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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의료전달체계 개선 과정에서 나타난 의료계 의사소통 문제

    "의협, 정책 시행 합의 이끌어내고 회의자료 상세히 공개해야…성숙한 논의 과정 기대한다"

    기사입력시간 2018-01-30 09:01
    최종업데이트 2018-01-30 22:19

    ▲의협이 이달 6일 마련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설명회.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이 오늘(30일)을 기한으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간 극적 합의가 이뤄질지 아니면 완전히 깨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양측은 일차의료기관의 입원실(단기입원) 유지 조항을 놓고 재논의 여지를 남겼으나, 바로 전날인 어제까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는 정부, 의료가입자, 의료공급자, 공익단체 등이 모여 2016년 1월 출범했고 2년동안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쳤다. 협의체가 의료기관을 종별에서 기능별로 구분한 권고문을 완성한 것은 지난해 11월 17일이었다. 이것이 의료계에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11월 25일 의협 산하단체인 개원의, 학회 보험이사 연석회의에서였다.

    이날 의협 임익강 보험이사는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 투쟁 준비와 별도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사전준비를 위해 각 단체의 의견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12월에 확정된다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을 ‘깜짝’ 공개했다. 단, 기자들에게는 권고문을 말로만 설명하고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당시 임 이사는 “권고문은 단순한 권고문이 아니다. 의협에서 서명을 하면 마치 ‘헌법’처럼 작동한다”라며 “회원들이 내용을 미리 알아야 한다고 판단해 공개한다”고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당시 보험이사들은 많이 어리둥절해했다. “2년간 논의했다지만 처음 본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의협이 논의를 진행할 때마다 회장단에 메일을 돌려 회신을 받았다지만, 이날 참석한 산하단체에서 의사소통 과정을 거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해 보였다.
     
    지난 몇 년간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대형병원에 감기 환자 등 경증환자 쏠림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급기야 2016년에는 건강보험에서 일차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20% 아래인 19.5%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권고문은 한 눈에 봐도 의료계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문제로 보였다.

    그러다가 외과계 의사회가 권고문에 일차의료기관에서 입원실과 수술실 폐지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면서 권고문 내용을 하나하나 알게 됐다. 이후 지난해 12월 21, 22일에는 추무진 의협회장이 외과계와 내과계 의사회 회장단 간담회를 차례로 마련하면서 설득에 나섰다. 내용은 국회에서 발표된 문재인 케어 성공전략과 일치했으나 문서에는 ‘대외비’라는 단서가 들어있었다. 의협은 취재도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외과계 의사회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자 의협은 지난해 12월30일과 올해 1월 6일 공개 간담회를 두 차례 열어 의견 수렴에 나섰다. 이후 또 다시 회장단 간담회에 이어 개별 회장들의 의원을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정책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외과계 의사회는 권고문에 담긴 입원실 폐지가 아닌 유지를 위해 절규하고 하소연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입원실 유지 자체가 아니라 수술과 입원을 통해 외래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하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과정에서 권고문을 지속적으로 수정한 공익 대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하려고 애썼다. 김 교수는 반복해서 권고문을 고치면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본인들이 직접 나서면 오히려 역풍이 생길 수 있다며 숨죽여 기다렸다. 
     
    권고문 설득 과정에서 다소 의아한 것은 의협이었다. 외과계 의사회가 생존을 말하고 이를 공익 대표와 복지부가 진심으로 귀 기울이려고 노력할 때 의협은 오히려 “권고문을 받아들여야 일차의료기관에 실익이 많다”고 합의 자체에만 치중한 모습이었다. 의협은 외과계 의원에 대해 이차의료기관의 전문의원으로 올라가면 혜택은 더 많고 규제는 의원급으로 적용받는다고 설득했다. 급기야 원하지 않는 의원은 새로운 의료전달체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했다. 간담회에서 “의협이 마치 정부 공무원처럼 이야기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의협은 병협 뿐만 아니라 산하단체와도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앞으로 의협이 회원들과 각종 정책을 논의하려면 세 가지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
     
    첫째, 의료계 내에서부터 정책의 개념과 정책 시행 목표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목표가 일차의료를 살리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아 보였다. 만성질환 관리 역할에 만족하는 내과계와 입원실 폐지 결사 반대를 외치는 외과계 입장이 너무 달랐다. 전제조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내용이 알려질수록 각자 진료과, 직역에서의 주장만 펼치는 모습이 반복됐다. 
     
    둘째, 모든 자료는 대외비가 아니라 홈페이지나 'KMA 폴리시' 등에서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어야 한다. 회장단에 메일을 보낸다면 누가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고 이를 다시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생략되기 쉽다. 권고문에 뒤늦게 논란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과정이 빠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내용은 회장단이 아니라 회원들에게까지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셋째, 회의록을 상세하게 공개해야 한다. 의협의 회의 결과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회의 과정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내용이 논의된다면 반발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협의체를 무작정 불신하고 배후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의 목소리가 많았다. 회의록을 공개한다면 협의체 논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협의체 구성원인 시민단체 등의 입장을 확인해 사회 속의 의료계 역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한달동안 개원 의사회 임원진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권고문 합의 여부를 떠나 외과계 의원을 포함해 일차의료기관의 나아갈 방향과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을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고 본다. 의료계가 발전적인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 의협은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한다. 나아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나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등에서 나타난 환자 안전 책임까지 생각하는 성숙한 의료계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