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가장 존경받는 최고의 전문직 직업군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과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의사는 전문직으로서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국가가 요양기관을 강제 지정하고 수가를 결정하며, 심사·평가를 통해 진료 행위를 통제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특히 개원의는 국가 의료체계 속에서 형식상 의료기관의 개설자이자 사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가 설계한 단일 보험 체계에 편입돼 노무를 제공하는 존재다.
현행법상에서도 교수, 봉직의, 전공의는 노조 설립이 가능하지만 개원을 하고 있는 개원의가 노조 설립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개원의 노조 설립은 충분한 타당성을 가진다고 본다. 이는 단순한 직역 이익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의 해석 문제이며, ‘일하는 사람’의 권리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다.
1. 헌법 제32조와 제33조의 현대적 해석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3조는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근로자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은 사용자에게 인적 종속성을 가진 자로 한정돼 왔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 현실은 급격히 변화했다. 플랫폼 노동자,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위수탁 계약자 등 전통적 고용계약의 틀에 들어가지 않는 일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노동 현실이 변화한 만큼 근로자 개념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를 일할 권리로 읽는 확장적 해석은 이미 학계와 판례에서 논의돼왔다. 그렇다면 헌법 제33조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될 이유는 없다. 실질적으로 종속된 상태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3권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2. 정부–개원의 간 ‘제3의 고용관계’ 성격
개원의는 전통적 고용관계의 근로자도 아니고, 완전한 독립 사업자도 아니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에 따라 정부를 상대로 계약 거부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개원의의 수가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독점하고 DUR 및 심사평가 체계에 따라 진료 행위도 지속적으로 통제한다. 개원의와 정부는 일반적 고용관계와는 다르지만, 순수한 시장계약 관계도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제3의 고용관계’ 또는 ‘준종속적 관계’로 설명한다.
개원의는 스스로 직원을 고용하는 사용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단일 보험자에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다. 이중적 지위는 곧 노동자성과 사업자성이 중첩된 현대적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법원 역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 지위가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즉, 의사와 정부 간 관계는 전통적인 고용계약은 아니지만, 건강보험 위탁계약을 통해 사실상 보수(수가)를 지급받는 구조다. 개원의는 정부와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고용은 아니어도 ʻ제3의 고용관계ʼ로 볼 수 있다.
3. 국회 입법 동향과 근로자 개념의 확장
21대와 22대 국회에서는 '일하는 사람'을 보호 대상으로 명시하려는 법안들이 발의됐다. 플랫폼 종사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무 제공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포섭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근로자 개념을 전통적 임금노동자에 한정하는 해석은 이미 시대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사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형식만으로 노동권 논의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
4. 노동조합 설립은 대결이 아닌 제도화다
서울시의사회 차원의 노동조합 설립 추진은 갈등을 격화시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재 개별 개원의가 국가를 상대로 집단적 의사를 표현하면 공정거래법상 담합 논란에 직면한다. 제도권 내의 합법적 교섭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개원의를 포함한 노동조합 설립은 이러한 불안정한 구조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행위다. 교섭의 통로를 제도화하고, 갈등을 법의 틀 안에서 해결하겠다는 선언이다.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형식만으로 노동권 논의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
5. 의료 정상화를 위한 선택
국가는 강제지정제를 유지하면서도 의료인을 완전한 사업자로만 취급해 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질적 통제 구조를 유지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교섭 구조도 마련돼야 한다. 노동조합 설립은 특권을 요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 의료체계를 유지하는 핵심 인력인 의료인이 헌법상 보장된 최소한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의 지속 가능성은 통제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의사와 정부 간 대등한 협의 구조 속에서만 안정된다.
서울시의사회는 노동조합 설립 추진 여부를 공식 의결하고 적극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 안에서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의료의 미래를 설계해 나갈 것이다. 이는 의료계 내부의 결집을 넘어, 의료체계를 제도적으로 정상화하기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이라고 본다. 정부 역시 의료인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교섭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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