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계의 오랜 염원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고의나 중과실을 제외한 정상적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는 것이 골자다. 의료계는 형사처벌 부담을 최근 의사들의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 가속화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으며, 특례법 제정을 주장해왔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관계자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법무부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해당 법이 제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복지부에서 박민수 차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 임혜성 필수의료총괄과장이 참석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은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필수의료 위기 이슈가 크게 불거지자, 이후 복지부가 제시했던 필수의료 지원 대책 중 하나다.
실제 복지부는 의료계와 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 일정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현재 국회에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가 제동을 걸면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특히 법조인 출신 법사위 위원들은 의사들에게만 형사 처벌을 면제해주는 의료사고특례법은 현행법 체계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복지부는 의료계의 제안에 공감해 관련 법안을 만들어 찾아갔지만 법무부, 국회 법사위 위원들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법리적으로 안 된다’ ‘의사라고 특별히 예외를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라 법 제정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며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의료계와 복지부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원, 의사에 잇딴 형사처벌…의료계는 '분노'
의료계는 최근 법원이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잇따라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공분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외과 전문의의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확정했다.
외과의사는 지난 2017년 장폐색 의심 환자에게 수술 대신 보존 치료를 했으나, 해당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시행한 응급수술에서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등 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판결에 대해 의협은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악결과에 대한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이런 판결이 반복된다면, 의료진의 방어진료 일반화와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가속화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대동맥박리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경증 급성위염으로 오진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대한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 응급실 뺑뺑이와 관련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대상 경찰 조사 등이 이어지며 의료계는 분노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수의료 기피 심화 막으려면 특례법 필요…기소 신중히 하고 구속 수사 중단해야
이에 대해 대한의료법학회 김장한 회장은 위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선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면책하고, 중과실과 고의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게 맞다. 또, 지금이라도 구속 수사는 그만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고소, 고발 위험이 큰 필수의료 분야를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것”고 했다.
이어 “민사의 경우도 미국 사례처럼 손해배상액 상한을 설정하든지, 일정 부분은 국가가 지원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검찰이 의료사고에 대한 기소를 신중히 하고, 구속 수사는 자제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실 법으로 모든 걸 정리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며 “좋은 방법은 업무상 과실치사를 놔두고, 기소를 가능한 신중하게 한다는 걸 의사들도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이어 “과거 네덜란드의 경우 연명의료법이 제정되기 전에 의사회와 검찰이 함께 논의를 해서 ‘안락사에 대해 이 정도면 검찰이 기소하지 않겠다’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법 제정 전까지 실제로 가이드라인을 지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