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의대 외과 수업시간에 교수께서 말씀하셨다. “환자를 볼 때 신중해야 합니다. 몇 번의 죽음을 경험하면 환자와 가족에 미안한 마음과 의사로서 자괴감이 들 것입니다.”
20대 후반인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 면허 취득 후 경북 상주 병원에 파견을 갔다. 상복부가 불편해 방문한 70대 여성. 이학적 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수액과 약 처방을 했다. 나중에 병원을 통해 듣기로, 환자는 상주의 병원 몇 곳을 다닌 후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당시 교수의 말이 사실이었다.
2011년 일요일 저녁. 비뇨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로 당직을 서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다. 40대 초반의 남성이 오토바이 사고로 김포의 병원을 거쳐 동국대 일산병원에 왔다. 우측 콩팥 동맥이 절단되고, 간이 으깨진 상태였다. 14개의 혈액을 준비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복부를 절개하니 다량의 피가 차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콩팥 동맥과 정맥을 잇고 원위치에 고정했다. 다음은 외과 교수와 함께 찢어진 간을 복구했다. 간 손상을 복구하고 지혈에 탁월한 의료용 지혈제를 사용해 수술을 마쳤다.
다음날 재수술, 그리고 다음날 함께 수술했던 전공의가 환자 보호자에게 환자의 임종을 알렸다. 10여년이 지난 이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임종 선언을 들은 아내가 의식을 잃고 나무토막처럼 쓰러졌기 때문이다. 좌절감을 느꼈다. 과연 나는 최선을 다 했는가. 수술에 더 신경 썼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까. 수술 과정을 복기해봤지만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나름대로 결심했다.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지만,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많은 의사들이 나와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그들도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뇌출혈과 병원 내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결국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생겼다. 이번 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처럼, 같은 병원(직장)의 동료라면 그런 마음은 더 강할 것이다. 간호사라서 수술하지 않았다는 기사는 의사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한 말이라 생각한다. 아산병원 신경외과 의사가 느끼는 마음의 짐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포털의 기사와 댓글을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의사들은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의사의 희생으로 돌아가니, 수가를 올려달라고 한다. 정의로운 시민단체는 아산병원 전문의 부족과 수술 가능한 의사 2명이 병원에 없었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의사 숫자를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한다. 두 의견 모두 맞는 점이 있지만, 그렇게 접근해서는 갈등만 깊어질 뿐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아산병원에서 뇌동맥류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2명뿐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2명이 신경외과 수술을 도맡아야 하니, 신경외과 교수의 당직은 1년 180일이다. 주 5일 40시간 근무 시대에 그들에게 퇴근은 있을까. 퇴근해도 응급환자가 오면 병원에 나올 것이다. 의사의 인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의료제도의 문제가 무엇이며, 해결 가능한 부분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 대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참고로 내가 레지던트 3년차 때 했던 콩팥과 간을 동시에 수술하는 수가보다 의료용 지혈제가 2배 이상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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