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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의사'민국, 한약은 성역인가

    "생수도 성분표시…한약은 왜 안하나요?"

    한약 성분 공개 요구 묵살한 복지부·식약처

    기사입력시간 2016-10-14 06:23
    최종업데이트 2016-10-14 08:10

    항암 효과가 있다며 매달 380만원에 판매한 한약을 환자 보호자가 먹어도 몸에 좋다고 안내한 J한의원.

    지난해 J한의원에 매달 380만원을 주고 항암 효과가 있다는 한약을 복용한 박모(당시 72세) 씨.
     
    그의 딸인 정모 씨는 지난해 10월 어머니가 사망한 후 해당 한의원이 "남은 한약은 가족들이 드셔도 된다"는 말을 듣고 '도대체 그 한약에 항암 성분이 있긴 한건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정씨는 모친이 드신 한약의 성분을 공개해 달라고 J한의원에 요구했다.
     
    하지만 J한의원은 자신만의 비방(비법)이라며 성분 공개를 거절했다.
     
    그러자 정씨는 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정씨는 자신의 민원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듯싶다.
     
    마트에서 파는 생수도 성분과 함량을 공개하는 마당에 약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정씨는 민원을 통해 "한의원으로부터 암이 없는 가족이 (항암제로 조제한) 남은 한약을 먹어도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암을 고치는 한약이라고 믿었는데 멀쩡한 사람이 먹어도 된다니 과연 항암 성분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한약의 성분 공개와 J한의원 원장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신의 처방이 비방이라며 원료조차 공개하지 않고,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한약을 처방하는 한의사들.

    정씨의 한약 성분 공개 요구는 일개 한의원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간 정부가 무시해 온 의료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정씨의 싸움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J한의원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복지부는 정씨의 민원에 회신하면서 한약 성분 공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엉뚱한 답변만 늘어놓더니 의료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보건소에 신고하라고 안내했다.
     
    의료법상 한의사는 한약 성분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둘러대기에는 너무 궁색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씨는 약 한달 후인 지난해 11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식약처에 모친이 복용한 한약의 성분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식약처 답변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식약처는 그 다음날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질의에 답변할 담당자가 없고, 한약에 대한 성분 검사를 할 수 없으니 민원을 취하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약이 아닌 식품의 성분 표시에 대한 민원이었어도 식약처가 이렇게 나왔을까?
     
    식약처가 주무부처인 식품위생법 제11조에 따르면 식약처장은 식품의 영양표시에 관해 필요한 기준을 정해 고시할 수 있으며, 식품 판매업자는 고시에서 정한 영양표시 기준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
     
    영양성분 표시 대상 식품은 과자, 빵, 초콜릿, 유지류, 면류, 음료, 어육가공품 중 어육소시지, 즉석섭취식품 중 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커피 등 거의 대부분의 먹거리를 망라한다.
     
    이를 위반하면 영업허가 취소, 영업소 폐쇄 처분을 받는다.
     
    누가 보더라도 한약이든 약이든 먹거리보다 더 엄격하고, 자세하게 성분을 공개해야 하지만 식약처는 한약의 성분 표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식품안전처로 간판을 바꿔야 할 판이다.
     
    ⓒ메디게이트뉴스


    식품보다 더 허술하게 관리되는 한약.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한약은 성역이다. 
     
    그래도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J한의원 관할 K보건소.
     
    정씨는 "적어도 한의원에서 암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할 때에는 근거가 있고, 검증을 받았다고 여겼는데 실상 보건당국의 관리 감독이 전무한 상황인 것 같아 당혹스럽다"면서 J한의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분을 요청하는 민원을 신청했다.
     
    보건소의 답변도 다르지 않았다.
     
    K보건소는 "진료비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심평원에 문의하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한국소비자원의 피해구제 제도가 있으며,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을 알려 드린다"고 회신했다.
     

    "생수도 성분표시하는데 한약은 왜 그런 게 없나요?"

    정씨는 한달 후인 올해 1월 K보건소에 다시 한번 J한의원 한약의 성분을 공개해 달라고 탄원했다.
     
    이에 대해 K보건소는 "의료법령상 한약 성분에 대한 규제 사항이 없으며, 규격 한약재를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정씨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는 지난 달 보건복지부에 재차 문제제기했다. 
     
    정씨는 "한약 성분이 도대체 뭔지 알려 달라고 해도 한의원은 비방이라며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한의사 면허만 있으면 어떤 원료로, 어떤 약을 만들어, 얼마에 팔 수 있는지 제한하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거냐"고 따졌다. 
     
    특히 정씨는 "절박한 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을 악용해 누구나 먹어도 되는 한약을 만들어 놓고 암을 고쳐주겠다고 하는 한의사는 이토록 법의 보호를 받는데, 저 같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적 근거는 왜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조차 원료명과 함량 표시를 엄격히 하는데 한약에는 왜 그런 규정이 없나"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이번에도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약 성분을 공개하면 환자들이 시장에서 해당 약재를 구입해 가정에서 탕약을 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의 오남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약의 오남용을 핑계로 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 한의사들의 밥그릇을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정씨는 모친이 사망한 후 1년 동안 국민 건강을 책임진다는 행정기관을 모두 노크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심지어 J한의원은 정씨가 한국소비자보호원에 한약의 효과가 미흡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피해구제신청을 하자 약제 성분 제출을 거부했고, 정씨는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했다.
     
    정씨가 기자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에게 국민의 건강권, 알권리보다 한의사 보호가 더 중요한가요?"

    과학중심의학연구원 강석하 원장은 "한약의 효과와 안전성 검증에 더해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가 환자의 알권리 보장"이라며 "의료법에 따라  의사와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해야 하지만 한의사는 예외다. 한의사도 진료기록부를 환자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지만 한약 성분에 대한 환자의 알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월 17일 '기자가 가 본 J한의원'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