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최근 고가의약품과 하나의 약물이 여러 질환에 쓰이는 다중적응증 치료제가 늘고 있다. 이에 적응증별로 약가를 달리 적용하는 '적응증별 약가제도' 등 새로운 급여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환자 간 형평성과 처방 왜곡 등을 우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김국희 실장이 전문기자단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다중적응증 약제는 하나 이상의 상태, 질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일의약품을 의미한다. 다중적응증 약제는 최근 들어 증가 추세다.
심평원 학술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 사이에 미국에서 출시된 모든 새로운 항암제 중 약 25%가 최초 허가 후 적응증을 추가했고, 2018년 미국에서 판매된 총 종양 치료약제 중 75%가 다중적응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항암제는 보통 중증 적응증을 대상으로 먼저 출시된 후 그보다 중증도가 낮은 질환에 대한 보조 요법으로 출시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추세에 대응해 호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은 하나의 약제가 다수의 적응증으로 급여 등재됐을 때, 각 적응증별 가치를 반영하는 급여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사용범위 확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약제의 사용범위가 확대될 경우 약제의 상한금액과 예상청구금액 등을 조정한다. 현행 약가 제도는 다중적응증 약제에 적응증의 수와 관계없이 단일 상한금액을 적용한다.
이런 가운데 다중적응증 약제의 증가 추세와 국제적 논의를 고려할 때, 현행 건강보험급여 제도하에서도 다중적응증 약제를 효과적으로 등재·관리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김 실장은 "최근 항암제 등 허가 이후 적응증 추가 및 등재 이후 급여 확대가 증가하면서 적응증별 약가제도 도입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적응증별로 약가를 달리 책정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과 실제 적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검토하되, 실제 제도 도입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동일 제품의 약가를 적응증별로 달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환자 간 형평성 문제와 처방 왜곡 우려 등 임상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단일 가중평균가를 적용하는 경우에도 가중평균가 산출을 위한 데이터 수집 방법과 약가 설정 방식의 사후 관리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신약 간 병용요법 급여, 임상적 효과 개선 명확한 경우에만 인정
이와 함께 심평원은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방향으로 병용요법 급여화를 검토하고 있다.
김 실장은 "최근 항암제 병용요법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2025년 5월 보건복지부 고시와 6월 심평원 공고를 통해 기존 항암제에 새로운 항암제를 병용하는 경우 기존 항암제는 급여 적용이 가능하도록 개선해 병용요법 치료 접근성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 간 병용요법은 단독요법 등 대비 비용 증가가 상당하다. 따라서 임상적 효과 개선이 명확한 경우에 한해 급여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병용하는 타 제약사가 급여확대 의사가 없는 경우 급여화가 어렵다고 부연했다.
김 실장은 "기등재된 타사 약제와 병용 투여하는 신약의 급여평가와 관련해 어느 한 제약사가 급여 신청한 경우, 병용하는 타사에도 관련 자료를 요청한다. 하지만 해당 제약사가 급여확대 의사가 없는 경우, 현행 선별등재제도 하에서 강제로 급여화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천연물신약 재평가, 산업 육성 정책 역행 지적에 "임상적 유용성 인정되면 급여 유지"
이어 김 실장은 올해 급여적정성 재평가에 대해서도 추진 현황 등을 공유했다.
2025년 급여적정성 재평가 대상 약제는 8개로 ▲올로파타딘염산염 ▲위령선·괄루근·하고초 ▲베포타스틴 ▲구형흡착탄 ▲애엽추출물 ▲엘-오르니틴-엘-아스파르트산 ▲설글리코타이드 ▲케노데속시콜산-우르소데속시콜산삼수화물마그네슘염을 포함한다. 재평가 품목 수는 총 385품목이다.
김 실장은 "현재 제약사 제출자료와 근거자료, 학회 의견 등을 받아 실무 검토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 이를 통해 올해 3분기 안에 약평위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개발 천연물신약 재평가가 산업 육성 정책을 역행한다는 지적에 "재평가는 선정기준에 해당하는 약제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며 "성분의 원개발국가를 고려해 선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올해 재평가 대상 8개 성분 중 위령선·괄루근·하고초와 애엽추출물이 천연물 신약에 해당한다. 평가대상으로 선정되더라도 재평가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인정되면 급여가 유지된다"며 "임상적 유용성 검토 시에는 해외자료뿐 아니라 국내 의학교과서와 임상진료지침, SCIE 학술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한다"고 덧붙였다.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약제 급여 전제 아냐"
최근 약평위에서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약제의 재심의 결과에 대해서는 시범사업 대상 약제 모두가 급여를 전제한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했다.
허가-평가-협상 시범사업은 2023년 처음 시행됐다. 이는 기존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120일, 심평원 급여평가 150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 60일 총 300일 이상 걸리던 기간을 단축하고 신약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됐다. 1차 시범사업에서는 식약처 허가 후 건보공단 약가협상까지 210일 소요를 목표했다.
최근에는 식약처 허가와 동시에 약가협상 완료를 목표하는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4월 개최된 2025년 제4차 약평위에서 시범사업 1호 약제인 입센코리아의 빌베이캡슐에 대해 재심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시범사업 대상 선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주장에 김 실장은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은 식약처-심평원-건보공단의 검토과정을 동시에 진행해 급여등재 시점을 앞당기고자 한 것으로, 대체 치료법이 없으면서 생존 위협 질환에 우월한 효과를 보이는 약제를 우선 대상품목으로 선정했다"면서도 "시범사업 대상 약제의 급여를 전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제약사 신청자료에 근거해 시범사업 대상 약제로 선정됐으나, 이후 허가·급여평가 과정에서 변경사항이 발생하거나 보완자료가 제출된 경우에는 추가 검토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올해 의료계 등 급여기준 개선 건의 42건 제출…일반약제 32건, 항암제 10건
김 실장은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등 7개 협회·학회(7개 세부 협회·학회 포함)에서 57건의 개선의견이 제출된 데 이어 올해는 8개 협회·학회에서(21개 세부 협회·학회 포함)에서 42건의 의견이 제출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제출된 개선의견은 모두 검토완료했으며, 이 중 28건은 고시·공고 개정되거나 후속절차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일반약제 32건 중 15건, 항암제 25건 중 13건에 대한 후속절차가 진행 중이다. 김 실장은 "기타 오해가 있는 항목에 대해서는 충분히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제출된 42건의 개선의견은 일반약제 32건과 항암제 10건으로 구성한다. 구체적으로 대한내과학회가 당뇨병용제 일반원칙에 대한 전반적인 개정을 요청했으며, 대한병원협회는 골다공증 판단기준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다.
항암제에 대해서는 대한내과학회가 투여요법 대상 등을 임상현실에 맞게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으며, 그 외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불응성', '수술 또는 국소치료가 불가능한'과 같은 문구 명확화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