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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용 대마 합법화, 의료계도 처방 위한 준비 필요하다"

    개정안 국회 통과됐지만 시행령 개정 등 첩첩산중…환자들 "다른 의약품처럼 처방받고 싶다"

    기사입력시간 2018-11-29 07:35
    최종업데이트 2020-06-22 09:52

    사진: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강성석 목사(좌)와 세계 최초로 대마를 처방한 의사인 츠비 벤트위치(Zvi Bentwich) 이스라엘 사해과학연구센터 소장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의료용 대마를 허용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공무 또는 학술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대마를 일반인이 의료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자와 환자 가족이 나서 직접 최상위법을 바꿨다는 점에서 환호의 목소리도 있으나, 실제 법 적용까지 가기 위해 나아갈 길이 멀다는 아쉬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인 강성석 목사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48년만의 개정을 환영한다"면서 "개정된 법률에서 이제 의료 목적으로 의료인이 처방할 수 있게 됐지만, 정부는 물론 의료계에서도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강 목사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현재 요구하는 것은 해외에서처럼 칸나디비올(CBD) 성분 자체는 건강기능식품으로, CBD를 농축해서 만든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면서 "문제는 최상위법이 통과됐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현재 어긋나거나 충돌하고 있고, 이를 관할하는 정부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처방이 이뤄지기 위해 의료계에서도 이 문제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BD는 자연 발생되는 칸나비노이드(Cannabinoids) 성분 중 하나고, 대마류 식물에서 발견된다. 대마는 113개 다른 화학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흔히 알려진 성분은 THC(테트라 하이드로 칸나비놀)와 CBD다. THC는 환각 등과 관련 있는 대마의 주요 향정 성분이고, CBD는 향정 효과는 없으면서 다발성 경화증과 관련된 통증, 뇌전증 등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성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96년 이미 의료용 CBD 사용을 합법화했고, 현재 미국에서는 전체 50개 주 가운데 30여 개 주에서 의료용 CBD를 허용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칠레,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에서도 합법화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관련기사=합법화 늘고 있는 의료용 대마 무엇을 대비해야할까]


    2015년 정부입법했던 식약처, 2018년 현재 준비는 미흡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위한 마약류법 개정 시도는 19대 국회에서 정부입법으로 먼저 시작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5년 1월 대마 취급 승인 범위를 확대하고, 마약류수출입업자·제조업자 및 원료사용자 허가를 완화하며, 마약류 봉함증지 부착 의무를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마약류법 일부개정안은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19대 국회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이다. 이 개정안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 대마를 의료 목적으로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섭취할 수 있도록 하고, 마약류취급자가 아니더라도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대마를 운반·보관 또는 소지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 목사는 "2015년 제출된 개정안은 의료용 대마에서 아예 대마라는 규정 자체를 없애고 향성신성 의약품 중 하나로 편입하는 것이다. 그 때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병원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지만, 이번 개정안으로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이 필요하다. 만약 정부에서 정말 대비하고 있었다면 이미 수 개월 전부터 이에 대한 준비를 했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식약처는 7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법률안이 시행됐을 때 국내에 대체치료수단이 없는 뇌전증 등 희귀‧난치 환자들에게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을 자가 치료용으로 수입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식약처가 제시한 방안에 따르면 환자가 자가 치료용으로 대마 성분 의약품이 필요하다는 의사 진료 소견서를 받아 식약처에 수입‧사용 승인을 신청해야한다. 또한 환자가 발급받은 승인서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직접 제출하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을 수입해 환자에게 공급한다.

    강 목사는 "식약처는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할 수 있다고 했지만, 센터 직원은 10명도 되지 않고, 뇌전증 환자 50만 명, 치매 환자 75만 명 등 수많은 환자에게 한꺼번에 공급하는 것은 무리다"면서 "환자들은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의사의 진단을 받고 병원 및 약국에서 처방을 받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WHO 보고서 "CBD, 약물 남용 가능성 관계 없어"

    식약처는 국외 허가된 의약품의 용법‧용량, 투약량, 투약일수 및 환자 진료기록 등에 대한 의사협회 등 전문가 자문을 통해 오남용 및 의존성이 발생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 후 승인서 발급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CBD 성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CBD가 약물 의존을 유도하지 않아 남용 가능성과 관련 없고, CBD만으로는 약물에 취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강 목사는 WHO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소개했다.
     
    WHO는 올해 6월 4~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약물의존성전문가위원회(Expert Committee on Drug Dependence, ECDD) 제40차 회의에서 '칸나비디올(CBD) 비판적 검토 보고서'를 배포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CBD의 화학과 약리학, 독성학, 부작용, 의존 가능성, 남용 가능성, 의학적 사용, 규제 등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에게 CBD 남용이나 의존 가능성에 대한 영향을 보이지 않았고, 현재까지 CBD의 기호적 사용이나 순수한 CBD 사용과 관련한 공중 보건 문제가 보고되지 않았다.
     
