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년도 수가 협상이 끝난 뒤에야 건강보험공단이 얼마를 내놓았는지 알 수 있었다."
건강보험공단과 의약계간 수가 협상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건강보험공단과 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등은 1일 오전 4시경 2017년도 수가 협상을 모두 타결 지었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수가 인상률을 보면 의원이 3.1%, 병원이 1.8%, 한방이 3%, 약국이 3.5%, 치과가 2.4%, 조산원이 3.7% 등이다.
내년도 수가 인상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추가 투입액은 8134억원.
향후 10년간 꼬박 대폭 인상(?) 해야 초진료 2만원대 진입
수가가 인상됨에 따라 내년도 동네의원의 초진료는 1만 4410원에서 1만 4860원으로 450원 인상된다.
의사들은 내년도 수가 인상폭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동물병원에서 강아지 진찰료로 받는 '1만 9000원' 수준이 되려면 건강보험공단이 앞으로 10년간 선심 쓰듯이 매년 '3%' 이상 대폭(?) 인상을 보장해야 한다.
의사들이 내년도 수가에 대해 "우리가 거지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와 달리 건강보험공단은 '크게 양보했다'는 태도다.
공단은 수가협상 타결 직후 "작년 메르스 사태 및 의약계의 어려운 경영 현실, 보건의료 현안사항에 대한 원활한 협조 등을 고려해 전년도 인상률 1.99%보다 높은 수준으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공단의, 공단에 의한, 공단을 위한 협상
수가협상 과정을 들여다 보면 공단의, 공단에 의한, 공단을 위한 일방통행이 여전하다.
공단은 수가 협상에 참여한 의약단체 대표들에게 내년도 수가 인상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얼마 더 투입할 것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의약단체 협상단은 협상이 타결된 뒤에서야 공단이 수가 인상용으로 8134억원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의약단체 협상단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고, "개원가가 어렵다" "약국이 다 죽어간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공단에 매달려야 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수가 협상의 재정 투여금액도 알지 못한 채 매번 협상에 임해야 하는 불합리한 수가협상 결정구조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공단은 수가협상 후에도 수가 인상 수준, 각 단체별 인상폭을 결정한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면 주는대로 그냥 받아라"는 식이다.
의약단체들이 공단이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굴욕' 협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일례로 지난해 병원협회와 치과의사협회는 공단과의 수가협상이 결렬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수가를 결정했다.
당시 건정심이 결정한 수가 인상폭은 병원이 1.4%, 치과가 1.9%였다.
이 수치는 공단이 이들 단체와 수가협상을 하면서 최종안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공단 재정운영위원회는 이들 단체와 수가협상이 결렬되자 '공단이 제시한 최종안 이상으로 수가를 인상해선 안된다'며 건정심을 압박했고, 건정심은 공단의 요구대로 수가를 결정했다.
건강보험법 제4조(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② 심의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1명을 포함하여 25명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③ 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차관이 되고, 부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위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이 된다.
④ 심의위원회의 위원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람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1.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가 추천하는 각 2명
2.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및 자영업자단체가 추천하는 각 1명
3.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 및 약업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추천하는 8명
4.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8명
가.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2명
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원장이 추천하는 각 1명
다. 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4명
건정심 위원 구성을 놓고 보더라도 공급자단체는 절대 불리하다.
건정심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25명 중 의약계 대표는 8명 뿐이다.
8명은 수가 인상에 부정적인 시민단체 등의 가입자대표, 나머지 8명은 복지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정부, 공단, 심평원, 학계 대표 등이다.
이 때문에 의약단체들은 건정심에 가봐야 전혀 이로울 게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공단과의 협상에서 0.1%라도 더 받고 끝내자는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다.
협상의 룰도, 수가 조정 근거도, 공단에 절대 유리한 '이상한' 협상을 10여년째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의협이 "20대 국회에 불합리한 수가협상 결정구조를 바꾸는 법안을 반드시 발의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