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유가족 "애교 많고 자신감 넘치던 고인, 입사 후 달라져"

    "병원 잘못 인정하고 공정한 조사하라…간호사 재발방지대책 마련할 것"

    기사입력시간 2018-02-25 03:05
    최종업데이트 2018-02-25 03:07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고인이 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명예를 회복해달라. 고인은 예민하거나 우울한 아이가 아니었다. 진짜 이상한 것은 멀쩡했던 고인이 자살까지 결심하게 만든 병원이다. 병원은 진심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A씨의 큰 이모라고 밝힌 유가족은 24일 ‘유가족 입장서’를 통해 “고인이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해서 대신 유가족 입장서를 발표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A씨는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A씨의 유가족과 남자친구는 “간호부 윗선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밝혔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울 정도로 괴롭힌다는 것을 말한다. 병원 내 경력간호사가 신입간호사를 상대로 폭언, 폭행, 따돌림 등 태움을 일삼는 일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고인은 세 자매에게 첫 아이이자, 첫 조카였다”라며 “형부(고인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빠의 빈 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다. 고인은 엄마가 세명인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장학금을 받는 등 가족들 사이에서 '잘난척 대마왕'으로 불렸다고 했다. 하지만 애교 많고 자신감 넘치던 고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병원 입사 후 한달이 지난 시점부터였다. 유가족은 “고인은 힘없는 목소리로 '이모, 내가 전화를 잘 못 한대', ‘나는 손이 좀 느린 것 같아’, ‘우리 선생님은 잘 안 가르쳐 주는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유가족은 “고인이 그렇게 부족했다면 애초에 불합격시킬 것이지 왜 데려갔느냐”라고 반문하며 “서울아산병원에겐 모자란 아이였는지 몰라도 유가족에겐 과분하다 못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같은 아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멀쩡히 웃으며 병원에 들어간 고인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오게 만들었는가”라고 지적했다. 

    유가족은 “고인은 아직 어려서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사진이 없었고, 입사 지원할 때 찍은 사진을 썼다"라며 "고인은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유가족은 “고인의 명예를 회복해달라”라며 “매년 수많은 간호사들이 고인처럼 힘들어하며 병원을 그만둔다고 들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것도 개선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고통 속에 방치해온 것은 병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병원은 책임을 인정하고 죽은 고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해달라”라며 “이 죽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잘못에 의한 것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길 바란다”고 했다. 

    유가족은 앞으로 A씨처럼 불행한 간호사가 생기지 않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달라고 밝혔다. 유가족은 “병원의 내부감사결과 보고서를 유가족에게 공개하라"라며 "철저한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해 고통 받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유가족은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게 만들지 말아달라”라며 “고인의 죽음이 병원 어디선가 힘들어하는 수많은 간호사를 구할 수 있다면 짧은 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유가족 입장서>

    저는 00이의 큰 이모입니다. 00이 어머니는 지금 많이 힘들어 하셔서 제가 대신 유가족 입장서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00이는 저희 세 자매에게는 첫 아이이자, 첫 조카였습니다. 형부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00이에게 아빠의 빈 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동네에 살며 매일같이 저녁을 함께 먹을 정도로 왕래가 잦은 편이어서 “이모! 나는 엄마가 세명인 것 같아.”라고 말하며 달려와 안기곤 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00이의 별명은 ‘잘난척 대마왕’이었습니다.
    “엄마 나 장학금 탔다? 나 잘했지? 잘했지?” “이모 나 좀 예쁘지 않아?” 저희는 00이가 이런 애교를 부릴 때마다 으이구 이 잘난척 대마왕아~ 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애교도 많고 자신감 넘치던 우리 00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병원 입사 후 한달이 지난 시점부터였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이모...내가 전화를 잘 못 한대.”“이모...나는 손이 좀 느린 것 같아.”“우리 선생님은 잘 안 가르쳐 주는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집에는 언제 내려올 거냐는 말에 “이모 내가 모르는 게 많아서 공부해야 돼.”“이모 내가 잘못 배운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00이는 아주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정도로 성실한 아이였습니다. 공부머리랑 일머리는 다르다고 한다지만...우리 아이가 그렇게 부족했습니까? 우리 아이가 그렇게 모자랐나요?

    그럼 애초에 불합격시킬 것이지 왜 데려가셨어요. 서울아산병원에겐 모자란 아이였는지 몰라도 우리에겐 과분하다 못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같은 아이였는데 왜 멀쩡히 웃으며 병원에 들어간 우리 아이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까?

    00이가 아직 어려서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사진이 없어 입사 지원할 때 찍은 사진을 썼습니다. 영정사진 속의 00이는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을, 면접 잘 보라고 꼭 합격하라고 온가족이 백화점을 몇 바퀴씩 돌며 함께 골랐던 옷입니다. 00이는 그렇게 온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저희에겐 정말 소중한 아이였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요구합니다.

    죽은 00이의 명예를 회복해주십시오. 00이는 예민한 아이도, 우울한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이상한 것은 우리 00이가 아니라 멀쩡했던 아이가 자살까지 결심하게 만든 병원입니다.

    매년 수많은 간호사들이 00이처럼 힘들어 하며 병원을 그만둔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 것도 개선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고통 속에 방치해온 것은 병원입니다. 병원은 그 책임을 인정하고 죽은 우리 00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십시오. 이 죽음이 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큰 잘못에 의한 죽음임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00이와 같은 불행한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주십시오. 병원의 내부감사결과 보고서를 유가족에게 공개하고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여 저희처럼 고통 받는 유가족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시길 바랍니다.

    00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비록 아이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아이의 죽음이 지금도 병원 어디선가 힘들어 하고 있을 수많은 간호사들을 구할 수 있다면. 우리 유가족들은 그것만으로도 00이의 짧은 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2월 24일 유가족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