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시정연설 중인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사진 인용
"의료법도 하루속히 통과시켜서 우리 의료산업 발전의 물꼬를 터 주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이런 표현을 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메시지의 전달이다.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이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의료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일관된 논리는 격오지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질환자의 건강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일문일답식 보도자료를 통해 원격의료가 IT재벌기업들의 돈벌이 용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복지부는 "이번 원격의료 도입 목적은 발전된 IT기술과 의료를 융합시켜 국민편의를 증진시키고 1차 의료기관을 활성화하는데 있으며, 재벌 IT기업들의 이익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 의료 인프라 부족한 도서․벽지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상시적인 건강관리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민들의 편의 증진 및 건강 개선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이런 논리를 펼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목적이라면 우선 의료장비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대면진료 수준의 효과와 비용 효과성이 있는지 시범사업을 한 후 의료법을 개정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의정 갈등을 초래하면서까지 강행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여기에다 정부가 공언했듯이 원격의료가 동네의원 경영 악화를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일차의료를 활성화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의사들이 반발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군부대에서 시범 시행중인 원격의료
그런데 의료장비의 안전성과 유효성은 아직 한 번도 확인된 바 없다.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보건소 등에서 시행중인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기술적 안전성을 진단하기 위해 2014년 10월 고대 정보보호대학원에 '원격의료체계 기술적 안전성 평가' 연구용역을 발주한 결과 '비 암호화 통신' '악성코드 감염 노출' '저품질 영상' 등 상당한 문제점이 노출됐다.
현재 정부가 시행중인 시범사업은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가 아니라 환자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형태여서 엄밀한 의미의 원격의료는 더더욱 아니다.
막상 간호사의 도움 없이 환자가 의사와 실제 원격의료를 할 경우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도 국정감사에서 2차 시범사업 결과가 나오면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조속히 의료법을 처리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하면서 모든 게 분명해졌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가 취약지 의료접근성 향상 목적이라는 복지부의 주장은 여론 설득을 위한 명분일 뿐 본래의 의도는 의료산업 활성화에 있었다는 것을 박 대통령이 확인해 준 셈이다.
의료장비업체, 특히 대기업들이 화상통신장비, 전자청진기, 의료용스코프, 환자관찰장치, 혈당측정기, 심전도기, 디지털카메라, 모니터 등을 생산, 보급하고 수출하기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사진출처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 동영상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게 있다.
의료산업의 발전 못지않게 국민의 안전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게 아닌가?
메르스사태라는 엄청난 시련을 경험한 나라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