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전공의 대거 사직 사태 등을 계기로 전공의가 없어도 진료 차질이 없도록 전문의 중심병원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재정적 투자와 대대적인 제도 개혁이 필수인데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상급종합병원(상종)의 전공의 비율은 33%~46%다. 비율로만 따져도 병원별 전체 의사 수의 최대 절반에 달하지만, 전공의들이 주 88시간, 연속근무 36시간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상종의 전공의 의존도는 그 이상이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대다수의 전공의들의 현장을 떠나면서 수련병원들은 수술, 진료가 줄며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사태가 지속될 경우 조만간 도산하는 병원들이 쏟아질 거란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정책 속도…전공의 완전한 ‘피교육자’로 인정해야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문의 중심병원 구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지난달 25일 전문의 중심병원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를 가졌고, 지난 17일까지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 상한을 현행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단축하는 시범사업에 대한 참여 기관 접수 신청을 마쳤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전공의 의존도가 줄어드는 만큼, 그 공백을 누군가는 메꿔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갈 재원에 대해선 구체적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는 “전공의 중심병원은 가야 하는 미래다.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에도 찬성한다. 대신 그 공백을 메꿀 전문의들을 위한 인건비는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며 “정부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에 전공의 TO(정원)를 더 주겠다고 하는데, 있지도 않은 전공의 TO를 더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의 중심병원은 단순히 숫자로 얘기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과 환자들에게 숙련된 전문의의 치료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고, 이를 위해선 전공의를 (근로자가 아닌) 완전한 피교육자로 인정해야 한다”며 “그럴려면 전공의와 관련된 교육·행정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하겠단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병원이 전공의 인건비를 아껴 전문의나 간호사에 투자할 수 있다”고 했다.
배 교수는 “지금 정부가 하려는 정책은 전공의 대비 전문의 비율을 늘리되, 들어가는 재원은 상급종합병원 평가 등을 통한 지원금 내에서 병원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어텐딩 닥터 등 개선할 제도 산적…전공의협 “정부, PA 중심병원 만들 생각”
전문의 중심병원을 현실화하기에는 제도적인 ‘족쇄’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다른 나라에서 전공의가 파업을 해도 병원이 돌아가는 건 전공의 공백을 커버할 의사들이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병원 소속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수술방을 이용하거나 외래를 볼 수 있는 어탠딩 닥터(Attending Doctor)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형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채우려면 동네 전문의들도 그런 병원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라며 “우리나라는 겸직 금지 등 족쇄가 너무 많아서 전문의 위주로 가겠다는 건 (지금으로선) 꿈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전문의를 추가 채용하려면 결국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행정 관련 직원도 더 채용해야 한다. 그걸 지금의 값싼 수가 구조 하에서 병원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대학병원 외래환자 중 1차 진료로도 충분한 60~70%만 줄이면 더 적은 수의 전문의만 늘려도 되겠지만 이 역시 전공의를 줄이면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덧붙였다.
전문의 중심 병원을 주장하고 있는 전공의들도 정부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 공백을 전문의가 아닌 진료지원인력(PA)로 메꾸려 한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정부 관계자가 내년에 병원당 전문의 2명을 더 고용하겠다고 말한 한 언론의 보도 내용을 공유했다.
박 위원장은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만 800여 명이다. 병원당 전문의를 2명 더 뽑아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라며 “정부는 전문의 인력 채용 강화 등에 대한 구체적 재원이나 정책은 내놓지 않고, 오히려 진료지원인력(PA)을 확대하는 등 앞장서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전문의 중심 병원이 아닌 PA 중심의 병원을 구축하려는 건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