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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뚱뚱한 원인이 장내미생물 때문이라고?

    [칼럼] 김용성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교수·DCN바이오 부사장

    기사입력시간 2021-03-15 18:48
    최종업데이트 2021-03-17 09:56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들어 장내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매일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 대중들의 매우 관심이 많고 미디어를 통해 최신 내용들이 더 많이 소개되는 것으로 보인다. 장내미생물 연구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아마 비만의 원인으로 장내미생물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비만에 대한 관심이 높은 데다가 요즘 광고에서 흔히 '뚱보균', '살빼는 프로바이오틱스' 등 비만과 연관된 단어가 등장하면서 장내세균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덩달아 더 많아지게 됐다.

    그렇다면 실제 장내미생물총이 비만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동안 이에 대해 어떤 연구들이 진행돼 왔을까?

    전세계적으로 비만이 급격히 늘면서 건강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비만은 1975년에 비해 약 3배 증가했다. 2016년 기준으로 18세 이상의 성인 중 39%가 과체중이고 13%는 비만이다. 이렇게 한 세대도 되지 않는 기간동안 급격히 비만이 증가된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일어난 드라마틱한 생활 환경의 변화를 꼽는다. 즉 위생이 개선되고 식이가 크게 바뀐 것 등이 비만의 원인으로 제시됐는데, 이는 결국 장내미생물총의 변화로 귀결될 수 있다.
     
    그림1. 비만한 사람이 다이어트로 체중을 감량한 경우 F:B ratio가 변한다. Rey et al. Nature 2006

    2006년 장내미생물총 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워싱턴대학의 Jeffrey Gordon연구팀은 12명의 비만환자들을 대상으로 1년동안 지방 제한식이를 하거나 탄수화물 제한식이를 이용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하면서 장내미생물 총의 변화를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차세대 염기서열)기법으로 조사했다.

    다이어트 시작 전에 비만한 사람들은 마른 체형의 사람들에 비해 Bacteroidetes문이 적고 Firmicutes문이 상대적으로 많은 특성을 보였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살이 빠지자 마른 체형의 사람들과 유사하게 Bacteroidetes문이 높아지고 Firmicutes문이 점차 낮아져 Firmicutes:Bacteroidetes비가 변화됐다. 이런 변화는 어떤 타입의 식이를 했는지와는 관계가 없었고 체중 변화의 정도와 상관성을 보였다. 식이보다는 체중 감소 자체와 연관되는 장내미생물총의 변화로 생각됐다(그림 1).
     
    이 연구를 통해 비만도와 장내세균의 상관성이 증명됐다. 하지만 장내미생물의 변화가 비만을 유발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만 때문에 장내세균이 변화한 것인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었다. 이후 유전적 비만쥐인 ob/ob mice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날씬한 쥐의 장내미생물에 비해 비만쥐의 장내미생물은 먹은 음식으로부터 에너지를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비만쥐의 분변을 무균쥐에 이식하면 이식받은 쥐가 비만해지는 것이 관찰됐기 때문에 이 동물실험으로 장내미생물총 자체가 비만도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림2. 쌍둥이의 분변을 쥐에 이식한 경우 쌍둥이 중 비만한 사람의 분변을 이식받은 쥐는 비만해진다. Ridaura et al. Science 2013


    이후 Jeffrey Gordon연구팀은 인간의 분변을 쥐에 이식해보는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한 명은 비만하고 한 명은 날씬한 여성 쌍둥이 분변을 각각 무균쥐에 이식해본 것이다. 쌍둥이여서 유전적으로는 비교적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자매가 서로 비만도가 다른 것은 장내미생물총의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물실험과 유사하게 쌍둥이 중 비만한 사람의 분변을 이식받은 쥐는 비만해졌고, 날씬한 사람의 분변을 이식받은 쥐는 날씬해졌다. 이를 통해 인간의 비만도에 영향을 미치는 장내미생물총의 기능이 분변이식을 통해 쥐에게 전이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렇게 비만 유발 장내미생물총 특성이 사람 사이에서도 분변이식을 통해 전이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한데, 우연히 C. difficile 장염의 치료를 위해 분변이식을 받은 한 여성에서 증명됐다. 2014년 영국에서 32세 여성이 재발성 C. difficile 장염의 치료를 위해 건강한 딸의 분변이식을 받고 나서 61.7 kg(BMI 26)이었던 몸무게가 16개월 후 15.4kg로 증가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변이식 후 36개월째에는 80.3kg(BMI 34.5)이 되고 말았다. 흥미롭게도 분변이식 당시 16세였던 딸의 몸무게는 63.5kg (BMI 2.4)이었는데 나중에 77.1kg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즉 비만 특성이 있던 딸의 분변이 어머니에게 이식되면서 어머니까지 비만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뚱보균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실제 어느 특정한 균이 비만도를 결정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06년 초기에 보고됐던 높은 Firmicutes:Bacteroidetes비 역시 후속 연구들에서는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아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는 장내미생물총 연구의 공통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장내미생물총의 다양성과 그것에 미치는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일관된 결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질환을 대상으로 한 여러가지 유사한 장내미생물총 연구들에서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즉 장내미생물총이 비만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특정 균의 문제보다는 미생물총 전체의 기능적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뚱보균 보다는 '뚱보 미생물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 동물 실험부터 사람의 증례에 이르기까지 장내미생물총이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증명됐지만, 장내미생물만으로 비만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식이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쌍둥이 분변을 쥐에 이식했던 실험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사실은 사람의 분변을 이식받아 비만하게 된 쥐와 날씬한 쥐를 한 케이지 내에서 같이 키우면 나중에 비만한 쥐가 날씬해지는 것을 관찰한 데 있었다.

    이는 쥐가 분변을 먹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분변을 먹으면서 날씬한 쥐의 장내미생물 특성이 비만한 쥐의 대장에 자리잡게 됐기 때문이다. 이때 비만한 쥐의 장내미생물 특성은 전이되지 않았다. 그런데 날씬한 쥐의 미생물이 비만쥐를 회복시키는 것은 저지방·고섬유질 식이를 줬을 때만 관찰됐고, 고지방·저섬유 식이를 주었을 때는 비만쥐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즉 장내미생물총이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장내미생물총이 비만 혹은 대사질환을 일으키는 기전으로 최근에는 장내미생물총의 일주기성(Circadian) 조절기능 이상과 같은 새로운 개념도 제시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장내미생물총과 비만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분변이식을 통한 비만 혹은 대사질환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계속 되고 있다. 언젠가는 똥으로 비만을 치료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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