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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은 나에게 침묵하라 말하는데...

    진료실 의료인 폭행, 이대로 괜찮은가?

    응급의학회 추계학회에서 문제점과 대응법 모색

    기사입력시간 2015-10-16 07:18
    최종업데이트 2015-10-16 13:02

    보호자처럼 보이는 한 여성이 응급실 입구에 설치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자 알람 소리가 울렸다.
     
    응급실에서 대기 중이던 안전요원은 급하게 총을 꺼내 위협을 가한 뒤 한 번 더 통과시키게 한다.

     
    알람이 반복해서 울리자 안전요원은 여성이 들고 있던 핸드백을 뺏어 뒤집어 쏟았다.
     
    의심할 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자 이번엔 온몸 수색을 했다.
     
    수상한 물건이 나오지 않았지만, 안전요원은 탐지기를 자극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고, 위협받던 여성은 속옷까지 확인시켜줘야 했다.
     
    결국, 속옷에 붙어있던 금속이 알람의 원인임을 끝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안전요원은 위협을 멈췄다.

     

    대한응급의학회 추계학술대화에서 소개된 미국의 응급실 장면은 안전 문제에 둔감한 우리에겐 살짝 낯설다.
     
    "의료인 폭행,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특별세미나에 연좌로 참가한 유인술 교수(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는 응급실 폭력 예방을 위한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열거했다.



     
    유 교수는 미국의 모습을 전하며 "타인에 대한 폭력은 매우 엄격해 폭력을 제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강조하고 "마약중독자 같은 폭력행위 예비자를 격리하기 위한 유치장과 유사한 시설을 설치한 병원도 있다"고 소개했다.
     
    또, 일본 병원의 안전요원은 준사법권을 가져 응급실 폭력 발생 때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등의 실력행사를 하며, 병원은 폭력이 발생하면 사법당국에 철저하게 고발한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경찰이 상주해 있다.

     
    허술한 제도적 뒷받침: 의료계 요구
     
    "경찰이 잘 반응을 안 한다."
     
    유 교수는 국내 경찰들이 보통 의사들이 맞을 짓을 할 만하니깐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일선의 경찰들에게 동기를 주기 위해 "응급실 폭력 문제에 대해 인사고과를 반영하도록 해달라"고 경찰청장에게 요구했지만, 결국 들어주지 않았다고.
     

    유 교수는 국가적 지원을 강조하면서 "의료기관을 국가주요시설로 지정해 경찰을 상주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법률이 있음에도 병원에서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들며 "사법권이 있는 청원경찰을 허용하되 병원과 정부가 인건비를 반반씩 나누는 방법도 있다"고 소개했다.
     

    2012년에 의료인 폭행방지를 위해 발의된 의료법 일부 개정안은 현재 몇 번의 수정과정을 거쳤지만 국회계류 중이다.
     
    의료계와 치의계에서 주장한 가중처벌과 반의사불벌죄 적용 예외가 개정안에서 수정된 후 보건복지위원회까지 통과했지만, 현 19대 국회에서는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반의사불벌죄 :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기소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기소할 수 없고 기소한 후에 그러한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재판을 종료해야 하는 범죄를 말한다.
     
     
    병원은 피고용인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의료인은 협박당하고...
     
    현재 많은 병원들은 '고객 감동주의'가 만연해 좋지 않은 일로 병원의 이름이 언급되는 상황을 일단 피하며, 병원 내 폭력을 흐지부지 넘기기 일쑤다.
     
    환자의 컴플레인은 힘들지만 병원 직원의 컴플레인은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인술 교수는 "실제 폭력사고가 생겼을 때 병원은 쉬쉬하고 고소 취하를 권한다"라며 "의료기관장이 은닉하지 않고 병원장 이름으로 고발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고용주는 법적으로 피고용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그런 상황을 감시하도록 보건복지부와 상의해 의료기관장의 고발 건수와 경찰에 고발된 건수를 비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응급실 폭력으로 경찰에 고발된 건수가 10건인데, 의료기관장의 고발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의무 불이행으로 페널티를 준다는 것이다.
     




    김치중 한국일보 기자는 이와 관련해 "피해자 측(의사)에서 사건을 감추더라도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을 하고 SNS에 올리게 된다"라며 "그렇게 되면 폭행을 한 가해자나 그 보호자를 먼저 만나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기자는 그런 상황이 언론의 오류가능성을 키워 의료인 피해를 가중시킨다고 설명했다.

     
    의료인이 자기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응법이 제시되기도 했다.
     
    유 교수는 가끔 경찰이 신고를 받고도 늦게 출동하거나 신고받은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며 "112는 모든 신고가 녹취되기 때문에, 경찰서에 바로 신고하기보다는 112를 통해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경찰이 의료법을 잘 몰라 폭행을 당했을 때 그냥 맞았다고 하면, 단순폭행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12조에 따라 처벌해 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할 것을 조언했다.
     
    김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반의사불벌죄 예외가 개정될 의료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래야 가해자가 병원에 와서 고소를 취하하도록 협박하며 업무 방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