    먼저 의존 가능성을 보면, 수컷 마우스에 이용해 CBD 또는 델타-9 THC을 복강 내 주입했을 때 THC 효과에 대한 내성은 관찰됐으나, CBD는 어떠한 투여량에서도 내성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칸나비디올의 금단 및 내성과 관련한 인간 대조군 연구는 아직까지 보고된 적 없다.
     
    연구 수는 제한적이지만 남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간 연구 자료가 있다. 보고서는 "잘 컨트롤된 인간 대상 실험적 연구에서 CBD가 남용 가능성과 연관 없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독연구기관목록(Addiction Research Center Inventory, ARCI)의 시각통증등급(Visual Analogue Mood Scale)으로 측정했을 때, 건강한 사람에게 CBD 600㎎을 경구 투여하는 것은 위약과 차이가 없었다. 반대로 THC 10㎎ 경구 투여는 진정 효과와 환각 유발 효과를 반영하는 ARCI 척도 변화뿐 아니라, 주관적 중독 및 행복감(euphoria)과 관련 있었다. THC는 정신병적 증상과 불안을 높이고 심박수를 증가시켰지만, CBD는 생리학적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또한 보고서는 "CBD 자체로는 중요한 향정신성, 심혈관계 또는 기타 영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마의 자가투여(self-administration), 주관적 영향, 대마 등급은 위약 캡슐과 비교했을 때 CBD 투여량에 따라 변하지 않았다"며 "CBD 경구 투여가 대마 흡연을 강화하거나 생리적 또는 긍정적 반응을 감소시키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기술했다.
     
     
    여러 임상에서 효과적인 뇌전증 치료제 확인…안정적인 처방 체계 정착 필요

    WHO 보고서에서 "CBD가 다른 많은 질병에 있어서도 유용한 치료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적응증은 전임상 근거밖에 없거나 일부 전임상과 제한적인 임상 근거가 혼합돼 있다"며 CBD의 임상적 사용에서 가장 앞선 분야로 뇌전증 치료를 꼽았다.

    예를들어 항경련제(AEDs, Antiepileptic Drugs)를 안정적인 용량으로 사용하고 있던 1~30세 환자 214명을 대상으로 한 오픈라벨 연구에서 12주 치료 기간 동안  CBD군의 월 평균 운동발작 빈도는 베이스라인 30.0에서 15.8로 감소했다. 단 이 연구는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시행된 것으로 대조군이 없었다.

    같은 연구팀이 드라베 증후군(Dravet syndromes) 환자를 대상으로 CBD 치료의 대조군 시험 결과를 발표한 자료도 있다. 표준 항경련제와 함께 무작위로 칸나비디올 경구 용액 또는 위약을 투여한 결과, CBD군의 경련성 발작 빈도 중앙값은 1개월에 12.4회에서 5.9회로 감소했다. 위약군에서의 빈도 변화는 14.9에서 14.1로 발작 증세 호전이 없었다.

    미국과 네덜란드, 폴란드에 위치한 24개 의료기관에서 2~55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Lennox-Gastaut syndrome) 환자 171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에서 CBD 치료는 무긴장 발작 반도를 43.9%, 위약은 21.8% 감소시켰다. 무긴장 발작 빈도 50% 이상 감소를 경험한 환자도 CBD군이 44%로, 위약군 24%보다 많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6월 대마초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CBD 제품 '에피디올렉스(Epidiolex)'를 2세 이상 레녹스-가스토 및 드라베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발작 치료제로 승인했다. 의료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하는 것을 넘어 대마 성분이 포함된 정제된 형태의 약물이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강 목사는 "그동안 미국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유통되던 CBD 오일을 제약회사에서 농축시켜 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으로 FDA 승인을 받은 것이다. 마약정책국에서도 에피디올렉스를 의약품으로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는 CBD가 신경질환이나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척수염, 크론병 등 자가면역질환에도 사용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자가면역질환 환자나 통증 환자, 벤조디아제핀계 의약품을 처방받는 신경정신의학과 환자 등 많은 환자가 의료용 대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피오이드를 그만 처방받고 카나비노이드를 처방받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강 목사는 "해외에서도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된 뒤 초기에는 처방해줄 의사가 없고, 준비가 없어 혼란이 있었다. 이는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면서 "운동본부 대표로서 처음에는 법 개정을 위한 임무가 있었고, 이를 513일만에 해냈다. 하지만 진정한 합법화 운동은 법 개정뿐 아니라 안정적인 의료용 대마 처방 체계까지 정착시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앞으로 계속 노력할 것이다"고 목표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