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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짓기와 여러 사람 먹는 ‘큰 밥’ 짓기처럼 공정개발 화학과 의약화학은 프로세스가 다르다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기사입력시간 20-10-02 07:58
최종업데이트 20-10-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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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2017년 가을 토요일에 청량리역 굴다리 ‘밥퍼’에서 나이드신 분들의 점심 드시는 일을 여러 젊은이들과 또 아내와 함께 봉사한 하루가 있었다. 우리가 보는 시선(視線)을 넓히고 좋은 시선(施善)을 몸으로 행하자는 취지였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 어떻게 일할 지를 듣고 분담하고 오후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몸이 바쁘고 쉽지 않은 하루였다. 300명의 어른들을 효율적으로 점심을 드시게 하는 것과 우리 부부처럼 2명의 밥상이나 혹은 젊은이들의 혼밥을 준비하는 것과는준비와 프로세스의 차원이 달랐다.

신약개발에 있어서 초기 과정의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의약화학(Medicinal Chemistry) 단계의 후보물질(의약품)과 개발 첫 단계인 전임상에서부터사용될 원료의약품(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 API)은 혼밥과 ‘밥퍼’에서 먹을 밥이 같은 밥이지만 다르듯이 다르다. 원료의약품을 만드는 공정개발 화학(Process Chemistry)이 의약화학(Medicinal Chemistry)과 화학이라는 말은 같더라도 달라도 훨씬 다르다. 전임상 연구 단계인 의약화학에서는 10 그램(g) 이하 물질이 사용되지만 공정개발 후인 안전성 평가를 위한 전임상 단계에서는 10Kg, 그리고 마지막 상업 생산 단계에서는 수십 톤(ton)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2011년 H사에 입사해 맡은 첫 부서가 오픈 이노베이션그룹(Open Innovation Group, OIG)이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미국 버클리대학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2003년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기업이 연구개발·상업화 과정에서 기업이 가진 내부 자원에 더해 혁신을 위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업 외부인 대학이나 연구소 혹은 다른 기업에서 들여오는 방법이다. 기업의 경계를 허무는 개방성이 특징이다. 특히 H사처럼 연구 후발 제약기업에는 딱 맞는 전략이다. 

OIG는 당뇨 약 연구개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H사는 1998년 A출시 이후 당뇨병 치료제 매출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소위 말해 프랜차이즈 보호(Franchise Protection)를 위해서이다. 기존의 제제연구소는 C, D의 서방형 제제를 자체 개발한 경험이 있다. 새로 시작한 OIG는 당뇨병 치료제 1위 기업의 명성을 미래에 유지하기 위해 당뇨병 치료 연구개발에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했다.

OIG는 지금 흔히 쓰는 용어로는 소위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타입으로 나까지 5명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개인의 미국에서 신약개발 경험과 C&C연구소를 운영한 경험으로는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약 화학자가 필요하다고 최고경영진을 설득하고 있던 중이었다. 경험 많은 리더를 포함해 6명이 필요하기에 맥주를 한 묶음으로 판매하는 모양을 따라 ‘6 Pack’으로 불렀다.

OIG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는 당뇨병 치료제 타깃과 후보물질들을 모두 조사했다. 그 중체내에서 중성지방의 생성을 돕는 효소인 ‘E’은 매력적인 타깃이었다. 저해제는 ‘E’의 기능을 떨어뜨리며 중성지방의 생성을 억제해 비만과 당뇨병 치료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는 타깃이었다. 동물 모델에서 비만과 당뇨병에 치료효과를 갖고 있는 신약 후보물질이 2개나 존재했다.

나의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초기에 돈을 더 투자해서라도 두 가지를 다 회사 안으로 가지고 와서 한 사람이 두 가지 정보를 비교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양 쪽을 모두 접촉했다. 한 회사의 담당자는 내가 미국에서부터 잘 아는 분이라 저런 분이 ‘6 Pack’의 리더로 모셔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연구소의 담당자는 과제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엄청 났다. 결국 일 년 동안의 이런 과정을 통해 한 연구소의 과제를 들여왔고 한 회사의 담당자는 ‘6 Pack’의 리더로 모셔왔다. ‘E’ 신약개발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었다.

OIG로 들여온 후보물질을 쥐에 투여하자 중성지방이 억제되면서 비만과 당뇨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쥐를 두 무리로 나눠 고지방 음식을 먹인 뒤 한쪽 그룹에만 후보물질을 투여하자 혈액 내 중성지방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고지방식을 4주간 먹이면서 후보물질을 투여한 쥐는 몸무게가 거의 그대로였지만 후보물질을 처방하지 않은 쥐는 몸무게가 최대 6㎏ 가까이 증가했다. 당뇨병과 비만에 모두 효과가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이 결정된 것이다.이제 후보물질이 정해졌으니, 임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다음 단계인 비임상 독성실험 단계를 가기로 결정했다.

OIG에서는 혼밥을 위해 만든 밥이 아니라 ‘밥퍼’에서 먹일 밥 짓는 일을 국내에 있던 CRO에 의뢰했다. 비임상 독성실험을 위해서는 5Kg의 후보물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문제가 생겼다. CRO가 예정됐던 5Kg이 아니고 2Kg만 생산이 됐다고 연락이 왔다. 한 번 더 만드는 시간이 지연됐고 같은 Batch가 아니라는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혼밥 때 만든 밥과는 달리 후보물질의 결정형이 달랐다.

공정개발 화학이 의약화학과 ‘화학’이라는 말은 같아도 다르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내가 의존하던 두 박사님도 의약화학의 전문가이지, 공정개발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상황이 생각났다. 머크와 쉐링플라우가 합병한 후에 의약 화학자가 직장을 쉽게 잃는 반면 공정개발 화학자는 유지되는 것을 경험했다. 공정개발 화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그런 상황을 보고 안 것이다. 우리 후보물질도 14개 단계를 거쳐 합성되기에 미리 공정개발에 들어갔어야 한다.

당시 왜 신약개발의 최고봉을 맡은 책임자가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비유되는지 알 것 같은 현실을 경험했다. 신약개발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다 외우고 있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앞으로 닥쳐올 단계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각기 다른 파트에서 올바른 음을 낼 수 있도록 큐를 동시에 줘야 한다.

신약개발은 첫 탐색 연구에서의 의약학적 개발목표(목적, 효능 및 작용기전 등)를 설정하고, 신물질의 설계, 합성 및 효능검색 연구를 반복해 개발대상 물질을 선정하는 단계와 후보물질에 대한 대량제조 공정개발, 제제화 연구, 안전성평가, 생체 내 동태규명을 통과해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을 개발해 가는 전체적으로 긴 과정이라는 것을 일반인들도 반드시 인식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 사람 먹는 큰 밥을 지으려면 같은 ‘밥’이라도 혼밥과는 프로세스가 다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