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의료계-정부 간 협상은 '기울어진 운동장'
지난 주 편에 언급했던 대로, 내년도 수가협상에서 대한의사협회는 건강보험공단과의 협상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수가협상 과정은 보험 가입자들을 대표하는 건강보험공단이 인상폭과 인상률을 정해 주고, 그에 대해 공급자인 각 의약단체들이 협상을 진행하게끔 돼있다. 그런데 이 협상 과정이 결렬되면, 결정권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로 넘어간다.
그리고 건정심은 협상을 거부한 단체에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물어 0.1% 등의 페널티를 추가로 적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건정심을 구성하는 공익위원들인데, 총 8명의 공익위원은 모두 정부 인사들과 이들이 추천한 정부 산하 단체 출신 인사로 구성된다. 이렇게 협상 과정과 건정심의 구조가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결정이 정부의 의도대로 내려지게 돼있다.
그러므로 각 의약단체들은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인상률을 거절할 수 없고, 반드시 타결을 해야만 한다. 애초에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협상, 거절을 하면 페널티를 받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다. 요식 행위일 뿐이다. 이런 요식 행위로 오랫동안 수가를 결정해 왔기 때문에 그 유명한 ‘저수가’문제가 탄생한 것이다.
올해 의협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시받은 수가 인상률은 2.9% 였다. 의협은 2년 연속 2%대의 수가 인상률을 제시 받았고, 이는 그 이전 3년간 3%대의 인상률보다도 낮다. 2년 전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했던 ‘수가 정상화’ 약속은 보란 듯이 무시된 것이다.
이런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은 유독 의료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억울하고 불합리한 과정의 최종 피해자가 어디 의료인들 뿐일까.
6년 전, 산부인과에서 ‘분만 무과실 사고 30% 책임제’라는 법안이 통과됐고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특정 사고에서 과실이 전혀 없는데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사적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법안이 그 어떤 여론의 힘도, 의문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됐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들과 의사 단체들이 집단으로 반발했지만 철저히 무시됐다.
이 법안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던 분만병원들의 등을 떠밀고,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결국 유명 분만 병원들까지 속속 문을 닫고 있고, 분만 취약지는 전국적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의료계 홀대와 무시는 비단 의료인들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그 의료인들이 직접 진료를 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피해가 닿을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