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의사협회가 3월 31일 '제64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하기 위한 '엑스레이특별위원회'를 발족,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올해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주장하는 원년으로 만들기로 다짐했다.
한의협 최혁용 회장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전면적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 시작은 의료기기 사용 운동이 될 것이다”라며 “대국민 홍보로 국민의 여론을 환기하는 등 올 한해를 현대의료기기 사용의 원년으로 만들자”고 말했다.
하지만 각 판결문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앞선 판결들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과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9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돼있다.
한의사 IPL시술은 국민 건강에 위해 우려
대법원은 IPL 시술을 한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파기 환송하고 다시 판결하라고 선고했다.(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IPL은 한의학적 시술이 아니며 보건위생상 국민 건강에 위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원심은 우선 피고인이 사용한 IPL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했는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피고인이 이를 사용한 경위·목적·태양 등에 의할 때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를 응용 또는 적용해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심리해야 했다. 또한 원심은 IPL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살펴 IPL을 이용한 진료행위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
대법원은 "원심은 판시와 같은 사정들만을 근거로 이번 부분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원심판결 중 무죄부분에는 결국 한의사의 면허된 의료행위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의사나 한의사의 의료행위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기준 및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 이외에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에 따른다.
대법원은 "IPL은 피부 색소침착, 여드름, 모세혈관 확장의 각 치료 및 미세한 주름제거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주위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은 채 특정한 조직을 파괴하는 선택적 광열용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경락에 자극을 줘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적외선치료기, 레이저침치료기와 작용원리가 같다고 보거나 경락의 울체를 해소하고 온통경락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 이외에 의료공학의 발전에 따라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이러한 법리에 기초해야 한다.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당해 의료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당해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당해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당해 의료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의사의 골밀도 측정 초음파 사용은 무면허 의료행위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한의사의 골밀도 측정 초음파 사용을 위법으로 명시했다.(헌재 2013. 2. 28. 2011헌바398)
한의사가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진단기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 등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이후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피고인이 항소해 항소심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의료법 제27조 제1항 및 제87조 제1항 제2호 중 제27조 제1항 부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한의사는 "의료인에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련해 의료관계 법령에서 그 면허의 범위나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고, 한의사의 초음파진단기기 등의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특정 행위가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의료행위의 태양 및 목적, 학문적 기초,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 정도, 관련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견해를 유지했다.
헌재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학문적 기초가 서로 달라 학습과 임상이 전혀 다른 체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익힌 분야에 한해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는 면허를 가진 자가 행하더라도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와 다르게 평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헌재는 "영상의학과는 초음파진단기기와 같은 첨단의료장비를 이용해 영상을 획득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법상 서양의학의 전형적인 전문 진료과목이다. 초음파검사 시행은 간단하나 영상을 평가하는 데는 인체 및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검사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영상의학과 의사나 초음파검사 경험이 많은 해당과의 전문의사가 시행해야 한다. 이론적 기초와 의료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이를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필러는 서양의학, 한의사의 필러시술은 무면허 의료행위
필러시술을 서양의학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한의사의 필러시술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 (대법원 2014. 1. 16. 선고 2011도16649)
피고인 한의사가 피부 부위에 히알루론산을 직접 주입해 시술한 사안으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의료법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한 사례다.
대법원은 "의료법령에 의사, 한의사 등의 면허된 의료행위의 내용을 정의하거나 구분 기준을 제시한 규정이 없다. 의사나 한의사의 구체적인 의료행위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학문적 원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비춰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 이외에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이러한 법리에 기초해 판단해야 한다.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진료에 사용한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필러 시술을 분명한 서양의학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필러시술은 경혈을 자극해 경혈과 연결된 인체의 각종 기관들의 기능을 촉진하거나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시술한 부위의 피부 상태를 높여 전체적인 얼굴 미관을 개선하려고 했다. 한약은 동물․식물․광물에서 채취된 것으로서 주로 원형대로 건조․절단 또는 정제된 생약인데, 이 사건의 필러시술로 주입한 히알루론산은 첨단장비를 이용해 박테리아를 발효시켜 생산하는 것으로 한약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필러 시술은 전적으로 서양의학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의사 안압측정기 등 사용 유죄는 아니지만 전적 허용은 아냐
헌법재판소가 동의보감의 예시를 들어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등을 사용한 한의사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의료기기 사용의 전면 허용을 인정하진 않은 것이다. (헌재 2013. 12. 26. 2012헌마551, 2012헌마561병합)
한의사가 안압측정기, 청력검사기, 안굴절검사기 등을 사용해 시력 및 안질환검사, 청력검사 등을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약을 처방한 사안에서, 검사는 이를 무면허의료행위로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에 한의사가 범죄 혐의를 인정한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이 자신들의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동의보감을 인용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눈을 5가지 부분으로 나눠 각각의 이상에 따른 병의 원인 및 치료방법을 설명하고 있고, 녹내장(녹풍)과 백내장(원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압측정기는 결과의 해독이 필요 없고 자동으로 측정된 결과만으로 안압의 정상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보건위생상 아무런 위해가 없는 한의학의 진단 방법 중 하나인 절진(切診)의 현대화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시야계측기나 자동안굴절검사기는 안경사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건위생상 아무런 위해가 없고, 결과의 해독에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지 않다고 봤다. 세극등현미경 역시 동의보감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눈병의 확인을 위한 망진(望診)의 일종으로서 보건위생상 아무런 위해가 없고, 결과의 해독에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청력측정기는 보청기를 판매하는 곳에서도 사용되고 보건위생상 아무런 위해가 없는 데다가 그 측정결과의 해독에 전문적 식견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문진(聞診)에 해당하고, 한의대의 교과과정에 안압계, 세극등현미경 등을 이용한 진단방법이 교육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사건에서 기기들을 사용한 진료행위는 한의사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 유화진 변호사는 의료정책연구소 보고서에서 “헌재 결정의 취지는 이와 같은 요건이 충족되는 전제하에서만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의료기기의 사용에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