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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 먼저 치료할지는 의료 넘어선 윤리의 영역"…코로나19, 부족한 의료자원 어떻게 배분할까

    임상 예후 기준인 'SOFA스코어' 통해 환자 건강‧여생 판단해야…한국은 명확한 기준 없어 아쉬워

    기사입력시간 2021-01-06 10:09
    최종업데이트 2021-01-06 14:01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부족한 의료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 코로나19 위중환자로 분류된 A씨는 이미 80세를 넘은 나이다. 이미 기존에 다양한 중증 만성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던 A씨는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인공호흡기와 에크모(ECMO) 등 산소 치료가 장기간 필요한 상태다. 반면 또다른 확진자인 B씨는 만성호흡기 질환 환자로 최근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 치료가 필요하게 됐다. 단 한명의 환자만 치료할 수 있는 병상과 인력, 장비가 있다면 어떤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맞을까.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부족한 의료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중환자 진료 인프라가 부족해지면서 증상이 악화되는 위중환자들과 기존 일반 중환자등의 진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적 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의 윤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합의 도출이 필수라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지’에 ‘코로나19로 인한 자원 부족 상황에서 의료자원의 배분 정의’를 다룬 연구가 발표돼 화제를 모았다. 논문은 연령, 장애 및 중증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의료자원의 분배 문제를 윤리적 차원에서 심도 있게 다뤘다. 특히 논문을 집필한 이경도 저자(영국 럿거스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럿거스 인구 수준 생명윤리센터 소속, 울산의대 졸)는 이미 지난 8~9월 2차 유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N차 유행이 올 것을 대비해 부족한 의료자원의 배분 정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겨울 대유행이 오기 전 미리 의료 자원 분배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나 정책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며 “학회 차원의 가이드라인도 기준의 기반이 되는 근거도 명확히 공개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발 늦긴 했지만 최대한 중환자 병상과 전문 의료진을 확보하는 일이 의료 자원 배분의 기준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투트랙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특히 그는 자원 배분 기준과 관련해 예후를 판단하는 임상적 지표인 'SOFA(Sequential Organ Failure Assessment) 스코어' 등을 활용해 객관적으로 환자들의 단기적 예후를 판단하고 이를 통해 다수의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은 병상 확보 과정에서 대응이 미흡했고 가용할 수 있는 의료 자원 확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며 “무엇보다 병상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의료자원 배분과 관련된 반복된 재평가와 그에 따른 퇴실 결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면 많은 희생이 따를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우선순위가 높은 코로나19 환자들을 기존 일반 환자 대신 입실시키는 결정 자체는 윤리적으로 일부 정당하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원 부족 상황에서 의료자원의 배분 정의' 논문을 발표한 이경도 저자

    ​Q. 현재 3차대유행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의 상황도 심각해 보인다. 국내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본인은 코로나19에 대한 감염병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연구 주제가 '분배 정의'이다 보니 관련 상황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겨울철 대유행을 대부분 예상했고 1차 유행보다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이야기한 상태였다. 겨울 기간동안 한국에서도 상당 수의 확진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최소한 내년 2~3월까지 병상 확보와 사회적 거리두기, 대규모 검사 등이 필요할 것이다.
     
    Q. 개인적으로 의료 자원 배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 대학에서 의료 자원 배분의 윤리적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의료 자원 배분은 경제학, 정치학, 정책학 등 여러 학문 분야와 연관돼 있고 그동안 한국에서는 주로 이 세 분야가 논의돼 왔다. 예를 들어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가장 비용 대비 효과적인지 (경제학), 한국 정치 제도가 특정한 분배 결정에 이르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치학), 실제 정책 실행에서 고려해야 할 현실적 문제들과 파급 효과들은 무엇이 있는지 (정책학) 등 이다.
     
    그러나 의료 자원의 배분이 윤리적인 가치들과 연관돼 있고 윤리적인 탐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한국에서 흔히 묵과돼 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의과대학에 다닐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적절한 사회적 대우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알게 됐다.
     
