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결국 거부권이 행사됐던 간호법이 22일 재발의됐다. 공교롭게도 발의 시점은 23일인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졌다.
더욱 공교로운 점은 간호법 재발의를 시사했던 7월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이해당사자들과 쟁점을 해결한 뒤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발의된 새법안 내용을 보면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안 발의에 따라 거센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22일 입장문을 통해 "지금 민주당이 재발의하는 간호법안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곽지연 회장도 2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강력한 투쟁'까지 언급하며 결사 항쟁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첨예한 갈등을 무릅쓰고 간호법 발의를 서둘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4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새로운 간호법 발의 총대를 멘 민주당 고영인 의원(국회 복지위 야당 간사)은 간호법 발의 직전까지도 최종 발의를 망설이며 시점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쟁점들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차 발의가 된다고 해도 다시 갈등 상황이 재연된 후 법안 통과가 불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 초선인 고영인 의원 입장에선 총선을 코앞에 두고 확실히 부담되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고영인 의원은 실무진 차원에서 최대한 간호법 반대 입장 의견을 수용해 법안 내용을 고치려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을 움직인 것은 간호법 추진 의사가 강경한 간호협회와 민주당 내 중진 의원들이었다. 현재는 원내대표 경선을 위해 사임한 민주당 김민석 정책위 전 의장과 김성주 부의장 등은 대표적인 당내 간호법 통과 강경파들이다.
이들은 최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정부여당 심판 쪽으로 수도권 민심이 증명되면서 간호법 재발의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즉 전통적 지지세력인 간호계 표심만 확실히 챙겨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표 계산이 끝났다는 것이다. 발의 시점까지 간호사 회원 6000명 이상이 모인 간협 100주년 기념식으로 맞추면서, 민주당 입장에선 간호법 발의를 생색내기 금상첨화였던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처음부터 민주당은 실제 법안 통과보단 간호법을 총선 전략으로 활용할 심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안 발의 이후 국회 통과까지 시간을 계산해봐도 간호법은 이번 21대 국회 회기 내에 통과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제정법 특성상 절차적으로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거치고 다시 상임위원회부터 본회의까지 올라가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활용해 지난번처럼 상임위에서 곧바로 간호법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법사위에서 여야 합의없이 법안을 본회의로 직회부하기 위해선 최소 60일 이상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돼 있어야 한다. 내년 총선이 4월인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한 셈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곤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지역구로 돌아가 공천과 총선 전략에 집중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올해 상반기처럼 간호법 논의를 위한 여야 협의가 이뤄질 시간이 없다.
한 국회 관계자는 "고영인 의원은 최대한 간호법 반대 측 의견을 수용해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원래 9월초로 예정됐던 발의 계획이 많이 미뤄진 것으로 안다"며 "발의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일부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해 간호법이 다시 추진됐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국회 다음 회기가 시작되고 간호법이 또 다시 발의된다고 해도 통과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건복지부와 여당, 대통령까지 나서 간호법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기 때문이다. 다만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는 그림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회 상황에 밝은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선 대통령 거부권까지 나왔던 법안이 여당 합의로 통과되긴 어렵다"며 "다만 총선에서 여당이 크게 지는 판세가 나오면 여당과 대통령실에서도 지금같은 입장을 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