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최근 항암제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고가 항암제가 실제로 임상적으로 유의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국립암센터와 암정복추진기획단은 28일 서울대 암연구소에서 제62회 암 정복 포럼을 열고 '고가 항암신약의 재정 독성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재정 독성은 고가 항암제 시대에 항암제 치료를 받는 환자가 겪는 금전적 부담 문제를 항암제의 물리적 독성에 비유해 사용하는 용어다.
암정복추진기획단 김흥태 단장(국립암센터 폐암센터)은 "세계적으로 지난 40년간 5년 생존율은 49%에서 68%로 20% 가까이 증가했다"면서 "여기에 항암제가 기여한 것은 20%이고 나머지 80%는 예방과 조기 발견에 의한 효과였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BMJ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2~2014년 미국 FDA에서 허가한 48개 항암제는 생존 기간을 2.1개월 연장했고, EMA에서 10년간 새로 허가된 항암제 14개는 1.2개월 연장에 그쳤다.
임상적으로 유의한 약물 19%에 불과
생존 기간(OS) 대신 무진행 생존(PFS)을 대리 목표로 설정하는 것의 위험성도 문제 삼았다.
과거 30년간 진행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3상 임상 결과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2001~2010년 진행된 임상의 75%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1차 평가 변수를 개선했지만,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했음에도 생존 혜택을 입증하지 못한 게 40%나 됐다.
김 단장은 "PFS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규제 당국의 승인을 신속하게 할 수 있지만 약물 효능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면서 "2010년 FDA 리뷰에 따르면 신속허가된 항암제 45%가 완전한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FDA가 2002~2014년 허가한 고형암 항암제 71개 중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기준으로 임상적으로 유의한 개선을 보인 것은 30개(42%)였고, 2014~2016년 허가된 제품 47개 중에서는 9개(19%)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도 엘로티닙의 예를 들어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엘로티닙과 젬시타빈 병용요법은 기존에 사용되던 젬시타빈 단독요법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OS 개선을 보여 승인을 받고 국내에서 급여 적용이 됐다.
허 교수는 "통계적으로는 유의했지만 엘로티닙 추가로 개선된 OS는 0.46개월로 임상적으로는 의미가 없었다"면서 "생존 기간을 2주 연장하기 위해 6개월 약을 먹어야 하는 셈"이라고 비용 대비 혜택 측면에서 의문을 가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심평원 청구자료에 기반을 둔 리얼월드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전체 생존기간은 엘로티닙 병용군이 6.77개월, 젬시타빈 단독군이 6.68개월로 유의한 개선을 보이지 않았고 1년 생존율도 각각 27.0%, 27.3%로 차이가 없었다.
치솟는 가격…지급 불가능은 시간문제
그런데도 항암제 가격은 끝없이 치솟고 있다.
김 단장은 "항암제 비용은 현재 한 달에 1만 달러로 1인당 국민 소득을 고려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살 수 없는 수준"이면서 "항암제 비용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세계 경제가 이를 지급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환자단체에서 새로운 항암제의 빠른 급여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김 단장은 "국민건강시스템을 통해 환자에게 모든 새로운 항암제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면서 "일부 선진국에서도 새로 승인된 항암제의 절반 미만만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김 단장은 중재 방안으로 ▲의약품 가격 투명성법 ▲제네릭, 바이오시밀러 약물의 신속 승인 ▲특허 기간 축소를 제안했다.
의약품 가격 투명성법은 제약사들이 항암제가 고가인 핵심 원인으로 R&D 비용을 언급하지만 실제로 이를 확인할 수 없어 R&D, 제조, 마케팅 비용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취지로 미국 몇 개 주에서 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 종양 전문의가 약간의 혜택만 있고 고비용인 치료를 중단하는 등 제공되는 치료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환자와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가 책정에 가치평가도 들어가야
허 교수는 "최근 나온 -mab이나 -nib계열 약물은 대부분 혜택은 미미하지만 가격은 매우 높다"면서 "필수인지 선택인지 나눠 의학적 근거에 의해 급여 보장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간병서비스는 아직도 급여화하지 않았는데 한 달에 1천만 원이 넘는 고가 항암제는 급여 적용이 되고 있다"면서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분석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 약물은 급여에서 빠지고, 그렇지 않은 약들이 급여에 들어가는 등 우리나라 급여제도는 합리성이 매우 낮다"고 비판했다.
또 근거(evidence)는 끊임없이 변하는 만큼 한 번 허가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종양 전문의의 결정이 합리화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꼽았다.
김 교수는 "암 환자 진료에 들어가는 낭비적인 진료를 줄이면 고가 항암제 급여도 가능하다"면서 "항암제 가격의 문제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얼마나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완화의료와 급성기 치료를 잘 연계해 완화의료 대상이 되는 환자에게 급성기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김 교수는 "약가는 환자가 얻는 편익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만큼 약가 책정 과정에서 가치 측정 결과도 반영해야 한다"면서 "환자의 삶의 질과 투약 효과를 반영한 약가 책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