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공단 조사를 받고 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인은 오죽했겠느냐."
강릉에서 개원하고 있는 S원장은 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얼마 전 자살한 비뇨기과 원장 A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S원장은 A씨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개원하고 있어 가까운 사이였다.
또 우연하게도 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0월 24~26일 오전까지 S원장을 상대로 방문확인 조사한 뒤 26일 오후부터 3일간 A씨 의원을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A씨는 조사 예정일 장례식장에 가야 할 일이 생기자 방문확인 조사를 연기했다고 한다.
그 후 A씨는 건보공단으로부터 두 차례 조사에 응하라는 독촉을 받았다.
당시 A씨는 S원장에게 "건보공단이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보건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하고, 거짓청구가 확인되면 환수에 그치지 않고, 과징금, 면허정지, 업무정지 등 4가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고 털어놓으며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S원장도 A씨에게 자신의 방문확인 조사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줬다.
S원장은 건보공단이 예고한 조사범위를 넘어서 추가 자료를 요구하며 자의적으로 조사를 확대했다고 분개했다.
S원장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조사를 나오면서 진료기록부, 본인부담금수납대장, 약제 및 치료재료 구매내역서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조사 이틀째가 되자 이들 장부 외에 물리치료대장까지 요구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S원장이 이에 대해 항의하자 "자료제출 요구 공문에 진료기록부, 본인부담금수납대장, 약제 및 치료재료 구매내역서 '등'이라고 명시하고 있어 추가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건보공단은 S원장이 물리치료장부를 부실하게 기재했다며 과거 6개월치 진료분을 추가 조사했고, 일부 부당청구가 확인되자 보건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하겠다고 통보했다.
S원장은 "이런 행태는 부당청구를 확인할 때까지 털겠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심지어 공단은 내가 착오가 있었다고 설명해도 허위청구로 결론 내렸고, (부당사실을 인정하는) 사실확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면서 "빨리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식으로 압박해서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는 부당금액이 얼마인지조차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조사를 받아보니 압박이 너무 심했고, 언제 또 현지조사를 받을지, 어떤 처분을 받을지 걱정이 태산"이라면서 "A씨 입장에서는 본인도 매를 맞아야 할 상황인데 공단이 자꾸 자료를 제출하라, 조사를 받으라고 독촉하니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겠나 싶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공단은 단순히 조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일지 몰라도 조사를 받는 의사 입장에서는 협박으로 들린다"면서 "나도 A씨 이야기를 듣고 공단에 전화해 '방문확인을 거부하면 복지부에 현지조사를 의뢰하면 되지 왜 자꾸 조사를 받으라고 압박하느냐'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S원장은 "A씨는 관행적으로 진료비를 청구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이중청구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면서 "복지부 실사를 받으면 최대 3년치 진료분을 들여다 보고, 허위청구가 확인되면 4중 처벌을 받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A원장이 자살한 사실을 알고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나도 당하는 입장이다 보니 당시에는 A원장에게 적극적으로 묻지 않고 넘어갔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S원장은 현지조사, 방문조사는 폭력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조사를 나와 잘못한 게 확인되면 부당금액을 환수하는 선에서 계도하면 되는데 불법이 확인될 때까지 자료라는 자료는 다 뒤지고, 한번의 실수에 대해 4중처벌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건 살인이고 폭력"이라고 질타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방식의 행정처벌, 강압적인 조사 행태와 A씨의 비극이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반면 건보공단은 A씨에 대해 방문조사 지침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언제 조사를 나갈지 A씨와 사전에 전화로 일정을 조율했고, 개인 사정상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두 차례 문서로 요청했지만 조사를 거부했다"면서 "공단은 A씨와 대면한 사실이 없다"고 환기시켰다.
공문에 명시된 것 이외의 자료를 요구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공단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강압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게 아니지만 상대방이 떳떳하지 못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불법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조사하는 게 아니다"면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