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안에서 ‘찬반신세’를 당했던 의료계는 일찍부터 보건부와 복지부 분리를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효율화'를 강조하는 기획재정부 출신의 경제 관료가 후보자로 임명되며 새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의료계와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 장관 후보자에 오르지 못한 점이 굉장히 아쉽다”며 “전 정부의 문재인 케어로 발생한 부작용이 큰 만큼 이를 해결할 새 정권의 복지부 장관은 의료 전문가 출신은 아니더라도 의료계와 소통이 잘 되는 인사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정부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 배경에는 의사 등 의료 전문가를 정책에서 배제한 데 있다고 본다”며 “문외한인 새로운 장관이 전문적 소양이 필요한 의료계 문제에 맥을 잘 짚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또 복지부의 카운터 파트너인 의료계와 신뢰를 쌓는 일도 단기간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의료계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의료 전문가들을 선거 캠프에 대거 기용해 의료계 친화적인 공약을 내세웠고, 의료계도 이에 화답해 지역 의사회를 중심으로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후 첫 번째 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을 지명하며, 의료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정 후보자가 ‘아빠 찬스’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의료계는 대국민 여론과 관계없이 정 후보자를 옹호하며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 임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윤 정부는 다시 약사 출신의 전 국회의원 김승희 후보자를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국회의원 시절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약한 것은 물론 식약처장까지 지낸 인물로 의료계와 소통에서 무리가 없는 인사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승희 후보마저 각종 논란으로 사퇴하며 복지부 장관석은 장기간의 공백으로 방치상태에 놓였다.
윤 대통령도 더 이상 임명을 늦출 수 없다는 위기감에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안전한 인사를 고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조규홍 후보자가 낙점됐다.
조규홍 후보자가 의료계의 우려를 기대로 바꾸려면 첫째, 의료계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전 정부는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해 의료계와 갈등을 벌였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부터 비급여 진료비 공개 등 의료 당사자를 배제한 정책은 추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켰고, 실제 적용 후에도 소모적인 갈등과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의 복지부 장관은 일회성에 그친 보건의료 현안에 대해 전문가 간담회를 넘어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할 거버넌스를 통해 보건의료의 당사자이자 전문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둘째, 재정건전성 확보를 바탕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재부 출신인 조규홍 장관은 일명 ‘예산통’으로 불린다. 이에 현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건정성 확보를 위한 건보재정 개혁에 앞장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 예산의 긴축 재정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간 보건의료 예산은 복지부 안에서도 파이가 작아 항상 부족한 재정 안에서 나눠먹기식 지원이 이뤄지곤 했다. 사실 이러한 정책 기조가 지금의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새 복지부 장관은 불필요한 재정 누수를 줄여야 할 뿐, 꼭 필요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포퓰리즘적인 단기 정책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앞선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포퓰리즘식 퍼주기 정책을 펼쳐 건보재정 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래 정부 취임 초에는 호혜성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나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 과제 앞에서 불필요한 재정 낭비는 금물이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비 폭탄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큰 그림을 그려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며칠 뒤 인사청문회에 오르는 조규홍 후보자가 전 정부의 과오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의료계의 우려는 기대감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조 후보자가 경제 관료 출신이라는 편견을 넘어서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