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가 전문약사제도를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약료(Pharmaceutical care)라는 용어의 모호함과 기존 약사와 전문약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논란, 병원 약사와 지역 약사의 인력 불균형 문제로 인해 발생할 전문약사제도의 파행 우려, 의사의 진료권과 처방권을 침범할 우려, 의약분업 제도에 대한 올바른 평가 및 제도 변화 필요성 등의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27일 이같은 내용으로 '대한민국 의료 현실에서의 전문약사제도의 한계 및 문제점 분석과 제언'을 발표했다.
지난 19일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전문약사제도와 관련해 세 번째로 진행 중인 연구용역이 8월 말쯤 완료될 예정이고, 9월쯤 이 보고서를 받아 10월쯤 하위법령 초안을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전문약사제도는 2020년 4월7일에 신설된 약사법 제83조 2(전문인력 양성)에 따라 법제화됐다. 전문약사 자격 인정과 전문과목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으며, 대통령령에 따른 하위법령이 10월에 만들어지는 셈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전문약사제도는 병원약사회를 중심으로 2007년 전문약사제도 TF가 만들어져서 제도 도입에 대해 논의한 이후 2010년 전문약사 자격시험을 최초로 실시해 전문약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약사회 내부에서 인정되는 자격에 불과했고 국가 공인 자격이 아니었지만, 약사회가 법제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고 2020년에 통과됐다.
연구소는 "문제는 조만간 하위법령까지 만들어지면 전문약사제도는 체계적인 자격 제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약료' 개념 생소하고 모호해 개념 정립부터 필요
연구소는 전문약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전문약사의 명확한 역할이나 업무 범위 등에 대한 내용 없이 모호한 '약료'라는 개념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위법령을 만들기 전에 약료의 개념 정립부터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약료(Pharmaceutical care)는 1990년대 초반 도입된 개념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확실한 치료성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약물요법을 책임감 있게 제공하는 것(Pharmaceutical care is the direct, responsible provision of medication-related care for the purpose of achieving definite outcomes that improve a patient’s quality of life.)"이라는 뜻으로 정의되고 있다.
연구소는 "약사회는 전문약사제도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약료(Pharmaceutical care)라는 개념을 등장시켰고, 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라며 "약료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비교적 최근이고, 용어의 정의를 중심으로 살펴봤을 때 약료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는데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기존에 명확한 역할 분담의 개념이 있음에도 굳이 약료라는 생소하면서도 모호한 개념을 등장시키면서 전문약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전문약사제도의 당위성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라며 "하지만 약사회는 약료에 대해 모든 약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약료가 비전문약사와 전문약사의 역할을 구분 짓는 개념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문약사제도 도입 전 의약분업 재평가와 국민 선택분업 도입부터
연구소는 전문약사제도 도입 전에 처방전 리필제, 대체조제 합법화, 임의조제 부활 우려 등의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의약분업 제도에 대한 재평가와 제도 변화를 통해 새로운 제도가 보다 안정적으로 도입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의료수가를 유지하고 있고, 병원의 규모에 비해 채용되는 약사의 숫자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의료의 질을 중요시하는 이들 국가들에서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고위험 약물에 대한 관리 및 투약, 복약지도 및 약물 교육, 약물 선택과 관련해 의사들에게 제공되는 피드백 등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위해 병원 약사들을 중심으로 전문약사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연구소는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과연 전문약사가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라며 "병원 내 약사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복약지도와 약물교육, 고위험 약물에 대한 교육 등을 대부분 간호사가 하고 있고, 부족한 인력 때문에 병원 약사들은 조제와 의약품 관리만해도 업무량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나라 약사들의 절대 다수는 문전약국 및 동네약국에서 일하는 지역 약사인 만큼 전문약사제도가 정착하기 어려운 한계도 존재한다. 연구소는 "보건복지부나 약사회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 '근무경력 4년 및 실무경력 1년'의 전문약사 자격 요건을 만들면서도 지역 약사나 산업 약사의 경우 경력 인증기관을 어떻게 선정해야 할 지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라며 "결국 전문약사제도는 현재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미국 및 서구 선진국들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지 않는 한 올바르게 정착될 수 없는 제도"라고 했다.
연구소는 "약사회 입장에서는 처방전 리필제와 대체조제 합법화를 추진할 명분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약료라는 모호한 개념을 이용해 의사의 처방권 중에 일부를 가져오는 임의조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라며 "현재 약과 관련된 가장 크고 중요한 제도가 의약분업인데, 이 문제점과 보완점을 그대로 방치한 채로 자꾸 새로운 제도만 도입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약사제도가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병원 약사 수가 늘어나야 하고, 병원에서 약사 채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약사 수를 늘릴 유인 요인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민 선택 분업을 통해서 국민들이 병원 내에서도 약 조제를 받을 수 있게 되면 병원의 약사 채용이 늘어나고, 전문약사들도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