한다. 8월 9일에 발간된 ‘네이처’ 표지에는 'Brain Drain'라는 문구와 함께 뇌의 형상이 담겼다. 파란색 바탕 표지에는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Brain Drain'라는 말 그대로 뇌에서 불필요한 세포 찌꺼기가 뇌 밖으로 배출된다는 의미로 쓰였다.
조나단 킵니스(Jonathan Kipnis) 미국 버지니아대 뇌과학과 교수팀은 논문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우리 몸 곳곳에서 독소 성분과 세포 찌꺼기를 제거하는 림프관이 뇌에도 존재하며, 알츠하이머병(치매) 발병과도 연관돼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이라는 ‘네이처’ 표지가 탄생했다.
우리 몸에는 혈관 따라 움직이는 빨간 피와 열린 공간을 움직이는 노란 피가 있다. 피를 움직이게 하는 펌프인 심장에서 동맥을 타고 나온 피가 세포에서 업무를 마치고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헤모글로빈이 함유된 빨간 피의 흐름만 아니라 우리 몸에는 노란 피인 림프순환계가 있다. 물과 약간의 단백질, 당과 무기염류 등으로 만들어진 투명하고 노르스름한 액체인 림프액이 체내를 순환하는 속도는 상당히 느려서 1분간 불과 30센티미터 정도다. 심장과 같은 펌프가 없어서 림프액은 근육의 수축에 의해 림프관이 압축되면서 그 힘으로 순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근육을 잘 사용하지 않는 운동부족의 경우 림프순환이 정체되기 쉽다. 림프 흐름이 정체돼 고이는 부분이 붓게 되는데, 서서 일하거나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게 되면 바로 림프순환 장애로 부종이 생기게 된다. 림프액 속에는 림프구도 있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워 인체의 면역체계를 지켜낸다. 병에 걸렸을 때, 림프절이 붓고 열이 나는 것은 세균을 물리치려고 림프계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조직액을 회수해 정맥으로 되돌리거나 흡수된 지방을 순환기에 운반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우리 몸에 림프관이 존재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뇌에도 림프관이 존재한다고 아무도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의학 교과서에서는 뇌는 면역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면역특권지역(immune privilege site)으로 쓰여있다. 뇌 혈관은 혈뇌장벽(BBB, Blood-brain barrier)으로 둘러싸여 혈액을 돌아다니는 단핵구, T세포, B세포 등 면역세포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몸과 분리된 독립적인 개념이다. 의학 교과서에 뇌 림프관 역시 기술돼 있지 않다. 그러나 뇌와 림프관에 대한 지금까지의 개념은 서서히 바뀌고 있다. 2015년에 두 연구팀이 거의 동시에 쥐에서 뇌 림프관 발견을 보고했다.
2017년에 미국국립보건원(NIH) 신경질환연구소(NINDS) 다니엘 라이히(Daniel S. Reich) 박사 연구팀이 사람 뇌에서 처음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연구를 통해 림프관을 찾았다. 지난 8월 13일 필자는 이 연구에 참여해 '이라이프(eLIFE)'에 논문을 같이 발표한 하승권 박사의 "Human and nonhuman primate: meningeal lymphatic system in brain"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라이히 박사는 MRI 영상으로 뇌 병변과 혈류(검은색)를 분석하던 중, 뇌 상부에 있는 상시상정맥동(superior sagittal sinus)에서 반짝이는 점 3개를 관찰했다. 그는 이 현상이 이상했다. '사람의 뇌에도 림프관이 있다'라고 라이히 박사는 가정해 MRI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뇌 림프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뇌가 닫혀 있는 시스템이라면 노폐물이 쌓이고 제거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지만 뇌에서의 노폐물 배출은 뇌 림프관을 통해서라면 가능하다. 이번 '네이처'에 발표된 킵니스 연구팀 보고에 따르면 뇌를 덮고 있는 뇌수막 속에 림프관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뇌는 뇌척수액에 떠다니는 세포 찌꺼기를 배출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진은 별다른 질병이 없는 평범한 쥐도 뇌수막 림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인지능력이 현저히 감퇴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노화가 진행될수록 뇌 림프가 손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 든 쥐의 림프를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자 '뇌 청소' 기능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기억력도 향상됐다. 