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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은 안전?' 의사는 이런 말 못한다

    만약 특정 약이 100% 안전하다고 말한다면 '사기꾼'

    한의학과 의학의 각각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할 때

    기사입력시간 2015-04-01 06:25
    최종업데이트 2015-04-02 12:10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약이란 없다.

    만약 어떤 의사가 특정 약물이 100% 안전하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지체 없이 그를 사기꾼이라고 할 것이다.

    의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했지만, 절대적인 결과란 있을 수 없다. 약물의 효과 혹은 의학적 치료의 결과 역시 확률이라는 수학을 가지고 예측할 뿐이다.

     

    그래서 간독성이 비교적 잘 발생하는 무좀약 같은 항진균제는 약물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복용 간격을 간헐적으로 늘리고, 복용하는 환자에게 정기적인 피검사를 권한다.

    의사는 복용 전 환자에게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것은 의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고약한 경험'을 했던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설령 복용 전에 약물의 부작용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했다 하더라도, 환자에게 실제 부작용이 발생하면 법적인 문제를 떠나 담당 의사로서 책임을 진다.

    그것이 드물고 예측 불가능했을지라도 말이다. 그것이 의사의 숙명이다. '주치의'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박스 안의 글은 대한한의사협회가 31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다.

    한의협은 최근 접촉성 피부염 환자 사망의 법원 관련하여 "한약과 간독성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나는 죽어도 이런 말은 못한다. 어쩌면 길지 않은 임상 경험 동안 그런 '확신'을 주지 못해 환자들이 나를 찾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의사가 처방하니 안전합니다."

    이런 번지르르한 말을 쉽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다닌 의대에서는 그런 말을 하라고 가르치질 않았다.

    환자 경과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생각의 결과물을 환자에게 설명해야 했다. 의사의 당연한 의무라는 고상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연막이나 보험같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의대 수업과 병원 수련을 통한 근거 중심의 사고는 나를 ‘소심한 의사’로 만들었다. 희박할 가능성이라도 그것을 설명해야만 안심을 하는 소심한 의사 말이다.

     

    의심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상상의 결과를 최대한 부정적으로 전환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 병원에서 퇴근해도 찝찝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 진료를 보는 의사를 선택한 이상 그것은 받아들여야 할 스트레스이자 팔자이다

     

    한의학과 의학의 각각의 존재 이유

    두 의학은 근간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의학의 근간은 과학이다. 근대의학은 해부학이나 현미경을 이용한 미생물 관찰과 같은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발전하였다.

    나는 한의학에 대해 함부로 지껄일 정도로 알진 못한다. 그런데도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의학을 뚫는 기본 생각, 혹은 한의학을 지배하는 근간이 과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한의학 무지렁이임에도 확신을 하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의 근간(과학)을 기준으로 삼아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런 모습이 무척이나 슬프고 웃기다.

    한의학의 비과학성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의학의 어떤 부분은 실제로 '과학적'이다.

    하지만 한의학이 원래부터 생겨먹은 성질, 한의학이 추구하려는 것 혹은 근간이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기왕 '차용'한 거,

     

    좀 제대로 차용했으면 좋겠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다면 '전 세계 공통된 보고 사항'을 하나하나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한의학과 의학에서 처방하는 약물의 간독성을 논하고 싶다면, '발생 부작용의 절대 건수'가 아니고 '약물 처방 건수 대비 부작용 발생률'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모든 조건이 같다는 전제 아래) 더 많은 처방이 이루어지는 약물에서 더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뇌의 시냅스 작용이 정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의료기기는 '과학적인 사고'가 체계화된 의료인에게만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의학이 과학적이라든가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든가 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논쟁보다는 두 학문 각각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두 학문은 많이 다르다.

    두 학문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은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공통성’과 학문의 근간이 다르다는 ‘다양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도울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면 그것은 환자에게 유익하다.

     

    단지, 지금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근간이 합리성 혹은 과학성이라는 점이다.

    운이 좋게 의학은 그런 성질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큰 흐름을 같이해서 거기에 몸을 맡길 수 있었지만, 한의학은 대세와 정체성 사이에 큰 고민을 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한의한과 의학의 양립 이유에 대해 한의학 쪽에서 한 번 더 고려를 했으면 좋겠다.

    환자 선택의 다양성 측면에서 두 학문은 더욱 그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 잠깐의 시기가 과학이라는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된다고 해서 한의학이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한의학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국민의 선택권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

    서로의 색깔 차이가 없어진다면 국가에서 의학과 한의학이라는 이원화 체제를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