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성 환자 안전 파괴와 성숙한 ‘Just Culture’
[메디게이트뉴스] 인간은 흔히 착각, 기억 혼돈, 혹은 깜빡했다라고 표현되는 다양한 실수 등 각종 오류(human error)를 범한다. 오류는 범죄와는 다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 실수이며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까지 인간의 오류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위험 행동은 정상적인 절차를 고의로 뛰어넘거나, 규정을 우회하는 것이다. 의사의 무모한 행동은 음주 진료나 고의로 의료표준이나 규정을 무시하는 행위 등 고의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미국의 David Marx는 오류(human error)와 위험한 위반(recklessness)은 엄연히 다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기에 흔히 표현되는 단순 실수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00년 BMJ(British Medical Journal)는 현대 의료의 약 10% 포인트 범위는 오류라는 표현의 대표적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영국의 급성 병원 입원환자 1014명의 의무기록을 후향적으로 검토한 결과, 10.8%의 환자에서 의료 관련 위해사건(adverse event)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발생한 사건 중 약 절반은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했으며, 통계치에서 약 3분의 1은 중등도 이상의 장애와 사망에 이른 원인으로 파악됐다. 이 연구는 전체 의료의 10% 범위가 오류라기보다는 입원환자의 약 10% 정도가 의료로 인한 위해사건(adverse event)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위해사건에는 순수한 과실(error), 합병증(complication), 시스템 문제, 예방이 가능한 사건과 불가능한 사례 모두 포함됐다. 이를 곧바로 확대해 의료의 10%가 오류라고 단정하면 왜곡된 표현이다.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 안전 문화, 시스템 재설계에 무게를 둔 Just Culture 의료의 실상을 그대로 담은 진솔한 보고가 논문으로 발표되는 것은 의료에서는 처벌보다는 학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영국과 미국의 제도는 이미 의료에 대한 형사처벌은 정직한 보고의 감소와 은폐의 증가, 그리고 사건 사고로부터 얻는 학습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의 환자안전보고시스템(Patient Safety Incident Response Framework, PSIRF)의 기본 철학은 의료 오류에 대한 공정한 문화(just culture)를 구축하면 자의적 보고가 증가하고, 근접 사고(near miss)에 대한 사실을 공유하고, 신고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향상해 종국에는 시스템 개선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PSIRF는 비난보다는 열정적인 참여로 의료 사건과 사고의 체계적인 분석(system analysis)을 통해 배움과 교훈을 얻는 것을 공정한 문화(just culture)의 구현으로 보고 있다. Just Culture는 무책임(no accountability)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fair) 책무성(accountability)을 부여함으로써 시스템적인 책임과 조직에 대한,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 영국의 의료에서 공정한 문화는 Safety Science, Resilient Healthcare, Human Factors, Learning Health Systems, High Reliability Organizations(HRO), Systems Thinking 등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현대 안전 철학의 개념을 의료에 대한 적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Just Culture는 한국어로 단순 번역이 매우 어렵다. 흔히 공정한 문화, 정의로운 문화, 정당한 문화 등으로 번역되지만, 실제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Just Culture의 핵심은 단순한 정의가 아니라 사람의 오류를 처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시스템 속에서 이해하고 학습하면서도 고의적이고 무책임한 행위에는 합당한 책임을 묻는 조직문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처벌 문화도 아니고, 책임추궁 문화도 아닌 학습과 책임의 균형을 이룬 문화인데 한국어 서사로 표현하면 비난보다 학습을 우선하는 문화가 가장 직관적이다. Just culture의 의미는 사고가 나면 먼저 사람을 탓하지 않고 왜 그런 상황이 가능했는지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재발 방지시스템으로 연결해 개선한다. 그러나 명백한 고의적 위반은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즉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 안전 문화라는 의미를 담는다. Just의 핵심을 공정성에 두면 공정한 책임 문화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이는 인간의 실수는 처벌하지 않으나, 반복적이고 무모한 위반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그 책임의 수준을 행위의 성격에 맞게 판단한다. 즉 모든 실수를 동일하게 처벌하지 않는 문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더 부연하자면, 신뢰 기반의 안전 문화인데, Just Culture가 작동하려면 의료진이 어떠한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조직이 구성원을 보호할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류를 공유하거나, 진실한 내용을 보고하지 않아 학습의 기회는 사라지고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따라서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안전 문화가 용어가 담고 있는 핵심이다. 좋은 의료 향한 선진국 노력 현재진행형 vs 우리나라 보여주기식 환자 안전 파괴 Just Culture는 처벌보다 예방을 중시하는 선제적 차원의 안전 문화를 의미하는데,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Just Culture의 의미는 사건, 사고에서 책임자 처벌로 인식하고 있다. 처벌의 노력보다는 사고 발생에 대한 구조적 원인 분석 후 재발 방지를 하는 것이 환자 안전을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 이것은 사후 처벌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큰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의사에 대한 형사 처리나 행정처분으로 의료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한다. 어느 시민단체의 대표는 사람이 죽었는데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이는 환자의 죽음과 의료적 오류를 직결시켜 오히려 환자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 것이다. Just culture의 가장 적절한 한국어 개념화는 의료정책과 환자 안전의 맥락에서 정당한 책임을 전제로 하되 인간의 오류를 개인 비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시스템 개선과 조직 학습의 기회로 삼는 안전 문화라는 표현이다. 즉, 비난보다 학습을 우선하는 공정한 안전 문화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 Just Culture가 어려운 이유는 형사책임 구조의 사법 문화와 강한 위계 문화와 결과와 책임 중심적 사고, 언론과 여론 압박, 행정처분 중심의 규제 등의 이유인데, 우리나라만 유독 아직도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가?라기 보다는 누가 잘못했는가?를 먼저 찾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안전 문화와 매우 동떨어진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Just culture가 실현되는 나라에서는 형사처벌이 아닌 자율 규제와 환자 안전을 위한 제도적 노력으로 좋은 의료를 위한 개선 작업이 상시적이고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환자단체도 진정한 개념에서의 환자 안전을 위해 의료인과 협업하는 단체이지, 일방적으로 정부 편을 들거나 특수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적대적인 단체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정치, 행정, 사법 조직에서 Just Culture는 전문직의 자율적 문화를 책임 없는 문화, 느슨한 문화, 봐주는 문화로 가볍게 취급하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 문화 수준을 국민 스스로 오류와 무책임한 행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미숙한 문화로 폄훼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형사처벌만이 미성숙한 조직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라고 강하게 되묻고 싶다. 참고문헌 Vincent C, Neale G, Woloshynowych M.Adverse events in British hospitals: preliminary retrospective record review BMJ 2001;322:517519. (PMC)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