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2월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의료인 결격사유를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의료인이 이에 해당하면 그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의료법 제8조 제4호부터 제6호까지, 의료법 제65조 제1항 제1호 단서 개정).
또한 개정안은 면허취소 후 재교부받은 의료인이 자격정지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의료법 제65조 제1항 제2호의2 신설),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이 면허를 재교부 받은 후 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를 취소하는 경우에는 10년간 면허 재교부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의료법 제65조 제2항 단서 개정).
개정안은 범죄 유형을 불문하고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를 모두 결격사유로 정하고 있다. 의사들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로 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까지 결격사유가 된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의료인은 성범죄로 형을 선고받는 경우(벌금형, 약식기소 포함)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일정 기간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의료기관에 취업하지 못하고(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56조 제1항, 제2항), 만약 의료인이 진료행위 중의 성범죄를 범한 경우라면 의료인의 품위 손상 행위(부도덕한 진료행위)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고 있다(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1호, 의료법 시행령 제32조 제1항 제2호).
헌법재판소가 2016년 성범죄를 저지른 자라 하더라도 범죄의 경중과 그와 연관된 재범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하게 범행의 정도가 가볍고 재범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자에게까지 취업제한을 부과하는 아청법은 제한의 정도가 지나쳐 의료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헌법재판소 2016. 3. 31. 선고 2013헌마585⋅786, 2013헌바394, 2015헌마199⋅1034⋅1107 참조)을 하기 전까지 의사는 성범죄의 경중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10년 동안 의료기관을 운영하지 못하고 의료기관에도 취업하지 못했다.
문제는 개정안에 따라 의료인 결격사유에 ‘건강보험법’이 포함되는 경우다. 의사는 오직 요양급여기준에 따라 의료행위를 하게 되고 이는 국민 생명과 관련 있는 필수의료분야에서 의료행위의 재량이 과도하게 위축돼 낮은 수준의 의료가 이뤄질 위험이 있다.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건강보험법까지 적용된다면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가 붕괴돼 국민 건강권이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건강보험법 적용, 급여기준 초과하는 진료행위 위축, 필수의료 붕괴 우려
보건복지부가 요양기관 현지조사에서 부당청구환수처분,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 및 과징금 처분을 하고 수사기관에 요양기관 대표자인 의사를 사기죄로 고발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의사가 사기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더라도 추후 과징금 처분이 취소되는 경우에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사가 면허취소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의사가 재심을 신청(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해 무죄의 선고를 받지 않는 이상 과징금 처분이 취소되는 경우에도 면허취소처분은 유효하다. 따라서 개정안 제65조 제2항 따라 의사는 3년 이내에 면허를 재교부 받지 못하므로, 복지부 장관이 면허취소처분을 취소 또는 철회해야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법제처는 의료인이 의료법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된 경우에 복지부 장관이 그 의료인에게 같은 법 제65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면허취소를 해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규정한 같은 법 제8조 제4호는 결격사유에 해당하게 되는 시기(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된 시점)와 종기(그 형의 집행 종료 시점 또는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시점)를 두고 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의료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으로써, 의료인의 면허취소사유에서는 일정한 사실이 발생한 후 특정기간이 그 취소여부의 판단기준과 무관한 반면에 의료인 결격사유에서는 일정한 사유가 발생한 후 특정기간이 그 결격여부의 판단기준이 된다.
법제처는 의료인의 면허취소사유에 관한 의료법 제65조제1항 제1호와 결격사유에 관한 같은 법 제8조 제4호의 규정은 그 제도의 성격과 내용을 서로 달리하는 것으로서 양자의 의미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면허취소를 해야 한다는 법령해석을 했다(법제처 안건번호 16-0055, 회신일자 2016. 4. 11.).
법제처 법령해석을 기준으로 하면 의료인 면허취소 사유와 결격사유는 다르고 복지부 장관의 면허취소 처분 취소 또는 철회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형 의료기관에서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돼 잘못된 의료작동체계, 즉 국민의 생명과 직접 관련되는 필수의료분야의 질적 저하가 초래된다.