    그 후 자연스럽게 건강과 보건의료의 불평등에 관심이 생겼으나 다양한 공부를 하던 중 불평등한 상황이 얼마만큼 불평등한지 기술(describe)하는 것보다 그 불평등에 대해 어떻게 가치 판단(value judgement)을 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전에 언급한 경제학, 정치학, 정책학은 다소 경험적으로 상황에 대한 기술(description)과 탐구에 집중하고 있다면 윤리학은 그 실제 상황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학문이다. 예를 들면, 건강 불평등은 언제 교정돼야 하는지. 나이에 따라 의료 자원 분배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지역 간 보건의료 불평등은 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등 여러 질문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Q.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먼저 굉장히 심각한 펜데믹 상황을 겪었다. 당시 해외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부족한 의료자원들이 적절히 배분됐다고 보는지.
     
    미국은 지난해 2월부터 의료 자원 배분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점에 서로 동의하고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주는 2015년 신종 감염병의 대유행 상황에서 어떻게 의료 자원을 배분할 것인지 이미 가이드라인을 이미 세웠다.
     
    학술적으로는 의료 자원 분배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올해 상반기에 많이 출판됐고 여러 대학 병원과 주 정부에서 자신들만의 분배 원칙을 세웠다. 상당한 확진자에도 불구하고 아주 심각한 수준의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없는 듯 하다. 또한 확진자 당 사망자 수를 고려했을 때 현재까지 의료 자원 분배와 의료 시스템상의 대응이 적절히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탈리아는 올해 초 대유행이 일부 지나간 후에야 학회 차원(the Italian Society of Anesthesia, Analgesia, Resuscitation, and Intensive Care, SIAARTI)에서 의료 자원 분배 원칙을 발간했다. 이 같이 늦은 대응이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지연된 대응이 상당한 위기를 불러왔다는 평가도 있다.
     
    이탈리아는 효율적인 분배 결정이 신속히 이뤄지지 못했고 선착순으로 환자를 치료했다. 북부 이탈리아의 다수 의료진에 따르면 중환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보고했다. 현재까지 나온 자료를 기초해 보면 확진자 당 사망자 수가 여타 국가에 비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급증하는 확진자로 국가 전체에 봉쇄령을 내리는 등 방역에도 실패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사례가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이유는 의료 시스템의 심각한 붕괴 때문이다.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의료 자원 분배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 잘 보여준 사례다.
     
    Q. 의료자원 배분에 있어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해외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례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의료 자원 분배 가이드라인이다. 이미 지난 4월 15일 지침이 발표되며 시기적으로도 매우 빨랐다.

    또한 문제 소지가 있었던 여타 주 정부 지침과 달리, 현실적인 옵션들과 윤리적인 가치들을 적절히 고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대유행이 미국에서 시작된 2월 말과 3월 초부터 여러 주 정부에서 단순히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기암 환자 등 여러 환자군을 중환자실 입실 기준에서 제외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반발을 샀다.
     
    이후 등장한 피츠버그 대학의 가이드라인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먼저 점수제(scoring system)를 사용해 분배 결정의 신속함을 추구했다. 또한 일정한 우선순위 점수 기준을 충족한 이들 사이의 순서를 결정할 때는 별도의 위원회가 개입해 단순히 점수만을 고려하는 분배 결정에서 놓칠 수 있는 가치들을 반영토록 했다.
     
    실제 진료에 참여하는 중환자실 의료진이 아닌 관련 지식이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분배 결정 위원회가 그 결정을 내리게 해 환자 진료에 차질이 없게 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마지막으로 관련 가이드라인을 인터넷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적절히 수용하고 있다. 
     
