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가 '전화상담'을 포함한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을 제안하자 수용 여부를 두고 한 달 넘게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의사협회의 기본 입장은 ‘전화상담과 원격의료는 별개’라는 것을 보건복지부가 확인해 줘야 시범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를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올해 하반기 동네의원의 신청을 받아 ‘만성질환 관리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보고했다.
고령화와 생활습관 변화로 인해 고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전체 진료비 54조 5천억원의 35%에 달하는 19조 4천억원이 만성질환에 투입됐다.
문제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경증 만성질환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에도 환자 상당수가 대형병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고혈압환자 7만여명, 당뇨환자 15만여명 등 총 22만 4천여명이 상급종합병원 외래를 이용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환자의 상태를 잘 아는 동네의원 의사가 만성질환자를 교육, 상담, 통합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 본사업에 앞서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다.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은 의사가 대면진료를 통해 만성질환자의 건강 상태를 평가해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대면진료 사이에 주기적으로 혈압, 혈당 정보를 관찰하고 필요하면 전화상담을 실시하는 방식이다.
대상자는 고혈압‧당뇨 재진환자이며,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원이 계획수립‧교육(수가 월 1회 인정, 9270원), 지속적 관찰(주 1회 이상, 월 1만 520원), 전화 상담(최대 월 2회 인정, 회당 7510원) 등을 하면 월 평균 2만 7300원, 최대 3만 4810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논란의 핵심은 전화 상담이다.
보건복지부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시행하기 위한 전단계로 전화 상담을 포함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와 마찬가지로 처방전을 발행하지만 전화 상담은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놓고 의사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의사협회도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18일 “의사들은 정부가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을 원격의료 시행 명분으로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면서 “복지부가 명확하게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화 상담과 원격의료는 별개라는 것을 복지부가 확인해야 시범사업에 참여할 명분이 있다는 게 의사협회의 기본 입장이다.
그렇다고 의협이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달부터 2년 만에 의정협의를 재개했다.
아직 의정협의 안건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의협은 의제로 ▲65세 이상 노인 외래정액제 개선 ▲일차의료 활성화 ▲의료전달체계 강화 ▲의사 면허자격정지처분 5년 시효제도 도입에 따른 리베이트 행정처분 신중 ▲자율징계권 보장 ▲진찰료 개선 ▲요양급여심사기준 공개와 관련한 제도 개선 ▲건보공단 현지확인 지침 준수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의사인력 확충 보상방안 마련 ▲부당청구 관련 행정처분기준 개선 등을 제안한 상태다.
의료계 핵심 현안을 다룰 의정협의가 이제 막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시범사업 불참을 공식 선언할 경우 기껏 차린 밥상을 엎어버릴 수 있다는 게 부담이다.
김주현 대변인은 “중요한 것은 회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라면서 “시범사업 참여 여부를 서둘러 결정하기보다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