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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변이식술, '똥'을 약으로 쓴다? 이미 인류는 오래 전부터 '똥'을 약으로 써왔다

    [칼럼] 김용성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교수·DCN바이오 부사장

    기사입력시간 2021-04-06 07:32
    최종업데이트 2021-04-07 09:54

    분변이식술 과정.Wang 등.Journal of the Formosan Medical Association 2019

    [메디게이트뉴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을 들을 때마다 "아니 무슨 개똥을 약에 썼다는 말인가"하고 의문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들어와서 건강인의 똥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분변이식술(fecal microbiota transplanation, FMT)이란 치료법이 임상 현장에서 실제로 C. difficile장염의 치료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 'microbiota transplanation'이란 영어 용어를 들었을 때는 분변에 있는 균을 분리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똥'을 이식해주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서울성모병원이 처음으로 분변이식술을 시작했는데, "냄새 때문에 퇴근 직전 아무도 없는 내시경실에서 주방용 블렌더로 똥을 갈았다"는 서울성모병원 권태근 교수의 전언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분변이식술을 시행하는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그림1과 같다. 건강인의 분변을 모아서 생리식염수와 섞어 갈아내고 고형덩어리는 필터를 통해 제거한 후 용액만을 모은다. 이렇게 확보된 분변액을 대장내시경이나 위내시경을 통해 환자에게 직접 투여하는데 최근에는 캡슐 형태로 만들어 경구복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류가 똥을 치료제로 쓰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였을까? 사실 인류가 똥을 약으로 썼다는 기록은 오래 전부터 찾아볼 수 있다.

    4세기 중국 동진 시대의 갈홍이라는 의사가 식중독과 심한 설사를 앓고 있던 환자에게 인간 분변액을 입으로 먹게 해서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6세기 명나라 때의 의사 이시진은 발효된 분변액, 신선한 분변액, 마른 변, 아기 분변 등을 심한 설사, 열, 복통, 구토, 변비 등의 증상에 사용했다고 한다. 17세기 이탈리아 의사 Acquapendente(1537~1619)는 건강한 동물의 분변을 질병이 있는 동물에게 먹이는 치료를 시행하기도 했다.

    분변이식술에 관한 외국 저널에는 중국에 대한 내용만 있어서 '우리 선조들도 똥을 약으로 쓰지 않았을까'하고 찾아본 적이 있다. 서울대 김정선 박사의 학위 논문인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 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에 따르면 중종은 종기나 천식, 갈증, 치주염, 어깨 통증, 복통 등으로 계속 고생을 했다고 한다. 1554년 중종이 57세 때 열병이 심해졌는데 조선왕조 실록에는 "내의원 제조 등이 의원 박세거·홍침을 들여보내 상의 증후를 진찰하게 하니 아침에는 맥도(脈度)가 어제보다 더 급박하고 열이 더 났으며, 말소리가 간삽한 듯하고 호흡이 급박했다. 즉시 청심원(淸心元)과 소시호탕(小柴胡湯) 및 야인건수(野人乾水)를 들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중종은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야인건수가 바로 사람의 똥으로 만든 약이다.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강형원 교수는 "야인건수는 마른 분변을 물에 녹여 복용하는 것으로 분변의  찬 성질을 이용해서 열이 심한 상태의 광증을 치료하는데 사용한다"라며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인중황(人中黄)이란 약도 있는데 이것은 재래식 똥통에 껍질을 벗긴 대나무를 살짝 잠기게 놔두고 시간이 지난 후 대나무 안으로 스며든 맑은 분변액을 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인중환 역시 열병에 사용하는 약"이라고 설명했다. 

    똥을 약으로 쓰는 적응증이 '광증'과 같은 정신 증상이라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은 일반적인 정신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문헌과 한의학의 적응증을 고려해보면 고열이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중추신경계 증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 즉 근본적인 원인은 장염과 같은 감염성 질환이지만, 이로 인해 신경계 증상이 나타날 만큼 고열이 심할 때 쓰는 것으로 생각되며 한의학에서는 광증이 강조돼있는 것 같다.

