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전문간호사에게 마취를 시키다가 의사면허 정지처분을 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B병원 원장인 P씨가 복지부를 상대로 3개월 면허정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 H씨는 2010년 9월 손가락수술을 받기 위해 B병원에 입원했는데, P원장은 D병원 마취전문간호사인 K씨를 초빙해 H씨에게 전신마취를 위한 삽관시술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H씨는 수술 직후 의식불명 상태에 이어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P원장이 K씨에게 무면허의료행위를 교사해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벌금 100만원을, K씨에 대해서는 의료법 위반죄를 적용해 벌금 200만원 약식명령을 내렸고,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P원장에게 3개월 의사면허정지처분을 통보했다.
P원장은 "마취간호사는 마취행위를 할 수 있으므로 원고가 K씨에게 전신마취를 지시한 것은 무면허의료행위 교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나섰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에 이어 서울고법은 최근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의사가 간호사에게 진료 보조행위를 지시하거나 위임할 수는 있지만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해 반드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환기시켰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나 위임을 받고 그와 같은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의료법에서 금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법원은 "전문간호사라고 하더라도 마취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간호사 자격을 인정받는 것뿐이어서 비록 의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간호사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P원장이 마취전문간호사인 K씨에게 전신마취를 위한 삽관시술을 지시한 것은 의료법상 의료인에게 면허받은 사항 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K씨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인 삽관시술을 직접 한 이상 원고의 지시와 입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면허받은 사항 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지난 2004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H병원 외과과장인 B씨는 마취전문간호사인 A씨에게 치핵제거수술을 위한 척수마취를 시켰고,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했다.
이에 대법원은 A씨가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B씨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따라 금고 10월, 집행유예 2년, 벌금 50만원을 확정 판결했다.
이처럼 일부 의료기관들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초빙하지 않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타과 의사가 직접 하거나 전문간호사에게 맡기는 것은 전문의 초빙료(보험급여가 19만여원+∝) 부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마취통증의사회 이상율 기획위원장은 "수술과 관련한 마취를 비전문의가 하는 것은 비전문의가 분만을 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하지 않으면 마취비용을 지급하지 않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수술 마취 만큼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전문가가 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