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극심한 통증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입원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진통제만 처방했다면?
환자는 2012년 6월 H병원 소화기내과 전문의 B씨로부터 위장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위장에서는 염증이, 대장에서는 치질과 게실이 각각 발견됐다.
그러자 B씨는 약물 처방을 하고, 1주 후에 경과를 관찰하기로 하고 귀가시켰다.
환자는 이틀 뒤 점심을 먹은 후부터 심한 복통과 구토 증상을 호소하며 H병원에 다시 내원했는데 당시 체온이 37.4°C였으며, 의료진은 간단한 혈액검사, 단순 복부 X선 검사를 한 후 오후 6시 입원시켰다.
환자는 다음 날 아침까지 극심한 복통 및 고열을 호소하자, 의료진은 복부 CT 검사를 시행했고, 검사 결과 S자 결장 천공과 그로 인한 복막염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오후 1시 40분 경 응급수술을 시행했는데, 오후 8시 26분 경부터 의식이 저하되고 맥박이 분당 14회로 떨어지면서 심전도 상에 심실세동을 보였다.
이에 의료진은 전기충격과 심장마사지 등의 심폐소생술을 시행, 혈압과 심박동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환자는 뇌기능이 회복되지 않았고, 2년여 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그러자 환자 보호자들은 "B씨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할 당시 주변 조직이 손상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지만 이를 위반해 S자 결장 천공과 그로 인한 복막염, 패혈증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또 보호자들은 내시경 검사후 환자에게 심한 복통과 고열이 발생했고, 복부 X선 검사에서 장 천공을 시사하는 유리공기음영이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소변검사에서 염증질환이 의심됐지만 의료진이 진통제만 투여했을 뿐 정확한 진단을 위한 복부초음파, 복부 CT 검사 등을 시행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 법원은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그러나 대법원은 최근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내시경 검사 후 재입원할 당시 혈액검사 등에서 대장 천공 및 복막염이 발생했다고 확실할 만한 검사수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직의 등은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압통, 반발통, 복부 강직 여부 등에 대한 이학적 검사를 실시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직의 등 의사가 직접 진찰을 하지 않아 보호자가 항의했던 것으로 보이고, 재입원한 다음날 오전 3시 15분 경 의사가 전화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의사는 환자가 입원 당일 야간과 새벽에 극심한 통증을 계속 호소했지만 이학적 검사 등을 통해 신중하고 정확하게 진찰, 진단하지 않은 채 만연히 진통제만 처방했다"면서 "이는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CT 검사 결과와 수술에 의해 확인된 천공의 길이, 복강 내에 퍼진 장 내용물의 양, 농양 및 염증 등에 따르면 입원 당일 야간 혹은 다음날 새벽에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해 이학적 검사를 실시했다면 조기에 CT 검사를 실시하고 천공을 발견했을 여지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H병원 의료진이 극심한 복통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환자에 대한 경과관찰 등의 의료조치를 소홀히 함으로써 신속하게 CT 검사를 실시하지 않아 결장 천공 등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수술 등의 조치를 지연한 과실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의료과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