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지난 2월 20일부터 사직서 제출과 수련병원 이탈을 시작한 가운데, 전공의 대다수는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을 방침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3월 4일부터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따른 면허정지 행정처분 등의 엄정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오히려 사태는 더 악화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전공의들의 의료 공백을 메우던 전임의(펠로우), 임상강사, 임상조교수 등 전문의를 딴지 몇 년이 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의사들도 3월부터 사직서를 이미 제출했거나, 사직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교수가 외래는 물론 입원환자 진료, 그리고 당직까지 모두 떠안아야 한다. 대다수 수련병원은 물론 전공의와 전임의 비중이 높은 빅5병원은 이대론 2주 이상 버티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2월 29일 오후 5시 기준 100개 수련병원의 565명의 전공의가 병원으로 복귀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기준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945명(71.8%)에 달했다.
전임의 상당수 3월 계약 안하거나 3월 이후 전공의 미복귀 시 사직 고려
4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병원 A임상강사는 "전공의들의 대응에 따라 계약 포기를 결정한 전임의들이 상당하다. 사직을 고민하는 젊은 교수들도 생기고 있다"며 "원래 맡고 있던 환자들이 있다보니 무작정 병원을 빠져 나가기는 힘들단 의견도 있지만, 나 역시 3월 안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땐 정말 병원을 사직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동료 임상강사 중에서는 2월 말까지 정규 근무를 마치고 3월 1일부로 사직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1년 계약이기 때문에 특별히 계약상 문제는 없다"라며 "이제 막 전문의를 딴 전공의 4년차도 전임의에 지원할 뜻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다보니, 3월이 되면 당직을 설 의사가 없어져 병원에 남은 일부 전임의나 젊은 교수들만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 대학병원 B임상조교수는 "전임의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전공의가 빠진 자리에 중견 교수들까지 업무 공백을 메우서 과도한 업무로 힘겨워하고 있다"라며 "교수들까지 이대론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전공의가 적은 병원들이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다. 전공의가 많은 병원은 그만큼 교수 수도 많기 때문"이라며 "전공의 수가 적은 병원들은 얼마 없던 전공의마저 현장을 떠나다보니 언제,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는 응급실을 교수가 지키는 일도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살얼음판이거나, 남은 인력을 갈아넣어 겨우 연명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주당 80시간 살인적인 근무를 해왔는데 여기에 대한 공백을 메우고 정부가 말하는 전문의 중심 진료가 되려면 현재보다 두 배의 전문의 채용이 필요하다"며 "이대로 전공의들이 빠진 현장에서 전문의들이 두 배로 일하며 버티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수들도 사직 만지작...이기적인 의료카르텔로 몰아가는 정부, 오히려 사직 물결 유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사들을 악마화하고 의사와 환자 사이 불신을 조장한 정부에 대한 원성도 거세다.
C대학병원 교수는 "병원에서는 전임의에 이어 전문의들도 병원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라며 "초반에 전공의 사직 러시가 발생할 때만해도 정부와 원만히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전공의들은 돌아올 생각을 않고 전임의는 물론 교수들까지 업무 부담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행정처분과 형사고발 등 처벌조치로 전공의들을 협박하며 복귀를 명령하면서 전공의들의 반발심이 더 커져 버렸다"며 "그간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필수 진료과에서 사직서를 던졌던 전공의들마저 이제 진심으로 필수과 전문의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있다. 다른 병원으로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3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전날 응급실을 그만둔 한 전문의의 사연을 소개하며 "그는 지난 세월 응급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이젠 더 이상 환자나 보호자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가 돈을 더 벌기 원한것도 아니고 편한 것을 바란것도 아닌데 이기적인 의료카르텔로 몰아가는 정부와 악플러들이 너무나도 밉고 두려워져서 그만뒀고, 밤새 울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공의들은 이미 정부가 준 '빨간 약'을 먹고 혼돈스럽고 고통스러운 의료계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들이 생각했던 의사로서의 삶이 부정당하고 가치가 훼손돼 버렸다. 설령 정부가 어떤 겁박으로 그들을 현장에 다시 데려다 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들의 희망과 의지는 사라져 버렸다"라고 했다.
이어 "의사들이 지금껏 힘들지만 현장에 버텨왔던 이유는 장래의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할 것이 없어졌고 결국은 현장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전공의 뿐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전임의, 봉직의, 개원의, 교수들의 사직 물결도 마찬가지"라며 정부에 의사들 탄압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생각해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