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감염병 상황시 전공의 강제 차출 가능한 겸직 허용법
대학 입학부터 시작되는 의료인으로서의 삶에서, 가장 힘든 때를 꼽으라면 언제일까. 과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3~4년간의 ‘전공의’ 시절을 꼽는다. 의대 4년을 거쳐 의사가 되고 1년의 인턴 생활을 마친 후 전공과목을 정해 3~4년간의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치는데, 이 기간이 의사 생활의 꽃이자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공의는 사실상 병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4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타 직종과는 근로 조건의 개념 자체가 아득히 차이 난다. 근무 시간은 주 100시간을 넘기기 일쑤고 연속 당직은 당연한 일이다. 48시간 연속으로 눈 뜬 상태로 일하기 일쑤고 한 달에 한번 집에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당직 후 오프’ 라는 건 밤샘 당직을 서고 오전에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전일과 똑같이 하루종일 근무를 하고 나서 저녁에 집에 가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나라나 전공의 과정은 힘들지만, 우리나라 전공의들이 유독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는 의료 구조 때문이다. 본인 부담이 적고 교통 편의가 좋아 환자들은 질환의 경중에 상관없이 대형 병원으로 몰리고, 낮게 책정된 수가 때문에 병원은 박리다매로 인력을 갈아넣는다.
이 '인력 갈아넣기'에서 다른 직종도 힘들지만 가장 ‘을’의 위치에서 4년간 족쇄가 채워진 채로 최전선에 투입되는 것이 ‘전공의’다. 그 어떤 부당한 일이나 심한 일을 겪어도 전문의를 따기까지 퇴사나 근무지 이탈은 꿈도 꾸기 힘들다. 전문의 자격이라는 목줄을 병원과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체력이 좋은 20대 중반의 몸을 병원에 갈아 넣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돼있다. 새벽 4시에 땀에 젖은 수술복을 벗지 못한 채로 탈의실 구석 화장실 앞에서 30분간 새우잠을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1월 29일 코로나19 등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전공의 겸직을 허용하는 법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 규정에는 전공의는 소속된 수련기관 외의 기관에서 근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는데, 감염병이나 자연재해 등 재난 상황에서 전공의 근무가 필요한 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한번 상의 없이 발표된 이 입법의 목적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의료계의 자발적 지원이 이어져 의료 인력 수급 큰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이후 여름에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가 깨져 의료 자원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지난 파업 때 전공의들의 파업이 정부에 결정타였던 만큼, 이들을 미리 옭아매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이런 의혹에 대해 ‘전공의 겸직은 본인의 의사와 수련병원장의 허가가 전제돼야 이뤄질 수 있다’며 해명했지만, 위에 설명한 전공의의 병원 내에서의 ‘을’로서의 입장 때문에 자발적인 거부가 가능할지 걱정이다.
그러던 지난 1월 26일, 군산의료원에서 응급의학과장(성형외과 전문의)으로 근무 중이던 공중보건의사 이유상씨가 관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공중보건의로 대학병원이 없는 군산 지역에서 응급실과 코로나19 진료까지 도맡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코로나19 진료에 투입된 공중보건의들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얘기가 무성했던 만큼 그의 사망에 많은 의료인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와 협력하고 신뢰를 쌓아 좀 더 효율적으로 의료 자원이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제 '인력 갈아넣기'는 그만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