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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료인 폭행, 의료계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근본 문제 해결하길”

청와대 국민청원은 끝났지만 의료계 스스로 의협, 병원, 정부, 국회에 주장하고 감시해야

기사입력시간 18-08-07 16:52
최종업데이트 18-08-0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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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익산 응급실 폭행 사건과 (오른쪽)구미 응급실 폭행 사건 흔적.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술에 취한 환자가 이유없이 때린 것도 모자라 칼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가해자가 언제라도 다시 병원으로 쫓아올까봐 마음이 불안하다.”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7월 1일 술에 취한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이후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많은 관심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신적인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해당 사건은 가해자로부터 ‘감옥에 갔다 칼로 찔러버릴거야’라는 살인 협박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피해 의사가 코피를 흘리는 사진과 가해자가 피해의사를 때리는 동영상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주요 매체에 일제히 보도됐다. 같은 달 3일 이런 내용으로 응급실 의료인 폭행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됐다. 국민청원은 4일만인 6일 5만명을 돌파했다. 대한의사협회는 8일 열린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규탄대회를 열고 국민청원 동참을 주문했다.  

이런 와중에 전국에서 의료인 폭행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같은 달 2일 경북 울진 응급실에서 환자가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6일 강원도 강릉에서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진료실에서 의사를 망치로 위협하는 사건이 있었다. 17일 경북 경산에서 처방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병원 출입구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른 사건도 있었다. 31일 경북 구미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환자가 쇠트레이로 환자의 머리 뒷부분을 내리쳐서 동맥이 파열됐다. 

의협은 의사회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행운의 편지를 보내는 등 국민청원 참여를 요청했다. 서울시의사회, 전남의사회, 대전시의사회 등은 거리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계속 되는 폭행 사건에도 국민청원은 20만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8월 2일 14만7885명으로 마감했다. 국민청원은 시작된지 30일안에 참여인원 20만명이 넘어야 청와대나 정부 부처 관계자가 책임 있는 답변을 하게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14만7885명으로 마감했다. 

국민청원 참여가 저조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해석된다. 첫째, 의료계 전체적으로 의료현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혹여 관심이 있더라도 실제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려워보였다. 의협 차원의 전략 부재와 의사들의 관심 부족이 맞물렸던 것으로 판단된다. 구미 폭행 사건과 국민청원 진행 기사는 각각 수천에서 수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많은 의사들이 해당 사건을 접하고 "안타깝고 화가 난다" "국민청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말했다. 반면 일부 의사들에게 국민청원 참여 여부를 물어보면 “국민청원이 진행되는지 몰랐다” "어떻게 참여하는지 모르겠다" "로그인이 번거롭다" 등이라는 답변이 오기도 했다. 

둘째, 의료계는 의료현안 보다 눈 앞에 닥친 환자 진료에 더 바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의료인 폭행으로 열기가 들끓던 와중에 갑자기 7일부터 시작된 발사르탄 사태가 의료계 모든 이슈를 덮었다. 발사르탄 사태는 중국산 원료의약품에 발암물질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돼 일부 고혈압치료제 품목이 전면 수입·판매 중단 조치된 것을 말한다. 내과와 가정의학과 등 상당수의 의사들은 진료실에 들이닥친 환자들로부터 "자신이 먹는 고혈압약에 발암물질 포함됐는가"에 대한 질문에 사실을 확인하고 답변하느라 폭행 사건 등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어 보였다. 

셋째, 의료계는 가까이 맞닿아있는 다른 보건의료계 직역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의사면허 소지자 13만여명이 참여하더라도 국민청원 성사인원 20만명에 모자란다. 이런 이유로 의협은 8일 규탄대회에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이나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을 초대했고 31일 대한간호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과 공동 성명을 냈다. 하지만 의협이 그 이상의 연대를 얻어낸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해당 단체들이 의료인 폭행 사건 해결에 나선다거나 국민청원 동참을 주문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동참은 더욱 요원했다.  

의료계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이 성사된 것은 올해 1월 외상센터 지원에 대한 국민청원이었다. 외상센터 국민청원은 지난해 11월 17일 시작해 9일만에 20만건을 넘어섰고 12월 16일 28만명으로 마감했다. 올해 1월 16일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직접 외상센터 대책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은 한 시간짜리 답변을 준비하기 위해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를 직접 찾아가는가 하면, 관련 학회 임원진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외상센터 지원자를 늘리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의료인 폭행 사건 역시 국민청원이 끝났더라도 의료계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록 국민청원은 끝났지만 약15만명이 의료인 폭행 사건에 관심을 갖고 동참한 의미는 살아있다. 의협은 의료인 폭행 사건의 초동대처 강화를 위한 경찰청장에 면담을 신청하고 대한병원협회, 병원장 등과의 간담회를 통해 공동 문제 해결에 나선다고 했다. 또한 국회에 발의된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조항)와 벌금형 삭제 등의 입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 전체가 의료인 폭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의협과 병원, 정부, 국회 등에 지속적으로 대응책을 요구하고 이를 감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의료현장에서 크고 작은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료계 누구나 피해자일 수 있고 그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