뇌 림프관은 퇴행성 뇌신경질환인 알츠하이머병과도 관련이 깊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뇌에서는 뉴런에 아밀로이드베타(Aβ) 단백질이 과다 축적된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쥐 실험을 통해 이런 현상이 뇌 림프가 망가졌을 때 나타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뇌 림프관은 독성 단백질이 축적되면서 생기는 퇴행성뇌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최근 버지니아대 제니퍼 먼슨(Jeniffer Munson) 교수팀은 뇌 림프관이 잘못될 경우 알츠하이머병 병기진행이 빨라지는 것을 관찰했다. 또한 노화로 인지저하가 나타난 쥐에 림프관 속도를 빠르게 하는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C(VEGF-C)를 주입했더니 인지기능이 회복됐다. 또한 개체가 숙면을 취할 때 뇌 림프관을 통한 쓰레기 배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신경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노령화 사회에 이르면서 매년 퇴행성 신경질환 환자의 증가하는 증가하는 상황에서 뇌 림프관을 통해 축적된 Aβ같은 노폐물을 효율적으로 배출시키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뇌질환 신약개발을 할 때 뇌혈관장벽(BBB, blood brain barrier)는 약물이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된다. 림프관은 약물이 뇌로 들어가는 또 다른 통로이면서 면역세포가 이동하는 길로도 가능하기에 림프관은 뇌질환 신약, 특별히 단백질 신약을 전달하는 경로로써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암 전이'에 림프관이 관여할 가능성도 흥미롭다. 이제까지 장기에 있는 종양이 뇌로 전이되는 기전이 설명이 안 됐는데, 뇌로 연결된 림프관이 뇌암으로의 전이를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에는 시간이 걸리기에 우선 뇌 림프관의 건강을 일상의 건강 생활에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림프절에 모아둔 노폐물들이 제때 처리 되지 못하면, 마치 쓰레기 하치장에 실려온 온갖 생활쓰레기들이 썩어 냄새나고 넘쳐흐르면서 주변을 오염시키듯이 인체도 질병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쓰레기를 적게 배출하는 것이 첫째이고 배출된 쓰레기는 적절한 근육운동으로 제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충분한 숙면으로 쓰레기 배출 활동을 도와주는 것은 필수적이다.
림프의 순환을 통해 뇌의 노폐물을 잘 배출시키게 할 수 있을까? 걷기나 가벼운 유산소 운동, 스트레칭, 그리고 숙면 외에도 뇌와 가까운 목 림프 마사지가 도움이 될 것이다. 상체를 세운 후 목을 살짝 들어주고 목의 양쪽 대각선 앞 부분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10~20회 정도 반복한다. 다음으로 목을 사선으로 숙여 목의 대각선 뒤쪽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10~20회 정도 반복한다. 뇌 건강을 위해서라면 항상 습관처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뇌 림프관 발견이 이번이 처음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재발견이다. 이탈리아의 해부학 의사 파올로 마스카니(Paolo Mascagni, 1755~1815)는 처음으로 사람의 림프관을 통합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인간의 뇌에도 림프관이 존재한다고 분명히 기술했다. 비엔나에 있는 요제피눔 의학박물관(Josephinum Museum)에 2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모델 251번 밀랍인형의 뇌에는 모세혈관 밑에 림프관이 분명히 존재한다. 현대의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뇌에 존재하는 림프관을 무시했고 마스카니의 기술이 잘못된 관찰의 전형적인 예라고 가르쳤다. 의학 교과서에는 "뇌에는 림프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기술돼 있다. 이제는 교과서를 바꿀 시간이 됐다. 모든 사물의 이치와 과학현상을 열린 마음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