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충남 천안의 한 종합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유족들이 지난 16일 오후 진료실에 난입해 담당의사를 컴퓨터 모니터 등을 이용해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는 유족들에게 82세 여성 환자의 사망원인이 기저질환 악화에 따른 것이라고 충분히 설명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의사들을 비롯해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갑자기 환자와 보호자의 폭행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8일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가 올해 5월 마련한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확인한 결과, 의료인은 폭행사고 예방을 위해 경청하는 습관을 가지고 환자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공격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이 폭행 피해를 입으면 행위 중지를 요청하고 폭언·폭행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피한 다음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와 보호자의 폭행은 순식간에 발생하는 만큼 피할 수가 없다.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경청 습관 갖고 환자 감정 알아채고 공격 행동 피할 것 주문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폭행사고 예방법은 보건의료종사자들의 태도를 점검하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신체변화를 감지하고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보건의료기관 종사자들의 태도에 대해 ① 팔짱을 끼거나 한숨을 쉬는 행동, 상대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② 말을 가로채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③ 경청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④ 환자의 감정을 알아차린다. ⑤ 공격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피한다.(예 빠르게 움직이거나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행동, 큰소리로 이야기하기 등) ⑥ 불필요한 전문용어는 자제한다. ⑦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등을 권고했다.
가이드라인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신체변화 감지를 위해 주먹을 쥐는 등 위협적인 행동, 갑자기 다가옴, 호흡이 가빠짐, 물건을 차거나 집어 던짐, 알코올 혹은 약물 사용의 징후를 미리 예측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또한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① 두 팔을 벌릴 만큼의 안전거리를 유지한다 ② 유리컵, 가위, 칼, 샤프 등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제거한다 ③ 가해자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2명이상 대응) 등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의료기관 차원으로는 폭력 예방을 위한 직원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필요한 조건으로는 비상시 경보, 모니터링 시스템, 안전요원 신고 및 경보 시스템 설치, 복도에 CCTV 설치, 조명 등과 같은 보안 장치, 경찰(또는 청원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핫라인 구축, 응급실이나 로비에 폭행 방지 포스터 게재 등을 제안했다.
가이드라인은 폭행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 스스로 “행위자에게 행위 중지를 요청하고 폭언·폭행이 일어나는 자리에서 피한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행위자와의 대화를 녹음한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상황을 메모해두거나 진료기록, 업무일지에 기록한다. 관련 부서에 폭언 및 폭행이 일어났던 상황을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보고하고, 직원 보호 관련 상담, 치료 및 조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의료기관에도 "폭행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다. 주변인은 청원경찰의 도움을 받거나 경찰에 신고한다. 파일, 행위자 기록 등 증거를 수집한다. 업무 교체, 휴가 등으로 직원을 보호한다. 피해자가 상담 및 육체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법적조치를 취한다면 지원한다”고 했다.
진료거부 가능, 폭행 처벌 강화 의료법 통과했지만 여전히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에 따르면 환자 또는 보호자 등이 해당 의료인에 대해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해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도록 한 경우라면 정당한 진료거부 사유에 해당한다.
복지부는 “의료법 제15조에 따라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그러나 보건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폭행과 같은 범죄행위, 의학적 사유 등 합리적 사유가 있을 경우 의료기관 및 의료인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신 의료기관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료가 어려운 사유를 충분히 설명해 불필요한 오해나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4월 23일에는 의료인 및 환자 등의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료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의료법 제12조제3항을 위반해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단,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는 공소 제기는 불가하다.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죄를 범한 때에는 형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된 상태다.
이와 관련, 의료계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우며 반복되는 폭행에 이렇다할 대응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진료실에 의사 혼자 또는 간호사와 둘이서만 있는데 폭행 사건은 순식간에 발생해 대응하기 어렵다”라며 “강력한 처벌 사례를 보여주는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도 "이제 진료실에 호신용품을 구비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의료기관 내 폭행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섬뜩한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제적으로라도 의료인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