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4월 25일 페이스북에 ‘조로증 연구재단(Progeria Research Foundation, PRF) 긴급속보(Breaking News)’가 올라오자 필자도 즉시 ‘공유’했다. 제약사 ‘쉐링 플라우’(Schering-Plough, S-P)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밥 비숍(Dr. Bob Bishop)이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조로증(Progeria)’, 그 이름은 ‘때 이르게 늙은’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조로증’ 또는 ‘허친슨-길포드 조로증후군(HGPS)’은 어린이가 빠른 속도로 노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략 신생아 400~800만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하며 치명적인 유전 질환이다. 전 세계에서 매순간 2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조로증을 앓고 있다고 추산한다.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은 죽상 경화증(심장질환 또는 심장발작)으로 대략 8살에서 21살의 범위, 평균 14살에 사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우 이범수가 2003년 개봉한 ‘오! 브라더스’에서 조로증에 걸린 12살 소년을 심도 있게 연기하면서 좀 알려졌다.
4월 24일 출간된 '미국의사협회저널(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임상시험에서 27명의 조로증 어린이들(150mg/m2)이 파네실 트랜스퍼라제 억제제(FTI)인 로나파닙(lonafarnib)을 하루에 두 번씩 경구 투여를 받았다. 이 임상시험의 대조군은 비슷한 나이, 성별과 같은 대륙에 사는 조로증 어린이들이다.
로나파닙을 투여 받은 어린이들이 대조군에 비해 평균 2.5년을 추적한 결과, 카플란-마이어 생존 분석법(Kaplan-Meier)의 생존 커브를 보면 현저히 낮은 치사율(mortality rate, 3.7% vs. 33.3%)이 투약과 관련이 있었다.
PRF와 페북, 친구 밥 비숍의 연관성은 지난 2월 22일 밥(Bob)의 생일을 축하하는 대신으로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PRF에 기부한 경험도 있다. 왜 밥과 필자가 PRF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있을까. 그 시작은 1989년 분자약리학(Molecular Pharmacology)이란 작은 팀이 S-P에 만들어지면서부터이다. 젠타마이신(Gentamicin)을 발견하고 약으로 만든 미생물학(Microbiology)이라는 오래된 부서가 당시 혁신이 필요하자 그 밑에 회사 전체의 스크리닝센터를 만들고 고속 약물 민감성 스크리닝(High Thruput Screen)을 지원하는 4명의 분자약리학 박사팀이 생겼다.
필자와 밥(Bob)은 팀의 가장 처음 스크린으로 FT스크린을 만들었지만 이미 머크(Merck)는 라스(RAS) 유전자를 발견한 스콜닉(Scolnick) 박사가 연구소장이었다. 따라서 이미 시작한지 몇 년이 됐고 FT스크린의 특허(IP)는 존슨앤존슨(J&J)에서 이미 등록했던 상황이었다.
우리는 개발 시작부터 이미 후발주자였지만 FTI에 힘을 쏟았다. 그 당시는 라이브러리로 비축한 S-P 화합물을 모두 다 스크리닝하지 않고 대표적인 화합물로 선별된 ~24개 플레이트(plate, 96 well)만 수작업으로 했다. 처음 스크리닝에 걸린 화합물이 SCH44342이다. 그 화합물은 아직도 알레르기성 비염 치료제로 잘 팔리는 클라라틴(Claratin)을 개발할 때 만들어진 클라리틴(Claratin-family) 구조의 화합물이다. 번호에서 추측하듯이 1만개에 가까운 여러 유도체를 만들어서 SCH56582를 거쳐 최종 후보물질 SCH66336(Lonafarnib)이 만들어졌다. 다른 경쟁 약물에 비해 물성도 좋고 부작용이 적고 경구 투여도 가능한 좋은 약물이었다.
