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제3상 임상시험에서 사전에 설정한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한 무릎 골관절염 줄기세포치료제에 대해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로 품목허가를 반려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약사법이 의약품 품목허가 요건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규정하고 있을 뿐, 이미 허가된 의약품보다 치료효과가 우월해야 한다는 조건은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품목허가와 건강보험 급여는 성격이 다른 만큼 비용효과성이나 기존 치료제와의 상대적 우월성을 허가 단계에서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도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사 A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의약품 제조판매 품목허가신청 반려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식약처의 품목허가 거부처분을 취소하고 소송비용도 식약처가 부담하도록 했다.
제3상까지 마쳤지만 두 차례 허가 반려…법원 “임상적 유의성, 식약처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 없어”
A사는 중증 무릎 퇴행성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자가 유래 줄기세포치료제를 개발했다. 환자의 지방조직에서 기질세포를 분리·배양한 뒤 무릎 관절강에 주사해 통증을 줄이고 관절 기능을 개선하는 치료제다.
A사는 식약처 승인을 받아 제3상 임상시험까지 마친 뒤 제조판매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무릎 통증 감소와 관절 기능 개선 효과가 대조약과 비교해 임상적 유의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자료 보완을 요구했다. 이후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추가 자료로도 임상적 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A사는 이의신청이 기각된 이후 다시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두 번째 신청 역시 같은 취지로 반려했다. 이에 A사는 두 번째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식약처는 최초 거부처분이 이미 확정됐기 때문에 재신청 과정에서는 새로 제출된 자료만 심사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상적 유의성’은 관계 법령에 구체적인 의미가 정해지지 않은 불확정개념으로, 식약처의 판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제시한 평가 요소를 토대로 법원이 객관적·규범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재신청 시 기존 심사자료 이외의 자료만 검토할 수 있도록 한 식약처 고시도 법원의 심판 범위를 제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해당 고시가 일반 국민이 아닌 식약처장을 대상으로 한 내부 업무처리지침에 불과하며, 이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처분의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자료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추가 자료만 심사하는 것은 행정청의 업무편의를 추구하는 것일 뿐, 종합적인 가치판단이 필요한 임상적 유의성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계적 유의성 인정됐는데 기존 치료제보다 우월하지 않다며 거부는 영업의 자유 제한”
법원은 식약처 심의 과정에서도 제3상 임상시험 결과의 통계적 유의성 자체에는 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고 봤다.
다만 일부 위원이 시험약과 대조약의 점수 차이가 작고, 이미 허가된 히알루론산이나 스테로이드보다 효과가 뛰어나지 않으므로 시판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후 다수 위원이 이에 동의하면서 식약처는 임상적 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사실상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우월해야 임상적 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제3상 임상시험에서 사전에 설정된 통계분석계획에 따라 유의성이 입증됐다면 임상적 유의성을 인정하는 것이 관련 규정의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약사법은 품목허가의 요건으로 안전성과 유효성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기존에 시판 중인 의약품보다 치료효과가 우월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존 의약품보다 우월한 제품만 신규 허가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기존 의약품을 보호하고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게 되므로, 이처럼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품목허가 단계와 건강보험 급여 결정 단계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급여 결정에서는 치료효과나 비용효과성을 고려할 수 있지만, 약사법상 품목허가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절차라는 것이다.
법원은 식약처가 법적 근거 없이 ‘임상적 유의성’이라는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기존 의약품을 보호하고 신규 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실제 의약품 시장에는 치료효과가 비슷한 여러 제품이 함께 판매되고 있는 만큼, 일부 의약품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우월성을 요구했다면 평등원칙과 행정의 자기구속 원칙에 어긋나 재량권 일탈·남용에도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경쟁 치료제 개발사 대표가 심의 참여도 문제 지적
법원은 최초 품목허가 심의위원회의 위원 구성과 심사 과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기존 치료제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위원은 대학 의과대학 교수이자 다른 줄기세포치료제 개발 벤처회사의 대표이사였다.
법원은 해당 위원이 A사와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었다며 A사 제품의 시판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심의에는 해당 위원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식약처 소속 공무원들이 첫 심의 결과가 타당하다는 전제에서 추가 자료만으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해 심의 범위를 제한하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제3상 임상시험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됐음에도 기존 치료제 대비 우월성이 없다는 이유로 임상적 유의성을 부정한 것은 잘못된 법령 해석이라며 식약처의 두 번째 품목허가 반려처분을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