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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들의 엄마에서 HGPS 조로증 어린이들의 어머니로

    [칼럼] 배진건 배진(培進) 바이오사이언스 대표

    기사입력시간 2019-08-16 06:34
    최종업데이트 2019-08-16 06:34

    사진: 2018년 JAMA에 게재된 로나파립 치료 성공 논문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Progeria’ 라는 그리스어는 ‘prematurely old’, 일찍 늙어버린 조로(早老)라는 의미다. 1886년과 1887년에 영국에서 조나단 허친슨(Jonathan Hutchinson) 박사와 해이스팅스 길포드(Hastings Gilford) 박사가 조로증을 가진 어린 환자들을 처음으로 기술했기에 Hutchinson Gilford Progeria Syndrome(HGPS)으로 부른다. HGPS는 정말 희귀해 2000만 명 중 1명에게 발생하고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가족으로 이어지는 유전병은 아니다. 더 전문적인 용어로 '산발성 보통염색체 우성(sporadic autosomal dominant)' 변이다.

    프로제리아 신드롬은 돌이 지날 때 까지는 건강한 아이들과 같은 모습으로 정상적으로 발육하다 태어난 지 2년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프로제리아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13세부터 15세 사이에 심장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결국 심장마비, 고혈압, 뇌졸증, 협심증과 같은 노인성 질환 때문에 평균적으로 15세에서 17세 사이에 사망에 이른다.

    1998년 여름 레슬리 고든(Leslie Gordon) 박사와 스콧 번즈(Scott Berns) 박사 부부의 22개월된 첫 아들 샘(Sam)이 HGPS라는 진단을 받았다. 샘의 부모들 자신이 의사였지만 그들이 HGPS에 대해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었고, 열심히 찾아봤지만 의학정보가 거의 없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됐다.

    이 병을 진단받은 아이들이 의학의 도움을 받기 위해 갈 곳이 없고 연구도 돼있지 않아 부부는 친구들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조로증 연구재단, ‘The Progeria Research Foundation, Inc.(PRF)’를 만든다. 부부가 처한 현실에 낙담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려 같은 상황에 처한 가정을 위하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을 위한 전진이었다. 샘은 안타깝게도 2014년 17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HGPS를 치유하기 위한 고든 박사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PRF가 만들어지고 고든 박사의 첫 목표는 ‘Progeria’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유전자 전문가인 미국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의 소장이던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박사의 연구팀과 같이 협조해 2003년 4월 25일자 Nature에 유전자를 발표했다.

    HGPS는 LMNA('lamin-a' 발음)라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Mature 라민 A 단백질이 되기 위해 파르네실(farnesyl) 그룹이 단백질에 붙은 후에 정상적으로 프로세스 돼 펩티다아제에 의해 잘라진 후 정상적인 72KDa 라민A가 만들어진다. HGPS에서는 라민 A 단백질이 잘라지는 부분을 포함해 50개의 아미노산이 결실(deletion)돼 있고 같은 파르네실 프로세싱(processing)을 통해 프로제린(Progerin) 이라는 기형의 67KDa 라민A가 만들어지는데 잘라지지 않으니 파르네실 그룹이 단백질에 붙어있다. 이 67 kDa의 프로제린이 몸 전체의 체세포 핵을 파괴하고 비정상적인 대사과정을 촉진하여 소위 ‘노화’를 급격하게 진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Progeria’를 일으키는 유전자 작용을 알자 LMNA CaaX박스에 C15개짜리 지질을 붙이는 효소 Farnesyl Transferase 억제제인 로나파닙(Lonafanib)에 관심을 갖게 됐다. 로나파닙은 처음에는 항암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었다. 특히 2005년 8월과 2006년 2월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프로제리아 신드롬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세포에서 프로제린의 생성은 정상인보다 7배 이상의 배출됐는데 프로제리아 어린이들의 피부 세포에 로나파닙을 넣어주면 거의 정상적인 모습의 피부세포로 변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PRF는 HGPS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로나파닙에 대해 공식적인 임상을 시작했다. 연구자들이 착안한 것은 FTI를 처리하면 정상적이진 않지만 67KDa 라민A가 만들어지면 파르네실 그룹 없이 72KDa 라민A와 사이즈만 다르고 비슷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PRF에서는 HGPS 어린이들에게 당시 S-P의 FTI인 로나파닙을 투여하자고 회사에 제안했다. 로나파닙의 다른 이점은 이미 임상 2상을 통해 어린이 암환자에게 투여한 경험이 있고 어린이들에 대한 안전성 용량을 알기에 필자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2007년 5월 7일부터 역사적인 투여가 시작됐다.

    2018년 4월 25일 PRF는 긴급속보(Breaking News)로 로나파닙 치료 성공에 대한 공식적인 뉴스를 발표했다. 4월 24일 출간된 '미국의사협회저널(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임상시험에서 63명의 조로증 어린이들(150mg/m2)이 파네실 트랜스퍼라제 억제제(FTI)인 로나파닙을 하루에 두 번씩 경구 투여를 받았다. 이 임상시험의 대조군은 비슷한 나이, 성별과 같은 대륙에 사는 조로증 어린이들이다.

    로나파닙을 투여 받은 어린이들이 대조군에 비해 평균 2.2년을 추적한 결과, 카플란-마이어 생존 분석법(Kaplan-Meier)의 생존 커브를 보면 현저히 낮은 치사율(mortality rate, 3.7% vs. 33.3%)이 투약과 관련이 있었다. JAMA 논문에 의하면 이 로나파닙은 조로증 아이들의 평균수명을 최장 2.4년 정도 늘려줄 수 있다고 한다.

    고든 박사의 수고로 지금은 어떤 유전자가 문제이고 변이가 상세하게 알려져 ‘Diagnostic Testing Program’이 만들어졌다. 2019년 3월 31일자 PRF 통계에 의하면 157명의 진단받은 HGPS 어린이들이 존재한다. 한국 어린이도 포함돼 있다. 이중 123명은 LMNA라고 불리는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고 ‘Progerin’이라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 34명은 ‘Progeroid Laminopathy’ 영역으로 ‘Lamin pathway’에 변이를 가지고 있지만 프로제린이라는 단백질은 없다. 그러나 PRF는 전 세계에 지금 이 순간에 ~250명의 환자 어린이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제 2018년 JAMA의 논문발표 이후 FTI 저해제 개발은 돈으로 계산이 안 되는 가장 위대한 신약개발 투자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전 세계 250여명의 HGPS 어린이들이 FTI를 복용함으로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더 살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생존기간 연장이 2.5년이지만 HGPS 어린이들을 우리 일반인 나이로 계산하면 12.5년이 될 수 있다. 레슬리 고든박사는 샘이라는 한 아들의 엄마에서 이제는 HGPS 조로증 어린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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