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위스콘신을 떠나 쉐링 플라우(Schering-Plough)에 온 후 어떻게 일년이 지나갔는지 모르던 사이, 1987년 4월에 열리는 실험생물학회(FASEB) 미팅의 한 초록을 그대로 재현하라는 프로젝트를 새로 받았다. fMLP라는 이름의 주화성인자(chemotactic factor)가 세포 표면의 수용체(receptor)를 만나면 ‘다이글리세라이드(Diacylglycerol, DAG)’이라는 이차전령물질(Second Messenger)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이 포스폴리파아제 C(Phospholipase C, PLC)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결론의 초록이었다.
필자도 2주 후에 그 초록과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도그마(Dogma)인 PLC에 의해 ‘DAG’가 만들어진다는 원 저자들의 결론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초록의 모든 결과가 PLC 로 설명이 가능한 반면, 세포 내의 다량의 ‘DAG’는 포스폴리파아제 D(Phospholipase D, PLD)에 의해 생성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이 간단한 의문 하나가 이후 일파만파 많은 일들을 끌어냈다.
당시 학계의 사람들에게 PLC는 세포 활성과 신호전달에 아주 중요한 효소라는 고정관념이 고착돼 있었기에 그 당시에는 그저 식물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PLD의 역할을 주장하는 필자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회사 내부 과학자들도 갸우뚱했다. 사실 PLC의 활성과 PLD 활성은 구분하기가 힘들다. 두 효소는 글리세롤인지질의 인(phosphate)의 오른쪽과 왼쪽을 각각 자르는 효소이다. PLD에 의해 만들어진 포스파티드산(phosphatidic acid, PA)의 인산염(phosphate) 부분이 포스파타아제(phosphatase)에 의해 잘라지면 ‘DAG’가 만들어진다. PLC와 PLD 두 효소 모두 ‘DAG’이라는 중요한 이차전령물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구분이 힘든 것이다.
PLC 도그마의 시작인 ‘이노시톨인지질경로(PI turnover)’는 예를 들어 세포 바깥의 성장 인자와 같은 자극이 세포 표면의 수용체를 만나는 순간 신호전달이 발생한다. 먼저 PIP2라는 지질이 PLC에 의해 잘라져 이차전령물질로서의 ‘DAG’가 들어진다. 마당에 있는 수도 펌프를 작동시키려면 먼저 마중물을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해야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PIP2가 잘라져 제일 먼저 만들어진 이 ‘DAG’가 수도 펌프의 마중물 역할을 한 후에, 연이은 신호전달체계로서 세포막의 제일 많은 양의 지질인 포스파티딜콜린(phosphatidyl choline, PC) 이 PLD에 의해 대량 잘라져 다량의 ‘DAG’이 만들어지는 후속반응에 대한 아이디어가 당시 필자의 가설이었다.
가설은 가설일 뿐 실험을 통해 증명하지 않는다면 머릿속 허황된 가설에 불과하다. 증명을 위해서는 결정적인 실험, 즉 소위 말하는 ‘킬러 실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Define and Do the killer Experiment."
PLD에 의한 DAG 생성을 증명하기 위해 ‘DAG’이 만들어지는 시간 의존성(time-dependent)에 대한 실험을 디자인했다. ‘5초, 15초, 30초, 1분, 2분, 5분, 15분, 30분, 60분’이라고 디자인을 했는데 혼자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실험이었다. 필자가 반응의 시작인 주화성인자(chemotactic factor)를 튜브에 넣은 5초, 15초, 30초, 60초 후에 동료 과학자가 클로로포름(chloroform)을 넣어서 반응을 종료하는 2인조 실험을 했다. 예상대로 먼저 ‘DAG’가 PIP2로부터 처음 순간에 반짝 만들어지고 PC를 기질로 해 서서히 다량의 DAG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패턴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결과가 정황상 옳을 수 있으나 오래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주 칼럼에서 소개한 것처럼 PLD는 세포막에 존재하는 글리세롤인지질(glycerophospholipid)을 가수분해(hydrolysis) 해서 PA로 분해하는 효소이다. 반응 용액 내에 에탄올이 존재하면 ‘트랜스포스파티딜레이션(transphosphatidylation)’에 의해 PEt가 만들어진다. ‘Transphosphatidylation’은 PLD만의 고유의 성질이기에 PLC의 활성과 구분하기 위한 PLD 활성화의 표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났다. 일년 동안 거의 잊고 지낸 생각이었다. 에탄올을 반응 튜브에 넣는 결정적인 실험을 디자인하고 PEt 형성 결과를 얻었다. 필자는 대만족이었다. 이후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Activation of Phospholipase D by Chemotactic Peptide in HL-60 Granulocytes” [Biochem. Biophy. Res. Comm., 150, 355 (1988)] 라는 논문을 서둘러서 발표했다. PLD에 의한 ‘PC turnover’ 라는 개념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비비알씨(BBRC)’라는 가장 빠르게 출간되는 저널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내의 시니어급 과학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결정적인 실험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PLD를 증명하려면 PC를 방사성 동위원소인 P-32로 표지해 PLD에 의해 잘라진 PA의 P-32를 추적함으로서 확실한 증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기에 P-32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킬러 실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얻어내라는 뜻이었다. 많은 양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하기에 인체에 노출되는 부담을 가지며 그 실험을 위해 다시 석 달을 보냈다. 결론적으로 P-32-PC와 fMLP를 넣으면 PLD에 의해 P-32-PA가 만들어지고 용액에 에탄올이 존재하면 P32-PEt가 형성된다는 것을 보였다. “보이는 것을 믿는다(Seeing is believing)” 이 결과를 정리해 ‘생화학저널(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에 논문을 실었다. [Pai, J.-K., Siegel, M. I., Egan, R. W. and Billah, M. M., Phospholipase D Catalyzes Phospholipid Metabolism in Chemotactic Peptide-Stimulated HL-60 Granulocytes. J. Biol Chem., 263,12472 (1988).]
이 논문은 업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식물세포뿐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동물세포의 신호전달에서도 PLD가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분명한 데이터로 눈에 보이게 증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결과를 통해 PLD라는 효소가 새로운 기전 작용의 알레르기 약이나 항암제로 적용 가능한 신약 타겟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게 됐다. 과학은 내가 이해하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머릿속의 가설로 그치지 않으려면 일반화가 돼야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화를 시키고 설득을 하려면 ‘킬러 실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얻고 가설을 증명해야만 한다.
“킬러 실험의 정의와 실행(Define and Do the killer Experi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