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정부가 의대증원 2000명 추진 근거 자료로 참고한 의사인력 추계 연구자 3인은 의대증원 필요성은 공감해도 2000명 증원을 주장하지 않았다며, 지불제도 개편 등 의료개혁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의사 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는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명예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박사 등 의사인력 추계 연구자 3인과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가 참석했다.
"의대증원 필요하지만, 점진적 확대 등 완급 조절 필요…의료정책 개혁 선행돼야"
이날 의사인력 추계 연구자 3인은 의대증원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일부 시나리오만 활용해 2000명을 증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는 가장 합리적인 증원 규모는 500~1000명이라며, 2000명 증원이 적절하다고 언급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 교수는 "의사 추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구 구성의 변화와 이에 따른 의료 수요 변화다.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추계가 이뤄져야 한다"며 "저의 추계에 따르면 2045~2050년까지는 의사가 부족해지고, 이후에는 다시 늘어난다. 보고서에서 500명, 750명, 1500명 등 지역별로 분석한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이 추계 중에는 정부가 발표한 양과 근접한 연구도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모두를 만족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제 보고서를 인용해 이를 근거로 2000명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결론 부분을 보면 500~1000명 증원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2000명이 적절한 의사인력 증가라고 쓴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KDI 권정현 박사는 "제 연구가 호도되는 방식으로 인용되고 있어 명확히 하려고 한다"며 "그동안 의료 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반해 공급이 지속해서 통제됐다. 이에 의료체계에는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권 박사는 "연구를 보면 2024년부터 1000명씩 늘려 4000명을 증원하는 방식이 있고, 첫해에 150명, 다음 해에 210명 등 매년 약 5%씩 늘려 2030년까지 약 4500명을 증원하는 방식이 있다. 또 7%, 10%씩 점진적으로 증원하는 안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이용했다"며 "그중에서 어떤 시계를 기준으로 하면 부족한 인력을 충당할 수 있는지 판단했고, 매해 5~7%씩 증원해 인력을 확충하자는 안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명예위원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때마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밀렸다"며 의대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5년간 2000명씩 증원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영석 위원은 "정부는 한 해에 2000명씩 늘리는 걸 5년간 지속하고 5년 후에 다시 판단해 조절하겠다고 한다. 차라리 10년을 기준으로 한 해에 1000명씩 증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호흡을 길게 가지고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들은 과다한 의사수 추계는 '의료 개혁의 부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윤철 교수는 "의사 수 늘려 공급하는 것이 과연 지역의료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다"며 "지역간 격차를 이해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지 않고 의사 수 추계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현재 의사인력 추계는 의료 개혁이 없기 때문에 과도한 값이 도출된다"며 "의료 개혁 없이 일방적으로 몇 명을 늘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권정현 박사는 "의사인력 추계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 서비스 수요에 대한 예측이다. 다만 추계는 미래 의료 이용을 전망해 진행하는 만큼 미래가 얼마나 달라지는지에 따라 정확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연구자와 정부의 시계는 다르다"고 밝혔다.
권 박사는 "정부는 연구자와 다르게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반할 수 있다"며 "제가 점진적인 증원을 주장한 것은 한 번에 큰 수의 증원을 시행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교육·수련 현장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정책 지원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신영석 명예위원은 '과다 추계' 용어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은 "현재 발표된 연구보고서는 기존 의료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가정에서 추계했다. 정책 변화에 따라 의사 인력은 부족할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다"며 "일관되게 많은 숫자를 추계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의사 수 확대 이전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구축, 행위별 수가 개편 필요
이날 연구자들은 의료서비스 제공과 지불보상 등 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의료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행위별수가제를 가치기반 보상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연구자들은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행위별수가제를 개편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만큼 '혁신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홍윤철 교수는 "의료체계는 환자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며 "의료자원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만들면 지역의 의료수준은 달라질 것이다. 의료 서비스 공급 체계가 변해야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네트워크 중심,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를 구축하려면 수가체계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필수의료 기피를 타계하기 위해서도 행위별수가제는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 모두 행위별수가제를 적용받는다. 그러면 의사들은 수입이 높은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은 나라다. 이 때문에 행위에 따라 수가를 받는 소아과와 산부인과 등의 수입은 점점 더 줄어든다. 결국 의사들은 소아과 등 필수의료 진료과에 지원하지 않고, 필수의료는 망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현재 수가체계는 전체 총량이 정해져 있어 행위를 많이 하면 결국 수가 단가는 낮아진다. 의료계는 수가가 낮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행위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행위별수가제의 문제"라며 "의사는 끊임없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수입은 늘지 않아 불만을 가진다. 이 때문에 가치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영석 명예위원은 "상대가치를 기반으로 한 행위별수가제는 진료 빈도와 관련이 있다.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은 과는 수입이 줄 수밖에 없다"며 "필수 진료과는 한밤중에도 (환자를 보러) 가야 하는 과다. 이런 과들은 상대적으로 (진료) 빈도가 적다. 상대가치를 기반으로 수가가 결정되고 보상이 안 되면 종사자는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구조적으로 이런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데 이번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서 세부적으로 다 정리하지 않았다. 다만 보상 방향성과 관련한 내용을 담았다. 또 10조원 등 예산 투입에 대한 정부 발표가 있었는데 이를 조금 더 지켜보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 위원은 "이번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는 혁신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일부는 세부화되지 않아 아쉽다. 이를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은 논의를 진행한지 20년이 넘었다. 당장 결론을 내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중지를 모아 방향을 제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안정적인 지역의료 체계 구축을 위해 증원된 의대 정원은 지역의대에 집중해야 한다며, 지역 특례제도 의무화를 주장했다.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훌륭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오주환 교수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중 인력 확충을 제외한 2, 3, 4번 항목을 살펴보면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몇 가지 수정하면이는 훌륭한 정책이고, 방향성은 좋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대증원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 강으로 대립하면서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다. 이에 정부와 의료계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현재 의사 수 문제에 과잉 충돌이 있어 차분하게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며 "의료계는 500~1000명 정도 범위로 양보하고, 정부도 한발 양보해야 한다. 그리고 2~4차례에 걸쳐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직한 전공의 돌아와야…기형적 병원 시스템 개편 필요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직한 전공의들은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영석 명예위원은 "이번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은 오랜 역사가 있다. 앞서 의약분업 이후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는 낮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앉아도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면 답을 찾을 수 있다"며 "현재 정부와 의료계가 논의하고 있는 것의 밑바탕에는 국민과 환자가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우선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는 복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복귀해 환자를 치료하고 다시 논의하면 정부 역시 훨씬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전공의는 피교육자 신분이지만 병원에 의해 근로자 신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의료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 전공의가 미래에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순차적인 과정을 거쳐 빠른 시일 내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의대증원과 관련해 타협 없음을 선언한 정부를 어떻게 신뢰하고 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오주환 교수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반발 속도가 너무 빨라 국민이 (이들의 반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발 양보하고 체계적으로 반박한 뒤에도 납득이 안 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면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발표 직후 즉각 대응해 설득력 있는 주장의 수용성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홍윤철 교수는 병원의 전공의 의존 탈피에 대해서는 "전공의는 피교육생이다. 병원이 전공의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 많아도 20%를 넘기면 안 된다"며 "이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전공의에 대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면 병원은 그 지원금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