1999년에 하루에 두 번씩(bid) 경구 투여로 임상1상에 들어가서 임상2상에서 투여도 1일 2회로 추천됐다. 또 다른 임상1상에서는 2상에서 투여가 300mg 하루에 한 번 투여(OD)로 추천됐다. 그 후에 계속되는 임상2상과 다른 항암제와의 병용투여를 했지만 긍정적인 임상결과를 얻지 못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1997년 JBC에 발표한 ‘파르네실 단백질 억제제로 처리된 세포에서 K-RAS와 N-RAS 단백질의 제라닐제라닐화’(Geranylgeranylation of K- and N-ras proteins in cells treated with a farnesyl protein transferase inhibitor)가 다시 주목을 받고 약을 투여했을 때 이런 ‘프레닐화 대체(alternative prenylation)’가 긍정적이지 못한 임상결과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라민A의 돌연변이로 인한 허치슨 길포드 조로증후군 재발 원인’(Recurrent de novo point mutations in lamin A cause Hutchinson–Gilford progeria syndrome’이란 제목의 논문이 2003년 5월에 Nature에 발표된다. 이 허치슨 길포드 조로증후군(HGPS) 유전자는 당시 미국 국립 보건원(NIH)장인 프란시스 콜린스 그룹에서 발견했다. HGPS는 LMNA(라민 A)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발생한다.
LMNA 유전자는 세포의 핵을 지탱하는 구조적 발판인 라민A 단백질을 생산하는데 결함을 가진 라민A 단백질이 핵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조로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노화를 겪고 있는 일반 인구와의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해 우리 모두는 조로증의 질병유발 단백질인 프로게스틴(progerin)을 조금씩 생성한다. 다른 점은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은 라민 A 단백질의 유전변화로 프로게스틴이 체내에 쌓이며, 이런 세포의 불안정성이 HGPS에서의 때 이른 노화과정으로 연결된다.
2005년 8월부터 2006년 2월 사이에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의 채닝 데르(Channing Der) 박사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의 스티브 영(Steve Young)교수 그룹들이 조로증을 가진 아이들의 피부 세포에서 떼어낸 샘플에 FTI를 처리하면 일반적인 세포와 비슷하게 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Mature 라민 A 단백질이 되기 위해 파르네실(farnesyl) 그룹이 단백질에 붙은 후에 정상적으로 프로세스 돼 펩티다아제에 의해 잘라진 후 정상적인 72KDa 라민A가 만들어진다. HGPS에서의 라민 A 단백질이 잘라지는 부분을 포함해 50개의 아미노산이 결실돼 있고 같은 파르네실(farnesyl) 프로세싱(processing)을 통해 기형의 67KDa 라민A가 만들어지는데 잘라지지 않으니 파르네실(farnesyl) 그룹이 단백질에 붙어있다.
연구자들이 착안한 것은 FTI를 처리하면 정상적이진 않지만 67KDa 라민A가 만들어지면 파르네실(farnesyl) 그룹 없이 72KDa 라민A와 사이즈만 다르고 비슷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PRF에서는 HGPS 어린이들에게 당시 S-P의 FTI인 로나파니브(Lonafarnib)을 투여하자고 회사에 제안했다. 로나파니브의 다른 이점은 이미 임상 2상을 통하여 어린이 암환자에게 투여한 경험이 있고 안전성 용량을 알기에 필자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2007년 5월 7일부터 역사적인 투여가 시작됐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에서도 항상 임상결과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이제야 HGPS 어린이들에게 첫 번째 임상실험에 사용된 약물인 FTI가 조로증의 최초 치료물질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JAMA에 보고됐다.
K-Ras라는 같은 타깃을 다른 독특한 방법으로 개발하는 바이오텍의 대표가 신약개발 역사상 FTI가 가장 많은 돈을 들이고 실패한 타깃으로 규정하는 슬라이드를 보여준 적이 있다. 여러 빅 파마가 경쟁적으로 항암제로 오랫동안 연구하고 임상을 진행했던 만큼(숫자적으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제 JAMA의 논문발표 이후에는 돈으로 계산이 안 되는 가장 위대한 신약개발 투자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전 세계 250여명의 HGPS 어린이들이 FTI를 복용함으로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더 살 수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가. 로나파니브을 위해 가장 근본적인 스크린을 만들고 왜 K-, N-Ras에서 약리작용이 잘 안 되는지 ‘프레닐화 대체’를 밝힌 연구자로서 지난 27년의 세월이 강의의 슬라이드처럼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