2018년 여의도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건에서 대법원은 ①진료행위 당시 시행되는 관계 법령상 건강보험 틀 내의 요양급여 대상 또는 비급여 대상으로 편입시키거나 관련 요양급여비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아니하거나, 절차가 마련돼 있었다 하더라도 비급여 진료행위의 내용 및 시급성에 비추어 절차를 회피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로 ②진료행위에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은 물론,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나 진료해야 할 의학적 필요성이 있었고 ③가입자 등에게 미리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해 본인 부담으로 진료 받는 데 대하여 동의를 받은 경우 부당이득징수 처분의 요건으로써 '기타 부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일정한 예외를 인정했다. 건강보험공단과 복지부장관의 부당이득환수결정과 과징금부과처분을 파기환송했다(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639, 2764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복지부는 전국 의료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대법원이 제시한 3가지 예외요건을 의료기관이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 의료기관은 거액의 환수처분을 당하는 동시에 법에서 정한 최고치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대학병원은 암, 백혈병 등 중증질환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항암제나 일반 약제의 사전승인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시일이 많이 소요돼 의약품의 허가외사용(off-label use)을 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자주 사용하는 일반 약제의 경우 모든 절차를 거치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진료행위별로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의료현실에서 불가능하고 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의사는 요양급여기준과 관계없이 최선의 진료를 할 의무를 지고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3822 판결 참조).
임의 비급여는 요양기관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전혀 지급받지 아니하고 오직 환자로부터 대가를 받는 의사와 환자와의 사적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판례는 건강보험공단이 부당이득징수 등 처분을 한 다음 그 대가를 환수해 환자에게 반환하는 것을 인정했다(대법원 2006. 12. 8. 선고 2006두6642 판결 참조).
이는 민법의 기본을 이루는 사적 자치의 원칙에서 도출되는 계약자유의 원칙의 예외로 이를 인정해야 하는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규범적 해석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의사는 요양급여기준에 맞는 규격진료, 즉 최선의 진료를 하지 않고 비용효과적 진료를 했고 이는 필수의료분야의 붕괴로 이어졌다.
방어진료 양산, 필수진료과목 기피, 하향평준화 우려 위험
개정안은 의사의 방어진료, 전공의 필수진료과목 기피로 귀결돼 결국 국민 생명권과 직접 관련되는 필수의료분야가 더욱 하향평준화할 위험이 있다. 의사는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되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환자는 자신에게 최선의 진료가 있음에도 이를 모르고 치료요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법은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운용에 필요한 사항을 규율하기 위한 법이다. 국민의 의료수준을 획일화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의료인의 의료행위와 그 보수를 규제하기 위한 법도 아니다. 국민들이 받을 수 있는 의료수준을 획일화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료수준에 관한 선택권(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의료인의 의료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전문성에 반한다.
대법원 역시 건강보험법과 의료법은 국민 보건이나 국민 건강 보호․증진을 위한 법률이라는 점에서는 그 목적이 같다고 본다. 하지만 건강보험법은 질병의 치료 등에 적합한 요양급여 실시에 관해 규정하는 법률임에 비해 의료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인, 의료기관 및 의료행위등에 관해 규정하는 법률로서, 그 입법목적과 규율대상이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5두36485).
우리나라는 의료급여의 경우를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보험가입의무를 지우고 재산 및 소득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해 그 보험료로 비용을 조달하는 사회보험 모델을 취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법 제5조, 제69조 이하). 사회보장부담의 증가,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 인구구조 변동,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근로소득 기반의 보험료 재원조달의 한계 등으로 보험료 수입 증가는 한정돼 있는 반면 지출은 늘어나 건강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재정에 위협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매년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건강보험재정에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 제1항).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자료를 조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는 법에 따라 건강보험에 총 93조1557억원을 지원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67억3181억원만 지원, 총 25조8376억원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지급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은 의사의 진료행위를 ①위반행위와 직무수행과의 관련성, ②자격제한의 필요성과 제한되는 기본권과의 형량 등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규제하는 방법으로 필수의료분야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한다.
그보다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 건강보험 보장범위는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되 재정적자를 관리하는 방향의 정책 변화, 국가의 건강보험재정지원 의무를 강화하는 법률안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필수의료를 육성하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는 적어도 중대한 생명⋅신체⋅건강침해와 관련해 국민에게 최소한의 보건의료수준이 보장할 의무가 있다. 결격사유는 결국 전문자격의 건전성 유지를 통해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따라서 우리 사회는 결격사유 외에도 ①의사가 건강보험법상의 기준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건강이 충분히 보호되지 못하는 점, ②임의 비급여 또는 보험외 의료 금지로 인한 국민의 진료 선택권 제한 등 현행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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