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현재 군의관 복무기간 단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제도는 서로 얽혀 있다. 부족한 공중보건의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군의관 제도 개편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동안 일반 사병의 복무기간이 18개월로 크게 단축되면서 군의관 의무복무기간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다. 복무기간 논의와 병행해 지금의 우리나라 군의관 제도가 과연 현대전에 적합한 제도인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군은 모든 군의관을 법률상 의사로만 충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을 비롯한 나토(NATO) 회원국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험은 전투 초기 생존율을 결정하는 요소가 의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응급처치 능력과 후송 체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달리 표현하면 전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특화된 대대급 의료책임자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대대급 의료부대를 운영하기 위해 미국은 PA(Physician Assistant)를, 영국은 전투 의무기사(Combat Medical Technician·CMT)를, 프랑스는 훈련된 간호사(Infirmier Militaire)를 배치해 나토의 표준화된 전투 상황 의료 역할 4단계 중 첫 단계(Role 1)를 담당하게 한다. 선진국은 전투 상황에 최적화된 의무 인력을 양성해 직업군인으로 운영한다.
군의관이라면 반드시 전투 상황에 부합하는 처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별 군의관의 교육 배경은 다양하고, 단 한 명의 대대급 군의관이 전투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도 미지수다. 의사가 전투 상황에 대한 직무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전투 상황에 최적화된 장기복무자를 대대급에 배치하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나토 등 군사 강국, 특화된 의무병의 전투 현장 배치…응급처치·후송 능력이 최대 관건
전쟁이 나면 군인 부상자뿐 아니라 민간인 피해자까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즉 의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데, 전투 상황에 능한 전투 전문 의무요원은 현장에서 의사 공백을 막아준다. 의사는 병원 단위에서 전문진료를 하는 것이 의료 효율성 측면에서도 높다.
의사인 군의관을 대대 단위까지 배치하는 것은 최적의 의료인력 운용 방식이 아니다. 현대전은 의사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병사는 의사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대응이 늦어져 사망한다는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
미 육군 합동외상체계(Joint Trauma System)의 전투 손상 분석 결과, 예방 가능한 사망은 대부분 대량 출혈, 기도 폐쇄, 긴장성 기흉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두 전투 의무병(Combat Medic)이 즉시 개입해 처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현대 전장의 핵심은 의사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가 아니라 현장 처치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지는가다.
이런 이유로 미 육군은 대대 규모의 의무체계에서 전투 의무병(Combat Medic), PA, 대대 군의관(Battalion Surgeon) 등 다양한 전투 의료 직군이 역할을 분담하도록 한다. 여기서 대대 군의관은 반드시 의사인 것은 아니다. 전투 상황에서 실제 최초 진료는 대부분 응급구조사 자격을 갖춘 전투 의무병이 시행한다. PA는 진단, 처방, 봉합, 후송 결정 등 대부분의 야전 진료를 수행한다. 군의관은 의료 감독과 고난도 진료, 의무계획 등에 집중한다. 전투 상황에서 대대급 의료체계를 의사인 군의관 한 명이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영국군에서는 전투 의무기사(Combat Medical Technician) 인력이 대대급 의료의 핵심이다. 의사는 나토 표준상 상위 단계의 의료시설에서 전문진료를 담당한다. 프랑스는 대대급에서 군 간호장교(Infirmier Militaire)가 의료를 담당하고, 군의관은 상위 의료시설에 집중한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나토 회원국의 공통점은 모든 대대에 의사를 배치하기보다 현장 의료 역량, 후송 체계, 의료 감독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대대급 의료책임자의 업무를 분석하면 응급처치 지도, 의무병 교육, 건강관리와 예방의학, 후송 판단과 응급진료가 대부분이다. 반면 복잡한 수술, 중환자의학, 고난도 전문진료는 상급 의료시설에서 이뤄진다.
대대급 업무에는 반드시 의사만 수행해야 하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가 혼재한다. 업무를 기능별로 재설계하면 일정 범위는 충분한 교육과 자격을 갖춘 전투 의료 전문인력이 담당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군의관은 곧 의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군 의료책임자(Military Medical Officer)라는 의무관 개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대대급 의료책임자는 전투 외상에 대한 전문훈련을 받은 인력이 담당하고, 의사는 여단급 이상 의료시설에서 손상통제수술을 수행하는 Role 2에 집중하는 것이 현대 군 의료체계의 방향에 부합한다.
그런데 Role 2 군의관이 평시에 환자가 거의 없는 야전부대에서만 근무하면 숙련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역량과 경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토 회원국들은 군 의료요원이 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유지하고, 필요할 때 야전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영국의 경우에는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국방부 간 협력체계를 통해 군 의료진이 민간병원에서도 임상 경험을 유지하는 제도를 운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으나, 군 병원이 민간 의사를 고용할 때 발생하는 심각한 급여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
복무기간·군의관 자격, 재래 방식 고수에서 벗어나 실전 상황에 맞게 개편해야
군 의료체계가 직책 중심에서 전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역할 중심(Role-based Medical System)으로 변모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제도는 의사인 군의관 부족 완화, 전투 응급 역량 강화, 전문의의 효율적 활용, 의사 인력의 국가적 효율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이 현재 나토 수준의 현대화된 군 의료체계다.
우리나라에서 대대급 군의관은 의사여야 한다는 전통적이고 자격 중심적인 개념은 국제적인 군 의료체계의 발전 방향과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다. Role 1에 의료인력을 배치하는 데에도 낭비적 요소가 보인다. 전시 상황에서 의사의 직무는 Role 2 이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시에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군의관, 특히 외과계·마취과·응급의학과 군의관이 필요하다. 군의관 복무에는 평상시의 유연한 근무체계와 전시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는 체계의 설계 및 훈련이 필요하다.
군과 민간의 협력을 통해 군의관의 역량을 고도화하는 과제는 평시 의사 부족 문제 해결, 전시 대응 역량 강화, 전투 시 예방 가능한 사망자 감소, 국가비상사태 시 의료인력 확보,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
평시와 전투, 국가재난에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고역량 군의관을 양성하는 일은 틀에 박힌 형식주의를 버리고 민·군 간 고도의 협치가 필요한 매우 어려운 과제다. 동시에 우리나라 의료가 안고 있는 큰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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