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배씨가문에서 내 세대의 돌림자 '우뢰 진(震)'은 '진'이라는 우리나라의 옛 이름이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져 민족의 정신적 역할을 한 역사모임 '진단학회(震檀學會)'의 이름이 '우뢰 진(震)'과 '단군의 단(檀)'으로 만들어졌다. 아버님은 1939년 일제 강점기 하에서 태어난 큰 누님의 이름을 '진선(震瑄)'으로 지으셨다. 딸이기에 '구슬 옥(玉)' 자에 '단'과 비슷한 '선'을 합치셨다. 아버님께서는 잃어버린 나라를 딸의 이름에서라도 찾기를 원하셨다. 전쟁 중 태어난 나의 이름은 '나라를 세운다'의 의미로 '세울 건(建)'자를 써서 '진건(震鍵)'으로 지어 할아버님께 올리셨다. 위로 딸만 넷을 얻으신 후 만나게 된 아들이기에 할아버님은 '쇠 금(金)' 변을 넣어 '열쇠 건(鍵)'으로 바꾸어 계속 아들이 생기는 열쇠가 되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이미 배씨 족보에서 이름이 벗어났기에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 두 분께서 상의하신 후 자녀 세대는 '서로 상(相)'으로, 그리고 다음 세대는 이름을 외자로 짓기로 합의하셨다. 1979년 큰 아이가 생겨 아버님께 이름 짓기를 여쭈니, '상훈(相勳)'으로 지어 주셨다. '토마스(Thomas)'라는 영어 이름까지 지어주셨는데, 본인이 제일 처음 들은 영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순교한 토마스(Thomas) 선교사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1981년 둘째가 태어났을 땐 내가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데, '훈'과 비슷한 '준(俊)'으로 하여 상준이 됐다. 영어 이름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디모데(Timothy)'로 지었는데, 그 당시 미국 테니스 스타에 톰(Tom) & 팀(Tim) 형제가 있었던 것도 이유였다.
뉴욕에 사는 큰 아들이 2010년 딸을 낳자 이름을 하나(Hannah)로 지었다. 나의 권리는 단지 한국 이름을 짓는 것뿐이었는데, '한아(韓珴)'라고 지으니 영어 이름과 발음이 너무 비슷하다는 불평을 들었다. 둘째 '노라(Nora)'가 태어났다. 나는 '선아(鮮珴)'라고 이름을 지어 보냈고, 두 손녀의 이름에 한국과 조선의 같은 나라 다른 표현인 '한(韓)'과 '선(鮮)'이 공평하게 들어갔음에 만족했다. 2013년 첫 손자가 태어났고, 다윗을 꾸짖는 선지자의 이름 '나단(Nathan)'이 주어졌다. 한국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외자이기에 고민이 더 됐다. 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손자에게 다시 새기고 싶었다. '배 선(善)'으로 지었다. 아이들은 약간 갸우뚱했다. 아들을 '선(son)'이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냐고. 영어 발음으로 '선(sun)'은 태양이니 좋다고 확신시켰다.
둘째 상준에게 2014년 첫 아들이 태어났고, '루크(Luke)'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나는 '배 의(義)'로 짓고 두 손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속성인 선(善)하심과 의(義)로우심이 기억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의(義)' 발음이 어렵다고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인(仁)'으로 바꿨다. 신의 성품에 당연히 인자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손녀의 이름에서는 우리 나라 한(韓), 선(鮮), 단(檀)이 살아나게 하고 싶어 앞으로 딸이 태어나면 '단아(檀珴)'로 하기로 이미 정해 놓았다. 이번 12월에 손녀가 태어났다. 아이들은 이름을 '베다니(Bethany)'로 정했기에 나는 '단아(檀珴)'로 정해 내려 보냈다. '배단아'와 '베다니(Bethany)'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다. 내 아버님이 '나라 사랑'을 생각해 자식들의 이름을 지으셨다면, 나는 나라 사랑에 하나님 사랑을 손녀, 손자에게 더했다.
약을 부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화학적 결합상태, 분자구조를 부르는 '화학명'(Chemical Name)이 있지만 이것은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워 일반적으로 각 제약회사의 코드 이름을 부른다. 성분의 형태와 작용 기전 등을 조합해서 만드는 '일반명'(Generic Name)이 있고, 제품 개발 후 판매를 위해 제약사가 만드는 '브랜드명'(Brand Name)이 있다. 예를 들어, 쉐링플라우(S-P)가 만든 졸리지 않는 항히스타민제 회사의 연구개발 코드는 SCH29851이었고, 일반명은 로라타딘(Loratadine), 브랜드 이름은 클라리틴(Claritin)이다.
브랜드 작명은 기업의 중요한 마케팅 전략 중 하나이다. 약은 효능과 부작용이 적은 것이 우선 순위지만 보통 일반인들은 의약품을 찾을 때 특정 상품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제품명이 판매량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제약사들이 신제품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Viagra)'는 정력이 왕성하다는 의미의 'vigorous'와 나이아가라 폭포의 'Niagara'를 합성해 만든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성분명을 짓는 데는 규칙이 정해져 있다. 이는 각국 약전회의에서 발행하는 약물 기준(약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명명법이 정착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현재 약전에 따르면 의약품의 이름을 짓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회사지정명'+'작용계열'+'대상'+'약물형태'이다.
합성의약품의 경우 뒤에 붙는 말에 따라(어미가) 작용 기전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vir'는 항바이러스제, 'cillin'은 유도항생제, 'sartan'은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 'tide'는 펩타이드 및 글리코펩타이드를 뜻한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시알리스'의 성분명 '타다라필'(tadalafil)의 '-afil'은 혈류 유입을 억제하는 PED5 효소의 발현을 막아 발기 시간을 유지해주는 의약품이라는 뜻이 있으며, 위궤양 및 위식도 역류질환에 사용되는 '오메프라졸'(omeprazole)의 '-prazole'은 위산 분비의 맨 마지막 단계인 '프로톤 펌프'를 저해해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의약품이다.
바이오의약품의 경우에는 좀 더 세부적이다. 먼저 회사 지정명 다음에 오는 글자 중 'vi(r)'은 감염성질환, 'li(m)'은 면역계질환, 'mu(l)'은 근골격계질환, 'tu(m)'은 육종, 'neu(r)'은 신경계질환, 'c(i)'은 순환계질환 등 작용 질환을 의미한다. 그 뒤 'u'는 인간, 'o'는 쥐, 'xi'는 키메릭(chimeric), 'zu'는 인간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를 말하는 'mab'이 합성된 형태로 성분명이 지어진다. 한 예로, 머크가 개발한 면역항암제의 회사 내 개발 코드는 'MK-3475'이고 일반명은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 상품명은 '키트루다(Keytruda)'이다. 일반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이란 것이 결국 타겟(target)이 PD-1이기에 'p'로 시작해 '면역계질환' 'li'이고 ‘인간화’된 'zu' '단일클론항체' 'mab'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이름에도 개인마다 부모의 뜻이 담겨 있듯이, 의약품도 조금만 공부하면 성분명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특정 의약품이 어디에 어떤 기전으로 효능을 발휘하는 약제인지를 알 수 있게 돼있다. 이런 약간의 공부를 통해 소비자인 환자들이 약에 대한 특성을 더 잘 이해하며 본인에게 적절한 약을 복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