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의료진 폭행 사건이 의료계의 초유의 문제가 됐다. 앞서 1일 오후 10시쯤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서 술에 취한 환자가 진료 중 특별한 이유 없이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던 응급의학과장을 폭행해 뇌진탕, 목뼈 염좌, 코뼈 골절, 치아 골절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범(凡)의료계 300여명(주최측 추산 800명)은 8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범의료계 규탄대회'를 열어 강력 수사와 법 집행을 통한 폭력 사건의 근절을 촉구했다. 다만 규탄대회 이후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익산 폭행 사건, 지난 일주일간 어떻게 진행됐나
1일 오후 12시 30분쯤 전라북도의사회 김재연 정책이사로부터 응급실 의료진 폭행에 대한 긴급한 제보가 왔다. 당시 피해자가 폭행을 당한 사진을 함께 보냈다. 사안은 매우 심각해 보였다. 그는 “피해자가 공론화를 원해 연합뉴스에 제보됐고 취재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곧바로 피해자 의료인에게 연락했다.
피해자는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며 문자로 자료를 전부 주겠다고 했다. 폭행 현장에서 정신을 차리고 찍은 동영상부터 코피가 쏟아진 자신의 사진, 혈흔이 가득한 응급실 바닥의 사진, 고소장 등의 자료를 보내줬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해당 기사가 나갔고 순식간에 수만건이 읽혔다.
피해자의 사연이 주요 일간지까지 소개되면서 불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경찰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고 가해자가 손이 아프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가해자가 언제 병원에 들이닥칠지 몰라 위협적이다”고 말했다.
3일 의협 최대집 회장과 방상혁 상근부회장, 전라북도의사회 백진현 회장 등이 익산에 내려가 피해자를 위로 방문했다. 그리고 익산경찰서를 방문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수사와 대처를 주문했다.
이날 피해자가 최 회장을 만나고 온 다음 용기를 내서 진료실에서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영상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온라인상에서 이슈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누군가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게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만에 20만명이 동의하면 관계부처 장관이나 청와대 관계자가 책임있는 답변을 내놔야 한다.
그러던 중 4일 오전 의협 상임이사회 때 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이 의협 집행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그는 지금 아니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응급실 폭행이 완전히 근절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의협 이세라 총무이사는 전북경찰청 항의방문 등 감정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움직임에 탄력을 받은 최 회장은 규탄대회를 열기로 전격 결정했다. 최 회장은 이날 오후 1시 의료인 폭행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연데 이어 대국민 홍보를 진행했다. '응급실 폭행'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의협은 5일과 6일 여러 직역 단체의 대표들을 초대해 긴급하게 범의료계 규탄대회를 준비했다. 문제가 커지자 5일 경찰은 가해자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6일 오후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늘리고 법 개정 검토
의협은 우선 청와대 국민청원 성사인원인 20만명을 채우기 위해 총력을 다하기로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9일 오전 6시 기준 5만9547명이 참여했다.
의협 정성균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폭행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알리겠다. 의료계 관계자들과 여러 직역의 관계자들, 그 가족들까지 참여한다면 충분히 참여 가능한 인원이다”라고 말했다.
의협 이세라 총무이사는 "역대 집행부 중에 가장 빨리 진행한 규탄대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만 규탄대회에 참여한 숫자가 저조했던 것을 보면 의료계 스스로 분발하고 모든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7월 중 의협 최대집 회장과 경찰청장의 면담을 통해 응급실 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 강화를 요청한다. 의협은 복지부 응급의료과와 함께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에 대한 매뉴얼을 정비한다. 법의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 발생과 수사 과정부터 되짚어보는 것이다. 응급의료법 제12조(응급의료 등의 방해 금지)에 따르면 응급진료를 할 때 폭행 등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11일 긴급 실태조사에 대한 중간 발표를 하고 13일 국회 토론회를 마련한다. 실태조사는 응급실 폭행 경험 여부와 병원별 매뉴얼 구비 여부, 경찰 상주의 필요성, 경찰 출동 현황 등을 질문했다. 대한응급의학회 홍은석 이사장은 “현재 실태조사에 참여한 의료진이 400여명이 넘었다. 이 결과를 알리고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은 “범의료계는 사법당국에 강력한 법 집행을 촉구해야 한다"라며 "응급실 폭행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위험성을 알리고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조항)와 벌금형 폐지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전북의사회 김재연 정책이사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의료기관 당연지정제인 만큼 의료기관에 폭행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국가 배상제를 청구할 수 있다"라며 "의료인을 폭행할 때 진료 거부권 도입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