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부 초음파 '의사가 할 때만 보험 적용' 고시에 방사선사 반발
복지부는 지난 13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의 일환으로 오는 4월부터 상복부 초음파 보험적용 범위를 전면 확대하는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간·담낭·담도·비장·췌장의 이상 소견을 확인하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는 그동안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 의심자와 확진자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보험적용이 실시됐다. 그러나 이번 급여화 확대로 B형·C형 간염, 담낭질환 등 상복부 질환자 307만 여명에게도 급여를 적용받게 된다.
복지부는 전문성을 이유로 의사가 직접 실시하는 경우에만 보험적용을 하고, 수가를 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동안 초음파 검사를 해왔던 방사선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초음파검사는 의료법에 따라 의사가 하는 의료행위다. 다만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사, 방사선사가 할 수 있다는 복지부 유권해석에 따라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방사선사나 간호사 등이 초음파 검사를 공공연하게 해왔다.
대한방사선사협회는 18일 성명서를 통해 "방사선사는 국민에게 양질의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아끼지 않아왔다"면서 "방사선사를 배제한 상복부 초음파 건강보험 전면 적용 고시 개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방사선사협회는 "이번 고시는 국가법령에 의한 방사선사 초음파검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이라며 "동일한 의료기술행위에 대해 보험료를 특정집단에만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은 물론 국민의 기본 권리마저 침해하는 불합리한 결정"이라며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4만 여명에 달하는 방사선사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라며 "이 고시는 즉각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방사선사협회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작성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을 진행 중에 있다. 여기에 현재 약 2200여명 가까이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내과학회, 대한소화기학회 등 의료계는 방사선사협회의 주장에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의료행위를 방사선사나 간호사도 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대한내과학회 관계자 A씨는 "초음파검사는 의학적 지식을 가진 의사가 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다. 단순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실시간으로 초음파를 보면서 그 자리에서 진단을 내리는 것은 의사"라고 했다. 그는 "만약 방사선사 등이 오진을 한다면, 이것으로 생기는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라며 "이런 주장은 지금 일부 건강검진기관 등에서 불법적으로 방사선사가 초음파검사를 해오던 것을 일반화 해달라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또한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19일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방사선사의 업무 중 '초음파진단기의 취급'이 있으나, 이는 의료행위 상 진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초음파 기기 설정 등에 관해 의사의 행위를 보조하는 데 있다"라며 "이를 마치 방사선사가 의사 없이 단독 초음파 진단행위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손영래 예비급여과장은 "관련 단체에서 검토의견 요청이 들어온 만큼, 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다"라며 "지금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손 과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련단체 등과 함께 검토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심장학회, 방사선사 초음파 검사 찬성 이유는
한편,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다수의 의료계 주장에도 일부 심장내과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 이번 논란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방사선사가 초음파 검사를 해도 된다는 입장을 밝힌 이들 때문이다. 이들은 심장 초음파 검사가 소화기내과 등 복부 초음파 검사와는 다른 점이 있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심장내과 전문의 B교수는 "심장내과와 일반내과를 쉽게 비교하면, 초음파를 통해 내용을 '획득'하고 '판독'하는 것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면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을 찍는 것은 방사선사가 하고, 이를 판독하는 것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하는 것처럼 심장내과 초음파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B교수는 "초음파 획득과 판독은 모두 의사가 하는 것이 맞다. 왜 심장내과가 견해차이가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심장내과 초음파는 표준화가 돼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 그대로 심장내과 초음파 검사에서는 획득에 표준화가 있기 때문에 방사선사나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렇게 획득한 초음파 내용을 판독하는 것은 의사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즉 내과에서 실시하는 복부 초음파 검사는 획득 표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복부 초음파는 움직일 때마다 보이는 영상에 대해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거나, 이를 제대로 판독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라며 "그러나 심장내과 초음파는 표준화된 양식에 따라 영상만 확보하면, 심장내과 전문의가 의학적 지식으로 판독할 수 있다"고 말했다.
B교수는 "대부분 2,3차 의료기관의 심장내과는 방사선사나 간호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만약 의사가 초음파 검사부터 판독까지 전체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지금보다 초음파를 볼 수 있는 의사를 3~4배는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내과학회와 의협은 전면 반대하고 있다. 내과학회 관계자는 "심장내과 초음파 급여화 과정에서도 의사가 할 수 있도록 막아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한의사에게 초음파를 허용하자는 것과 같은 자가당착에 빠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