    똥을 약으로 쓰는 것은 서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보고되고 있다. 아랍의 베두인 유목민들은 설사병을 치료하기 위해 낙타의 똥을 먹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프리카에서 전투하던 독일군의 상당수가 설사병으로 고생했고 사망하기도 했는데, 독일군과는 달리 유목민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독일 군의관은 유목민들의 증상이 생기자마자 낙타가 바로 배설한 따끈한 똥을 먹은 것을 목격했고 낙타의 똥이 설사병을 치료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독일 군의관은 낙타의 똥에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균을 발견했고 이 균은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 위장관 질환과 비뇨기계 질환을 치료하는 면역조절제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됐다. 또 바시트라신(bacitracin)이라는 항생제가 이 균주로부터 분리돼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기록들은 장내 미생물총의 개념과는 관계없이 단지 인류가 오래전부터 분변을 약재로 썼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장내 미생물총의 병적 이상상태(dysbiosis)를 건강하게 바꿔 질병을 치료하는 현대 분변이식술의 실제적인 시작은 언제였을까?

    1957년 세균학자였던 Stanley Falkow는 항생제로 인해 정상적인 세균총이 파괴되는 문제를 개선하고자 환자의 수술 전 분변을 모아 알약 형태로 만들고 수술 후에 먹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당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이 실험을 알게 된 후 그는 해고당했다.

    이 실험에서 관찰된 긍정적인 효과는 논문으로 출간되지 못했는데, 이후 1958년 콜로라도의 외과의사 Eiseman은 정상 장내 미생물총을 회복시킨다는 같은 개념으로 환자에게 임상적 시도를 했다. 모든 치료에 효과가 없었던 위막성 장염 환자 4명에게 건강인의 분변을 관장해서 치료했던 것이다. 이 당시에는 위막성 장염의 원인이 C. difficile이라는 것을 모를 때였는데, 정상 분변의 관장 효과는 아주 놀라웠고 이후 20년간 시행된 약 16예의 치료 성공률은 94%였다. 이후 위막성장염의 원인이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정상 미생물총 파괴와 C. difficile균의 활성화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이 원인균을 없애는 반코마이신(vancomycin) 투여가 주된 치료법이 됐다. 

    항생제가 치료로 사용되면서 한동안 잊혔던 분변이식술이 다시 화려하게 의학계에 부활한 것은 북미에서 난치성 C. difficile 장염이 증가하게 된 것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서는 독소를 매우 많이 분비하는 변형 C. difficile 감염이 유행했고, 기존에 주된 치료법인 반코마이신 치료에 저항성을 보이면서 사망률이 높아졌다. 2000년에 들어와서 미국에서는 C. difficile 장염으로 연간 10만명 이상 사망하는 에피데믹(epidemic)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AIDS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정도였다. 

    이 시점에 그동안 간헐적으로 시행되던 분변이식술을 다시 임상 현장으로 꺼내온 것은 미네소타 의대의 Khoruts 교수였다. 2008년 Khoruts 교수에게 다른 병원에서 8개월간 치료가 안되는 64세 여성 난치성 C. difficile장염 환자가 전원됐다. 이 환자는 하루 종일 15분마다 설사를 하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그동안 약 27kg의 체중 감소가 있었다. Khoruts 교수는 7개월간 추가적인 항생제 치료를 시행했으나 항생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과거에 시행됐던 '분변 세균치료법'에 대해 공부한 후 시도해보기로 했다.

    환자 남편의 분변을 주방용 블렌더로 생리식염수에 섞어 갈아서 대장내시경을 통해 환자에게 주입했는데, 이후 환자는 "뭔가 몸 안에서 변화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러더니 15개월간 지속됐던 설사가 시술 이후 단 2일만에 정상변을 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최근 10년간 난치성 C. difficile에 대한 분변이식술은 약 90%의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여주면서 의료의 중심에 당당히 자리잡게 됐다.
     
    2000년대 이후 장내미생물총 이상이 여러 가지 질환을 일으키는 병인으로 알려지면서 분변이식술을 다른 여러 질환에까지 적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분변이식술에서 발생 가능한 부작용도 우려되기는 하지만, 앞으로 장내 미생물총이 건강과 질환에 미치는 영향이 밝혀질수록 '건강인의 똥'을 치료로 사용하는 방법이 더 각광을 받을 것이다.
     
    그림2. 분변이식술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들.Groot 등. Gut Microbe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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