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응급실로 이송된 20대 주취 환자의 뇌경색을 적시에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 2명에게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과 관련해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은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의사 2명에게 각각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의 “신경학적 검사 시행이 표준 절차”라는 감정 결과 등을 근거로 이같은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료계는 주취 환자 특성상 신경학적 진찰과 검사 협조가 어렵다는 점과 진료 결과만을 근거로 전공의들에게 금고형까지 선고한 것은 과중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판결이 이어지면 응급의료의 붕괴는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11일 메디게이트뉴스가 해당 사건의 민사 항소심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이 사건은 2018년 충남 천안의 한 대학병원에서 발생했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20대 남성 A씨는 2018년 6월 1일 오후 5시 57분경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A씨 어머니가 119에 신고했고, A씨는 같은 날 오후 6시 33분경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119 구급활동일지에는 A씨 증상으로 복통, 의식장애, 오심·구토, 어지러움, 편마비가 기재됐다. 구급대원 평가 소견에는 “지남력은 있는데 말이 어눌하고 좌측 편마비 확인해 빠른 이송을 결정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송 중 구토도 1회 있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병원 의료진은 오후 6시 43분경 A씨를 진찰했고, 오후 6시 55분경 뇌 CT 검사를 시행했다. CT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의료진은 오후 9시 39분경 A씨 상태를 다시 확인한 뒤 관절염약과 위궤양약 3일치를 처방했고, A씨는 당일 퇴원했다.
다음 날인 2018년 6월 2일 A씨 상태는 악화됐다. A씨는 오후 4시 30분경 왼쪽 다리를 들 수 없는 등 좌측 위약감을 호소했고, 다시 119를 통해 오후 5시 8분경 같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뇌 CT 검사 시행∙이송 3시간 뒤 퇴원 조치…재판부 "진단∙치료 여지 있었다"
재내원 당시 A씨에게서는 기면 상태, 좌측 상·하지 근력저하, 좌측 중추성 안면마비 등 신경학적 이상 소견이 확인됐다. 뇌졸중 중증도 평가도구인 NIHSS 점수는 15점이었다. 이후 뇌 MRI 등 검사에서 우측 중대뇌동맥 뇌경색이 진단됐고, 의료진은 기계적 혈전용해술을 시행했다.
이튿날인 6월 3일에는 뇌 CT에서 우측 전두엽 뇌경색 부위의 세포독성 부종 악화와 출혈성 변환 소견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감압두개절제술을 시행했다. A씨에게는 이후 좌측 상·하지 편부전마비, 좌측 상지 경직, 좌측 발목관절 배측 제한 등 후유장애가 남았다.
민사 항소심은 병원 측 과실을 인정했다. 대전고등법원은 A씨가 처음 병원에 이송됐을 당시 뇌경색의 대표적 증상인 좌측 팔 근력저하와 구음장애가 있었고, 병원 의료진도 119 구급활동일지를 통해 이를 알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대전고법은 뇌경색의 경우 발병 후 24시간까지는 일반 CT 영상으로 검출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CT에서 이상 소견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조영 CT 또는 MRI 등을 통한 감별진단이 필요할 수 있다고 봤다.
또 당시 의료진이 두통, 어지러움, 오심·구토, 의식 명료 여부, 동공 빛 반사 정도는 확인했지만, 상∙하지 운동기능과 감각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뇌 CT에서 이상 소견이 없다는 이유로 추가 검사 없이 A씨를 퇴원시킨 점도 과실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진료기록 감정 결과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진료기록을 감정한 E병원 감정의는 급성기 뇌졸중이 의심되는 경우 응급실에서는 비조영증강 CT를 촬영하고, 진단과 치료를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다중모드 CT 또는 MRI 사용을 권장한다는 취지의 소견을 냈다. 1심 진료감정촉탁에서는 뇌경색이 발병한 경우 24시간까지는 일반 뇌CT 영상으로 검출되기 어려워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영제를 사용한 뇌CT 또는 뇌MRI 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는 소견이 제시됐다.
또 항소심 감정의는 A씨처럼 중대뇌동맥에 뇌경색이 발생한 경우 증상 발생 후 3시간에서 4시간 30분 이내 정맥내혈전용해술 치료를 시행하면 대략 30% 정도에서 혈관 재개통이 이뤄지고, 그 경우 현재 상태보다 예후가 좋았을 것으로 예측했다.
대전고법은 A씨가 2018년 6월 1일 오후 5시 57분경 증상이 발생했고, 같은 날 오후 6시 33분경 병원에 도착해 오후 9시 40분경 퇴원한 점을 들어 최초 내원 당시 뇌경색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지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의료진 행위로 발생한 뇌경색 아냐…병원 측 책임 제한해 2억9000만원 배상 판결
판결문에서는 진료기록 사후 수정 문제도 다뤄졌다. 재판부에 따르면 당시 의료진은 2018년 6월 1일자 응급실 경과기록과 6월 2일자 응급의료센터 임상기록 일부를 사후 수정했다. 수정된 기록에는 최초 기록에 없던 내용들이 추가됐다.
추가된 내용에는 A씨의 상·하지 운동기능과 감각을 확인했다는 내용, MRI 등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으나 환자와 보호자가 거절했다는 내용, 보호자가 환자의 증상을 음주상태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추가 검사를 다시 거절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또 6월 2일 재내원 당시 기록에서는 “전일 좌측 팔 근력저하로 내원했다”는 취지의 기재가 삭제되고 “전일 추가 검사를 거절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 항소심은 이 같은 수정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정된 내용들이 뇌경색 진단과 치료 지연에 병원 측 책임이 있는지 가르는 중요한 사실관계라는 이유에서다. 수정 시점이 A씨가 뇌경색 진단을 받고 혈전용해술을 받은 다음 날 아침이라는 점, 수정 내용이 의료진의 주의의무 이행을 뒷받침하는 방향이라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재판부는 의료진이 뇌경색 진단 지연 과실을 숨기고, 그 책임을 환자 측에 전가하려는 의도로 기록을 수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냈다.
앞서 민사 1심은 수정된 진료기록을 근거로 병원 측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의료진이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했고, MRI 등 추가 검사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환자 측이 거절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수정된 진료기록을 배척하고 최초 작성된 진료기록을 기준으로 삼았다. 항소심은 병원 의료진이 A씨에게 뇌경색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이를 충분히 살피지 않았고, 신경학적 검사와 추가 영상검사를 하지 않아 뇌경색을 적시에 진단하지 못했다고 결론냈다.
다만 A씨의 뇌경색은 A씨의 체질과 기왕증에 의해 발생한 것이고, 조기 치료를 했더라도 후유증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병원 측 책임은 70%로 제한했다. 이에 재판부는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에 A씨에게 약 2억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