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과민성장증후군과 같은 기능성위장관질환 환자를 진료할 때는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는 없는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그리고 복용하고 있는 건강보조식품이 무엇인지를 꼭 물어본다. 물론 이런 주제의 이야기가 나오면 끝도 없이 길어지는데, 진료시간이 길다고 더 진료비를 많이 받는 게 아닌 국내 의료 현실에서는 문 닫기 딱 좋은 패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을 빼 놓지 않는 것은 치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환자들로부터 눈에 띄게 많이 듣는 대답은 "포스트바이오틱스를 복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왜 드시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게 프로바이오틱스보다 더 좋은 거라고 하던데요, 아닌가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과정에서 건강식품이 과학적 근거보다는 마케팅에 의해 알려지게 된다는 것을 실감했는데, 아마도 장내세균기반 약제에 관심이 없는 의사라면 환자에게 포스트바이오틱스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올해부터 갑자기 광고되기 시작해서 환자들이 복용하고 오는 이 포스트바이오틱스 제품이 진짜 '포스트바이오틱스'에 합당한 것인지 한번 알아보자.
살아있는 균인 프로바이오틱스와는 달리 사균 혹은 세균의 대사물질 등을 포함하는 의미의 용어로 지금까지 postbiotics, paraprobiotics, non-viable probiotics, heat-killed probiotics, tyndalized probiotics 등이 다양하게 사용돼 왔기에 연구자들마저도 혼란스러웠다. 올해 ISAPP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 개념에 대해 논의한 결과 '포스트바이오틱스'가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판단해 선택하였으며, 네이처에 출간한 논문에서 포스트바이오틱스를 “복용 시 숙주에게 건강이익을 주는 생명력이 없는 미생물 혹은 그 미생물의 구성 성분을 포함하는 제형”이라고 정의했다. 기존의 postbiotics는 프로바이오틱스 대사산물이라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돼왔고 사균체에 대해서는 paraprobiotics라는 용어가 사용됐는데, 이를 하나의 용어로 통일한 것이다.
더불어 다음과 같이 포스트바이오틱스라고 분류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제시했다.
첫째, 포스트바이오틱스는 반드시 프로바이오틱스로부터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즉, 단순하게 프로바이오틱스를 사균화시킨 것을 포스트바이오틱스라고 할 수 없으며, 기존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프로바이오틱스 균주도 사균화시켰을 때 효과가 있어야 비로소 포스트바이오틱스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살아있을 때 프로바이오틱스에 해당되지 않았던 균주도 사균화했을 때 건강이익을 제공할 수 있으면 포스트바이오틱스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둘째, 단쇄지방산이나 박테리오신과 같은 미생물의 대사산물만 순수하게 분리한 것은 포스트바이오틱스가 아니다.
셋째, 미생물의 전체 또는 일부를 이용하는 백신 역시 일반적인 건강이익과는 다른 분명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포스트바이오틱스가 아니다.
넷째, 포스트바이오틱스의 건강이익은 반드시 건강이익의 대상이 되는 숙주에서 검증이 되어야 한다. 즉, 어떤 포스트바이오틱스가 인간의 건강에 좋다고 하려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포스트바이오틱스는 크게 세포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사균과 완전히 용해해 일부 구성 성분만을 사용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병원균 용해물을 사용해 면역자극을 시킴으로써 향후 해당 균에 의한 감염을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현재 호흡기질환의 예방 목적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바이오틱스가 기존 프로바이오틱스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사실 포스트바이오틱스가 건강이익을 가져오는 기전을 살펴보면 프로바이오틱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그림 1). 이미 기존 프로바이오틱스도 단쇄지방산 생산이나 대사 기능, 호르몬 분비, 위장관 상피세포벽 기능 강화, 면역반응 조절 등이 기전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물론 포스트바이오틱스에서는 세포벽의 peptidoglycan이나 특정 단백질 또는 효소와 같이 좀 더 구체적인 작용기전 물질이 강조된다. 이런 기전적인 측면보다는 살아있는 균인 프로바이오틱스가 가지는 제한점을 살아있지 않다는 특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포스트바이오틱스가 주목받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프로바이오틱스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 시점부터 유통기한까지 살아있는 균의 수(CFU)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계속 감소한다는 것인데 심한 경우 몇 배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프로바이오틱스의 효과가 어느 용량에서 나타나는지 말하기 어렵고 임상연구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된다.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균이기 때문에 균혈증 같은 안전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반면 사균인 포스트바이오틱스는 처음 제조시 투입 용량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감염의 문제가 없어 일관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보다 안전한 사용이 가능하다.
포스트바이오틱스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이자 특징은 사균화 방식에 따라 프로바이오틱스가 가지는 건강이익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차세대 프로바이오틱스로 주목받고 있는 Akkermanisa muciniphila를 들 수 있다. A. muciniphila는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거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대사질환 개선 기능을 나타내는데, 이 과정에 세포외막 단백질인 Amuc_1100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의 효과를 증명했던 2016년 동물실험에서 생균과 대조군으로 오토클레이브로 만든 사균을 사용해 생균이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고열 사균화가 아닌 70℃에서 30분간 노출시킨 저온살균(pasteurization)으로 만든 사균이 오히려 생균보다 더 효과가 좋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2019년 과체중·비만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사균의 효과가 우월함이 증명됐다(그림 2).
즉, 무조건 사균화시킨다고 해서 포스트바이오틱스라 할 수 없고 효과가 증명돼야 한다. 사균화 방식에 따라 효과 유무와 정도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균이더라도 어떤 방법이 사용됐는지, 그리고 그 방식의 사균화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포스트바이오틱스의 정의와 특징을 참고해서 온라인에서 광고되고 있는 제품들을 살펴보자. 유산균 대사산물 포함, OOO 박사의 XX년 연구로 배합한 제품, 해외 유명 OOO 회사의 균으로 만든 포스트바이오틱스 등 다양한 광고 문구가 있었지만 실제 그 제품에 포함된 특정 균주가 사균화됐을 때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또 대부분의 제품이 단지 배양물이나 사균체가 포함돼 있다는 것 뿐이지,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틱스가 모두 섞인 형태라 포스트바이오틱스가 가지는 안전성 등의 장점을 확실히 내세우기 어렵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 제품들의 표기 효능을 찾아보면 '결국 기존 프로바이오틱스와 동일한데 포스트바이오틱스를 왜 섞은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특정 용어가 마케팅에 먼저 사용되는 것은 제도상의 헛점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법상 프로바이오틱스까지는 규정돼 있으나 포스트바이오틱스가 무엇인지, 어떤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런 와중에 포스트바이오틱스라는 용어가 광고를 통해 먼저 알려지고 소비자들은 막연하게 더 좋은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포스트바이오틱스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외국에서도 아직 이에 대한 완전한 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비슷한 실정이다. 이미 100여년 이상 사균체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이나 면역조절제로 사균을 사용해 온 유럽은 사균에 대한 언급이나 안전성에 대해 관리하고 있지만, 과학적 엄밀함에서 보면 현재의 포스트바이오틱스 개념에 맞는 수준은 아니다.
건강식품은 약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료비용만큼 돈을 쓰고 있는 엄청난 시장이다. 건강증진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충실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단지 유행이나 마케팅 차원이 아닌 근거에 기반한 제품들이 적절한 수준으로 개발, 판매돼야 할 것이다. 특히 향후 프로바이오틱스와 달리 약제 수준의 장내세균 기반 약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은 포스트바이오틱스에 대해서 규제 당국은 서둘러 규정을 만들고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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