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 친구 사이인 노인 두분이 함께 내원했다. 두분은 웃으며 병원 문을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그렇지 않았다. 엇비슷한 진료을 받았지만 본인부담금이 3배나 차이난 게 화근이었다.
친구보다 진료비를 3배 더 많이 낸 환자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 75세 최모 할아버지. 최 할아버지는 우리 병원이 친절하게 진료한다는 소문을 듣고 고혈압 환자인 김모 할아버지와 처음 내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진료를 다 보고 돌아가는 최 할아버지의 표정은 여간 개운치 않다. 괜히 비싼 병원에 왔다는 표정이다. 열어둔 진료실 문 사이로 진료비를 계산하면서 두 분이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최 할아버지 "잘해서 더 받는가 보구먼. 이전 병원에서는 1500원만 냈는데 여긴 4500원 받는다네"
김 할아버지 "난 1500원 냈는데. 자네는 뭐 다른(진료) 걸 더 받은 거 아니야?"
최 할아버지 "몰러~ 혈당검사 때문에 그런다는 구먼"
난 분명히!! 최 할아버지에게 왜 본인부담금이 4500원인지 설명했다.
그러나 최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마치 안내도 될 진료비를 낸 것처럼 불만을 늘어놓았다.
이게 다 65세 이상 노인본인부담정액제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와 최 할아버지는 모두 초진료 1만 4000원이 기본으로 붙고, 최 할아버에게는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슈가스틱을 추가했을 뿐이다.
슈가스틱 970원에 가산율 146원이 더해지면 혈당검사에 드는 급여액은 1110원. 결국 최 할아버지의 급여액은 1만 5110원이 된다. 1만 5000원에서 110원 넘었다고 최 할아버지가 내야하는 돈은 3000원이나 많아지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야 3000원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노인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널뛰기 가격’일 것이다.
“노인정액제라는 정부 정책이 그렇게 돼 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의사들이 돈을 더 받는다고 오해한다.
노인정액제를 설명하는 순간은 항상 불편하고, 자신 없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죄인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나조차 납득할 수 없는데 환자를 설득한다는 게 말이 되나. 환자의 못미더워하는 반응에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다.
솔직히 환자를 위해서라면 급여항목을 비급여로 받는 게 더 유리하다. 혈당스틱 1110원을 비급여로 받으면 환자 부담금은 2600원(정액제 1500원+1100원)이 된다. 그런데 급여를 적용하면 4500원이 된다.
이게 무슨 노인 보장성인가?
그렇다고 윤리적인 지탄과 행정처분을 감수하면서까지 비급여로 받을 순 없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감기 노인환자들을 진료하는 것도 나로서는 고충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감기로 몇 달에 한 번 내원한다. 이런 환자들에게 주사만 놓아도 진료비가 껑충 뛴다. 주사 한 대의 급여액은 재료비와 진찰료를 포함해 1500~2000원. 초진료(1만 4000원)에 주사비를 더하면 15000원이 훌쩍 넘어 4500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건물 3층에 개원한 통증의학과의원 박 원장은 노인들이 한의원으로 다 떠난다고 난리다.
한의원은 약을 포함해 정액제 상한액이 2만원이기 때문이다. "한의원은 1500원에 약까지 주는데 우리 병원 오면 진료비만 4500원이 넘으니 그쪽으로 다 뺏길 수밖에" 박 원장의 낯빛이 나날이 누레진다.
노인들의 형편이 더욱 어려운 지방에서는 개원의가 환자를 위해 주사를 무료로 놓거나 재료비만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모두 편법이지만, 정당한 의료를 하고도 정상적인 보상을 받기 힘든 게 현실인데 어쩌겠나.
이런 판국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올해에도 노인정액제를 개선하지 않을 것 같다. 정액구간을 1만 9000원~2만원으로 올리면 1000억원의 추가재정이 소요된다나 어쩐다나. 판도라의 상자 같은 노인정액제를 어떻게 하든 다음 정부의 몫으로 떠넘기려는 것 같다.
최 할아버지는 이전에 다니던 의원으로 돌아갈 것 같다. 나는 오늘도 한 명의 손님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