    Q. 개인적으로 의료 자원 배분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먼저 의료 자원 배분(rationing)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분배 결정으로 인해 누군가는 의료 자원을 받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의료 자원의 확보, 즉 적절한 수의 중환자실 병상과 관련 의료진을 확보하는 일이 의료 자원 배분의 기준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혹은, 그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그 이후 배분 기준을 세울 때는 논문에서도 주장했 듯이 가장 많은 수의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회복 가능성을 평가하는 SOFA 스코어 등 여러 임상 지표들은 무엇보다 단기적인 예후를 판단하는 데에 객관적이기 때문에 더욱 다수의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남은 여생을 고려하는 것도 대부분 기준에서 중심이 되고 있다. 이는 그 효과 측면에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를 우선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공감대에 기인한 것이다. 물론 여러 다른 요소들(연령‧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그 분배 결정에 부차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회복 가능성과 여생은 중추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Q. 점수를 통해 의료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피츠버그 대학의 분배 가이드라인에 자세히 어떻게 점수화하고 이 점수를 분배 결정에 참고하는지 나와있다. 먼저 예후를 판단하는 임상적 지표인 SOFA 스코어가 낮으면, 즉 예후가 좋으면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

    또한 급성기 질환, 즉 코로나19가 치료된 이후에 예상되는 남은 여생에 따라 점수가 부여되고 여생이 5년 이상이면 가장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 점수가 낮은 순서대로 우선순위가 높은 군에 속하게 되고 이 군 내에서 순서를 정해야 할 때는 담당 분배 결정권자 혹은 위원회가 여러 지표와 자료를 토대로 판단하게 된다.
     
    Q. 현재 국내에서도 여러 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기존 일반환자들의 진료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윤리적, 정치적 측면을 고려한 현실의 차원에서 각기 다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먼저 윤리적 측면에서 중증도와 회복 가능성, 남은 여생 등이 모두 동일한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가 있다면 반드시 코로나19 환자를 우선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바꿔 말하면 일반 환자가 경미한 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할 때는 윤리적으로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를 위해 그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논쟁은 일반 환자들이 이미 입원해 있다는 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중환자실에 입실해 있는 일반 환자들을 내보내고 코로나19 환자들을 입실시키는 것은 일반 환자들의 우선순위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정당하지 않다. 
     
    이 같은 우선순위의 재평가에 따른 일부 환자들의 퇴실 결정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여러 윤리적인 논의들이 있다. 반복적인 우선순위의 재평가를 ‘반복된 트리아지(triage, 우선순위를 위한 부상자 분류)’라고 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반복된 트리아지는 중요하다.  

    반복된 트리아지 적용이 불가하다면 이미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내보내는 것도 불가하다. 이런 상황에선 의료 자원의 분배가 선착순(first-come, first-served)으로 이뤄지고 우선순위가 낮더라도 시간상으로 먼저 입실해 있다면 퇴실이 불가하다.

    그러나 이때 경증이거나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이 이미 입실해 그 병상을 차지함으로 살릴 수 있었던 많은 환자들을 희생될 수 있다. 따라서 반복된 트리아지에 따른 일부 환자들의 퇴실 결정은 일부 정당하다는 것이 다수 분배 기준에서 인정하는 요소다. 
     
    물론 우선순위의 재평가와 그에 따른 입‧퇴실이 너무 자주 급작스럽게 변경된다면 그 치료의 지속성과 효과를 저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반복된 재평가와 그에 따른 퇴실 결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많은 희생을 불러온다면 더 큰 사회적 피해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우선순위가 높은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신 입실시키는 결정 자체는 윤리적으로 일부 정당화될 수 있다. 
     
    Q.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의료자원에 대한 배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선 상당한 합의 과정과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문제들이 선제적으로 잘 이뤄졌다고 보는지.
     
    겨울 대유행이 오기 전 미리 의료 자원 분배에 관해 학회 차원에서 여러 학술 행사들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명확한 기준이나 특정한 정책 대안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또한 중환자실 입실 기준과 우선순위 설정 기준은 이미 대한중환자의학회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기준의 기반이 되는 임상적‧윤리적 근거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아 아쉬움도 남는다.
     
    사실 분배 가이드라인과 그 합리적 근거에 대한 적절한 공개는 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분배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논쟁은 관련된 정보의 공개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 같은 합의에 이르는 과정 자체도 그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한국 상황을 봤을 때 병상 확보가 미흡해 대응이 어렵다는 점은 가용할 수 있는 의료 자원 확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관련 전문가들이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무엇보다 병상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