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에서 도파민 분비를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사멸하게 되면 도파민 분비의 부족으로 운동이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증상에 근거해 파킨슨병이라는 진단명을 내리게 된다. 파킨슨병의 3대 증상은 진전(震顫), 서동(徐動), 강직(剛直)이다. 진전, 즉 떨림은 주로 환자가 쉬고 있을 때 나타나며 자발적인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떨림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서동이란 몸의 움직임이 느려는 것이고 강직이란 몸이 뻣뻣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흑질 외에 다른 부위의 뇌세포도 영향을 받아 수면장애, 우울증, 치매가 동반되기도 한다.
특히 진전, 서동, 강직 전에 나타나는 증상은 주로 후각 장애, 변비, 수면 장애 등이 있다. 이러한 전조 증상들과 추후 파킨슨 진단을 받을 확률과는 높은 연관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행동학적 증상에 근거한 진단에 의존하는 것이 현재의 파킨슨 진단의 현실이다. 이러한 증상 기반의 진단만으로 좋은 치료가 가능할까? 혁신적인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해도 이런 구시대적 환자 선별법이 치료 효과를 반감시키지는 않을까? 최근 다른 적응증 분야에서는 큰 각광을 받고 있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나 환자맞춤형 치료(personalized medicine)의 개념이 파킨슨병을 비롯한 퇴행성뇌질환 치료에도 적용이 가능해질까?
올해 2월 22일 메디컬 익스프레스에서는 눈물 속의 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 α-Syn) 단백질 분석으로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의대 신경과 전문의 마크 류 박사는 파킨슨병 환자 55명 그리고 이들과 연령, 성별이 같은 일반인 27명에게서 채취한 눈물 속 단백질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파킨슨병 환자의 눈물 속에 2가지 특정 단백질 수치가 일반인들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밝혔다. 파킨슨병 환자는 눈물 속 α-Syn 단백질 수치가 평균 423pg/mg으로 일반인의 704pg/mg에 비해 크게 낮았다. α-Syn이 응집한 형태인 올리고머(oligomer) α-Syn 수치가 평균 1.45ng/mg으로 일반인의 0.27ng/mg에 비해 5배 이상 높았다. 신경 자극에 의해 눈물샘 분비세포가 이 두 형태의 α-Syn 단백질을 눈물 속으로 분비하는 것이다.
현재의 진단법으로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의 사멸이 50% 이상 진행돼야 증상이 나타나고 그 이후에 임상진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가 흥미로운 점은 증상 표현 이전이라 할 지라도 생물표지자(biomarker)의 α-Syn을 생화학적 방법으로 수치화, 정량화해 발병 초기의 조기 진단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향후 통계학적 유의성이나 발병 진행 정도에 따른 분석 결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뇌 부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루이소체(Lewy body)라 불리는 단백질 응집체의 구성물질이 α-Syn이라는 단백질이다. 2003년 브락(Braak)은 파킨슨병 환자의 α-Syn 포함체(inclusion body) 병리가 뇌간(腦幹, brain stem) 쪽에서 먼저 생성되고 피질 쪽으로 전파(spreading)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또다른 질병 분류체계로서 α-Syn 포함체 병리를 주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질환들을 알파시누클레인병증(α-Synucleinopathy)으로 분류한다. α-Synucleinopathy는 파킨슨병을 비롯해 루이체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 DLB)와 다계통위축(Multiple system atrophy, MSA) 등의 질환이 포함된다.
α-Syn 응집체 형성은 파킨슨병 초기에 중뇌가 아닌 미주신경(Vagus Nerve), 전후각신경핵(anterior olfactory nucleus)에서 시작해 병이 진행함에 따라 브락의 가설처럼 중뇌를 거쳐 말기에는 대뇌피질로 퍼져 나간다. 1997년에 이르러 루이소체의 주요 구성성분이 α-Syn임이 밝혀졌다. 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α-Syn이 뇌의 여러 부위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는 가설은 α-Syn이 한 세포에서 만들어져 다른 세포로 전달될 수 있다는 최근 연구보고들에 의해 이제는 대표적인 병리 기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계통 위축증(MSA)은 파킨슨병과 같은 α-Synucleinopathy이지만 파킨슨병과 달리 약물 치료에 대한 반응이 떨어진다. 수술 치료에 효과가 없고 예후도 더 나쁘다. 병증의 시작도 한참 일할 나이인 40, 50대에서 나타나고 평균 생존기간(mean survival time)이 10년 정도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연 3000~5000명의 환자가 나타난다.
지난 5월 9일 ‘네이쳐(Nature)’지에 펜실베니아대학의 버지니아 리(Virginia Lee)교수팀이 'Cellular milieu imparts distinct pathological α-synuclein strains in α-synucleinopathies '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뇌세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신경세포(neuron)와 신경세포를 지지해주고 영양분 공급, 노폐물 제거 등의 역할을 해 주는 아교라는 뜻의 신경 아교세포(神經阿膠細胞, glial cell)가 있다. 이 논문의 결론은 파킨슨병과 루이체치매에서는 루이소체가 뉴런에 형성되는 반면, 다계통 위축증의 α-Syn은 주로 희소돌기 아교세포(稀少突起阿膠細胞, oligodendrocytes)의 신경 아교세포 포함체(glial cytoplasmic inclusions, GCIs)에 존재한다.
희소돌기 아교세포병증(oligodendrogliopathy)이다. 연구팀은 구조적으로 또한 생물학적으로 GCIs에서의 병리학적인 α-Syn(GCI-α-Syn)과 파킨슨병의 α-Syn(LB-α-Syn)이 서로 분명히 다르다고 밝혔다. GCI-α-Syn이 구조적으로 더 조밀하고 생물학적 독성도 LB-α-Syn 보다 1,000배나 더 강하다. 이런 구조적, 생물학적 특성이 바로 다계통위축(MSA)의 병적인 심각성으로 그대로 나타낸다. α-Syn이 엉켜서 독성을 가진 형태로 변한 모습을 α-Syn PFF(preformed fibrils)라고 한다.
피브릴(fibrils, 원 섬유) 모습인지 리본(ribbon) 형태인지에 따른 구조적인 다름에 의해 같은 알파시누클레인병증이지만 독성이나 발병 위치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점점 과학이 발전하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뭉뚱그려 증상만으로 병리학적 진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α-Syn에 근거한 진단이 가능할 것인가? 나아가서 서로 다른 α-Syn 형태에 의한 루이소체의 구분과 그에 따른 α-Synucleinopathy의 구분과 진단이 가능할 것인가? 환자의 눈물에서 α-Syn 응집의 피브릴과 리본 형태를 진단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증상이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신경세포와 신경 아교세포에서는 생물학적 병증이 시작된다. 퇴행성 뇌질환에서 신경퇴행의 생물학적 진행을 성공적으로 완화하는 혁신적 기전의 치료제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치료의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그러한 혁신 기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최근 항암제 개발에서 각광을 받는 정밀의학과 환자맞춤형 치료제의 개념이 뇌질환에서도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